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경호(30)는 그랬다. 지난해 9월 제대한 후 영화 ‘롤러코스터’(하정우 감독, (주)판타지오픽쳐스 제작)와 JTBC 드라마 ‘무정도시’(유성열 극본, 이정효 연출) 단 두 작품으로 관객을, 시청자를 웃기고 울리는 그런 사람. 미친 것처럼 신나게 영화를 찍었고 심각하게 드라마를 찍었지만 오히려 대중에게는 반대로 보이게 됐다. 허나, 이랬든 저랬든 뭐 하나 흠 잡을 곳은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더욱 무르익으며 숙성됐다는 것 말이다.
정경호는 ‘롤러코스터’에서 ‘육두문자 맨’의 주인공인 한류스타 마준규로 출연한다. 마준규는 일본에서 열애설에 휩싸이며 급히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고 자신이 탑승한 비행기 안에서 놀라운 일을 겪게 된다. 영화의 공간은 오로지 비행기. 얼마나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소화해내야 될지가 최대의 관건이었다. 정경호가 주인공이니 그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그러나 그는 하정우 감독과 신나게 즐겼다. 그렇게 ‘롤러코스터’가 탄생됐다.
◆ “사람이 흥분을 하니까 욕이 막...”
그동안 예능 프로그램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신비주의 정경호가 어느덧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기만 하면 나오는 신기한 존재가 됐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싶을 정도로 한 때 일주일을 점령하기도 했다. ‘도대체 이 배우는 왜 이렇게 집착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원래 이렇게 예능을 좋아하는데 그저 나오지 않았던 것뿐일까’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아니었다. 정경호는 아주 힘들게 예능과 싸우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하는 게 정말 보였나요? 성공했네. (웃음) 원래 예능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울렁증 비슷한 게 있는데 이상하게 작품을 찍을 때는 안 그런데 공식석상에만 서면 떨려요. 손발이 차가워지고 현기증도 나고. 그런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친한 사람에게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다는 거? 그래서 연기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다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 거예요. 하정우 형과 뭐라도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계속 못했었거든요. 그래서 ‘롤러코스터’에 대한 애정이 더 커요.”
복귀 후 첫 작품. 얼마나 연기에 대한 갈증이 컸을까. 그래서 모든 것을 쏟아냈다. 거침없이 욕을 퍼붓고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던 아이돌 패션까지 소화해냈다. 결벽증에 공황장애까지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 모은 캐릭터 마준규와 정경호를 동일 선상에 놓는 다는 것 자체가 그저 신기할 뿐. 무척이나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발광을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대박. 정경호 역시 잊을 수 없는 부분 중 하나로 이 장면을 꼽을 정도라니 가히 명장면이다.
“사람이 흥분을 하니까 씨X이라는 욕 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제가 욕을 못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하하. 첫 장면 같은 경우는 욕쟁이 한류스타의 모습을 보여줘야 되서 ‘육두문자 맨’에서 썼을 법한 욕을 해봤어요. 아이한테 욕을 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발음을 빨리 하니까 전혀 모르던데요? 다행이었죠 뭐. 4개월 동안 욕을 맛있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무대인사에서도 욕을 해보라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가만히 있으면 정우 형이 막 흘깃거려요. 해보라고. 그럼 또 안할 수가 없어서 전 또 하고. 반응은 좋고. 그래요.”
◆ “요즘은 크레용팝이 좋아”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롤러코스터’는 일명 ‘병맛 코미디’라는 애칭을 얻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병맛이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병신 같으나 재미있다’라는 뜻으로, 이후에는 대상에 대한 조롱의 의미를 내포하게 됐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병맛이라는 말은 당연히 긍정의 단어다. 하정우의 어법으로 만들어낸 ‘롤러코스터’에는 하정우스러운 유머와 대사, 행동들이 깃들어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한 지 1년 밖에 안 된 정경호에게 ‘병맛’은 힘든 표현이었다.
“우리 영화에 병맛이라는 표현을 썼더라고요. ‘어 이게 욕인데? 욕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무래도 이상했죠. 그래서 ‘롤러코스터’ 단체 채팅 방에 ‘우리 영화 보고 병맛이라고 하는데, 이거 욕 아니에요?’라는 글을 남겼어요. 이상한 점이 확인은 하는데 대화가 이어지지를 않아요. 다들 확실하게 모르는 거죠. 그런데 좋은 뜻이라네요. 제가 군대에 갔을 때 이런 말이 생긴 건가요? 저 `돌싱(돌아온 싱글)`도 몰랐어요. 그 말도 욕인 줄 알고 혼자 상상해보고 그랬어요.”
정경호가 눈을 반짝거리며 이런 이야기를 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사람에게서 사랑스러운 기운이 느껴지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군대 공백이 크지 않나?”라고 물었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맞다. 그게 그렇더라”란다. 그 모습이 귀엽다. “아이돌 이름 모를 때 가장 많이 느낀다. 그래도 요즘 크레용팝은 안다. 귀엽지 않나?”라며 또 다시 눈을 반짝거린다. 배우가 영화를 들고 인터뷰를 하면서 또 이렇게 아이돌 이야기에 다른 사람이 된다. 이 사람 10년 동안 연예계 생활을 한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필요하다.
“10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봐왔던 것들 있잖아요. 선후배들이 보여준 연예인병, 가식, 허세 뭐 그런 것들? 개인적으로 보기만 하면서 지내오다가 마준규를 만나고, 연기를 하고 모니터를 해보니 귀엽더라고요.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좋지 않은 것들을 모조리 다 뽑아서 연기를 한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냥 모든 게 다 좋았어요. 정말 눈에 확 들어오는 캐릭터를 한 번 해보고 싶기도 해요. 지금과 다른 것 보다는 안 해봤던 거? 그런 걸 보여주고 싶어요.”
한국경제TV 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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