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현의 ‘펀드노트’] ⑨ 을(乙)들의 배려를 기대한다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이슈 중 하나가 갑(甲)과 을(乙)의 횡포와 설움에 대한 것이다. 어찌 보면 새로울 것도 없는 이 문제가 세상 밖으로 뛰어나온 것은 그동안 인내로 이겨왔던 을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회적 공분(公憤)을 통해 동의를 얻고자 함으로 여겨진다.
갑과 을의 관계는 펀드시장에도 존재한다. 넓은 판매망과 자본력을 갖춘 판매사가 갑이라면, 대형판매사의 눈치를 보는 중소 운용사 등은 을이다. 정작 진정한 갑(甲)중의 갑인 투자자는 뒤로 물러있고, 투자자가 맡긴 투자자금을 갖고 운영하는 대리인들끼리 갑과 을이 되어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금융당국이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개방형 펀드판매 채널 (펀드슈퍼마켓)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산운용사들과 증권유관기관들의 모습에서 뒤집어진 펀드시장의 갑을관계를 새삼 확인케 된다. 입버릇처럼 고객님을 외치는 판매사나 운용사들의 홍보성 선전 문구가 공허하다.
펀드슈퍼마켓은 투자자의 선택권을 넓혀주고 판매채널 간에 공정경쟁을 통해 고질적인 불완전판매 관행과 고 비용구조를 개선하자는 제도다. 도입취지를 잘만 살리면 투자자가 제대로 갑으로 대접 받을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자산운용사들과 증권유관기관들이 각자의 이해득실(기득권포기, 매출감소 등)을 놓고 지나치게 눈치를 보고 저울질하는 바람에 원활한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우리의 저녁 식사는 정육점 주인, 빵 굽는 사람, 양조업자의 호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에 관련된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경제주체는 공공의 이익보다는 자기들의 이기심에 의해 움직이기 마련이다.
시장에서 각 경제주체 간에 이기심이 부딪칠 때 금융당국이 리더십을 발휘해야한다. 시장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확실한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해야한다. 그래야 참여자들이 우왕좌왕하지 않는다. 운용사들이 요구하는 온라인상 계좌 개설 허용을 당국은 적극 재고해야한다.
현재와 같이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를 통해서만 계좌개설이 된다면 펀드슈퍼마켓 제도의 장점(투자의 편이성이나 저비용구조)은 퇴색된다. 자칫 투자권유인제도, 펀드이동제도들처럼 도입초기의 기대와 달리 지리멸렬한 제도의 전처를 밟지 않을 까 우려된다.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다. 이미 콜 뱅킹, 인터넷 뱅킹, 온라인 보험 가입 등과 같은 금융거래가 온라인상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의지만 있다면 방법은 있다. 핵심성공 요인을 외면하고 저절로 잘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금융당국의 희생적 결단이 필요하다. 펀드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판매시장의 공정한 경쟁체제는 꼭 필요하다. 투자자가 진정한 갑(甲)으로 대접받기 위한 모든 을(乙)들의 배려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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