‘비스티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2011)을 통해 특정 집단의 세계를 냉정한 시선으로 파헤치고 이를 세밀하게 그려냈던 윤종빈 감독이 이번에는 조선시대를 조명했다. 계급사회 중에서도 천민으로 분류되는 ‘군도’와 그들이 이루어낼 ‘민란의 시대’, 이 두 가지 키워드는 사회전반의 이면을 통렬하게 파헤쳐 온 윤종빈 감독에게 안성맞춤일 터였다.
그러나 뚜껑을 연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는 당초 기대와는 달랐다. 비장한 기운이 흐르는 제목과는 달리, 철저히 볼거리에 집중한 오락영화이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웨스턴 무비에 무협을 입힌 색다른 활극이었다. 자본·권력주의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은 뒷전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뚜렷한 선악 구조 속에서 대립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고, 그밖에 군도 무리들로 자잘한 웃음 포인트를 확보했다.
‘군도’는 137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총 5개의 챕터로 나누었다. 최하층 천민인 백정 출신의 돌무치(하정우 분)가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고 군도 무리를 만나 도치로서의 새 삶을 살게 되는 과정, 그리고 조윤(강동원 분)이 서자의 한을 품은 채 극악한 수법으로 양민들을 수탈해 아버지를 뛰어넘는 대부호로 성장하는 과정이 3챕터에 이르기까지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복수라는 질긴 연으로 얽힌 두 사람이 필연적으로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당위성과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까닭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초반부터 성실하게 쌓아올린 농익은 감정의 갈등이, 극 말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는 장면에서 폭발적인 시너지를 발현할 수 있도록 준비한 장치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도치와 조윤. 완벽하게 상반되는 캐릭터는 관객들의 흥미로움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하정우는 덥수룩한 머리의 돌무치와, 민머리로 다시 태어난 도치를 확실히 다른 인물로 구현한다.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담백하게 내뱉는 대사들은 그 자체로도 웃음을 자극했고 하정우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열여덟 살이라는 무리한 설정도 이해시킨다. 두 손에 도끼를 들고 휘두르는 모습과 뛰고 날고 구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액션본능은 하정우의 이름값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조윤 또한 주목할 만하다. 극악무도한 악행을 저지르는 백성의 적이지만, 강동원표 조윤은 어딘가 모르게 처연한 느낌을 자아낸다. 강동원이 머금은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은 조윤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십분 발현된다.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칼을 휘두르는 강동원의 모습은 ‘군도’가 숨겨둔 알짜배기 볼거리다.
그러나 조윤의 서사가 쓸데없이 장황하게 설명된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중반부부터 조윤에게 급작스럽게 무게감이 쏠리면서 도치를 비롯한 군도의 무리는 존재감을 잃는다. ‘군도’가 필요이상으로 조윤에게 연민을 부여했다는 느낌이다. 몇몇 장면에서는 영화가 강동원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있다는 느낌도 준다. 구구절절 조윤의 어린 시절을 읊는 내레이션 또한 일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러닝타임을 좀 더 효과적으로 활용해 매력적인 군도 무리 캐릭터들에게 좀 더 생생한 생명력을 부여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도치와 조윤의 개인사와 복수극에 치중한 나머지 “뭉치면 백서이요, 흩어지면 도적이다”라는 군도의 핵심 대사 또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모양새다. 권력에 대치하고 인간다운 삶을 목놓아 부르는 백성들의 모습이 너무 일차원적으로 그려지지는 않았는지, 과연 ‘민란의 시대’라는 묵직하고 비장한 부재에 걸맞은 에피소드가 영화 속에 제대로 녹아들었는지는 의문이다. 7월 2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