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6월 오후. 청담동 골목 안쪽에 풍성한 나뭇가지로 둘러싸인 한 콘크리트 건물 벽에서 빛이 반짝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한다. 자세히 보니 건물 외벽에 걸린 검은 테두리의 큰 거울들이 햇빛에 반사돼 반짝이고 있다. 이곳은 사람들을 빛나게 스타일링 해주는 헤어전문 브랜드 이철헤어커커 본사 건물.
건물 안에는 일반 회사 사무실 분위기로 평범한 스타일의 직원들이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눈길을 끄는 한 남자. 올 블랙 차림으로 아이돌 못지않은 개성 넘치는 스타일을 하고 여유로운 듯 뭔가에 집중하며 일을 하고 있다. 이철헤어커커의 이철(55)대표였다.
이철 대표는 25년간 헤어 업계에서 단단한 내공을 가진 디자이너이자 전문 CEO 그리고 헤어업계 아버지로 통한다. 그런 그가 환갑을 앞두고 새로운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제2의 인생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어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 "젊어서 놀고 늙어서 일 하자(?)"
이철헤어커커는 1988년 명동에 첫 살롱을 오픈한 지 1년 만에 청담동에 자리를 옮긴 후 현재 159개점, 프리미엄 헤어살롱 마끼에를 4곳을 운영하며 국내 뷰티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철헤어커커는 신세계그룹 이마트와 제휴한 토털 뷰티숍 `두프리(doo free)`를 6월 7일에 오픈하며 규모를 넓혀가고 있다. `두프리`는 헤어 드라이, 메이크업, 네일, 헤어제품 판매 등 4개의 존으로 구분된 공간에서 다양한 뷰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현재 강남점을 필두로 점차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이철헤어커커는 브랜드를 운영하며 쌓은 신뢰, 외부에서 보이는 트렌디함 등을 인정받아 신세계의 제안으로 `두프리`를 진행하게 됐다.
뿐만 아니다. 6월 19일에는 이철헤어커커가 자랑하는 ‘마끼에위드고원’의 이전 오픈도 예정돼 있다. 이철 대표는 마끼에가 들어가는 건물 전체를 직접 설계하고 인테리어에 이르는 전 과정에 참여했다.
◇ "남다른 `사람 관리`가 노하우"
미용 업에 발을 내딛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숍을 운영하는 게 꿈. 하지만 최근 많은 헤어숍들이 들어서며 경쟁도 치열해졌다. 실력만 있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닌 헤어 업계.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경영 노하우가 있어야 할까?
"제 경영 노하우의 기본은 `사람`입니다. 사람 관리를 위해 `신뢰`를 최고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솔직하려고 노력하죠."
신뢰를 먹고 산다는 이철 대표. 그렇다면 언제부터 그는 인지도를 얻게 됐을까. 헤어업계에서 이 대표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그의 커트실력에서 출발한다. 88년 당시 이 대표는 정·재계 인사에서 대통령에 이르는 수많은 사람의 헤어 스타일링을 전담했다. 커트를 잘 한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며 지금의 고지에 올랐다. 그는 당시 하루에 50명 이상의 손님을 받으며 잠자는 시간 빼고 일만 했다고 털어놨다.
"아침에 일어나면 사람들이 매장 앞에서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현장에서 일할 때 김영삼 대통령을 포함해 우리나라 정·재계 최고의 사람들 머리를 했어요. 당시 유명인사가 많이 찾았음에도 먼저 온 사람부터 관리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죠. 답답해 보일 수 있었지만 한결같은 정직한 스타일로 밀고 나갔죠. 그래도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 이후 이 대표를 찾는 사람들은 손님뿐이 아니었다. 그에게 배우겠다는 후배들이 한두 명씩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브랜드화(化) 된 것 같아요. 같이 일하던 후배들이 하나씩 매장 내고 싶다고 제안했고 자연스레 프랜차이즈화 됐죠."
이렇게 하나 둘 씩 늘어나던 이철헤어커커 분점이 이제 전국에 159개가 됐다. 특별한 관리법이 있을 것 같은데.
"저희는 교육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요. 최고의 강사를 초빙하죠." 그는 덕분에 잘나가는 디자이너들이 모두 이철헤어커커 출신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철헤어커커는 전국적으로 늘어나는 가맹점들을 고려해 서울 뿐 아니라 광주, 부산에 교육장을 개설했다. 현재 대전에도 교육 시설을 준비하고 있다.
"헤어 업계에서 하나 이상 교육장을 갖고 있는 데가 없죠. 교육 시스템이 커커의 문화에요." 하드웨어적인 교육시설 뿐 아니라 교육 관련 소프트웨어도 잘 구축해 놨다. 커커의 교육시스템은 타 브랜드에서도 부러워하는 자랑거리다.
특히 이 대표는 디자이너 뿐 아니라 그들을 관리하는 관리자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미용업이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사람관리가 중요해요. 성과를 정확히 책정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죠. 이동이 잦은 미용업계에서 디자이너나 관리자들이 장기 근속하는 편이에요. 20년 넘게 같이 일한 친구도 있죠."
이 대표는 해마다 주니어를 위한 쇼, 트렌드 촬영도 하는 등 교육열 높은 학부모 CEO였다.
이철헤어커커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전체 지점 사장들과 매월 전략회의를 한다. 4년 전부터 이 회의에서 본점 살림살이를 오픈했다. 수익은 얼마나 나고 프로모션은 어떻게 하는지 모든 가맹점 대표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가맹점의 영업성과가 많이 좋아졌다고.
"사람마다 솜씨가 다 다르니까 헤어업 프랜차이즈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요. 고객을 맞이하는 표준화가 잘 안돼서 인테리어 등으로 매장을 통일시키죠."
이 대표는 양재동 꽃 시장에서도 유명인사다. 그는 "우리는 본사에서 가맹점에 꽃을 보내요. 통일성을 위한 노력이죠."라며 이철헤어커커의 또 다른 문화를 소개했다.
"정서적인 면을 호소하는 게 저희 이철헤어커커의 가장 큰 경영 노하우에요."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인간적인 문화를 만드는 데 힘썼던 이 대표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브랜드가치를 창조해냈다.
◇ "내 삶에서 호기심과 도전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철 대표는 그간 세계최초 수중 컷, 국내 최초 설치미술 작품전 등을 출품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는 그의 삶은 호기심과 도전으로 압축된다.
"한창 스쿠버다이빙을 즐길 때 미용과 접목해 수중 컷을 하게 됐고, 사진과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설치미술 작품전이라는 결과를 얻었죠."
무슨 일이든 직접 체험하는 걸 좋아한다는 그는 여름엔 청평, 겨울엔 용평에서 살만큼 웨이크보드, 스노보드 등을 즐기는 레포츠 광이라고.
"레포츠뿐만이 아니에요. 친분 있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직접 만든 요리로 대접하죠. 어떤 고급 레스토랑을 가는 것보다 더 좋아하더라고요."
그는 헤어뿐 아니라 패션, 사진, 인테리어, 요리 등 다재다능한 끼를 분출하며 탄탄대로의 길만 걸어온 것 같다. "정말 탄탄대로를 걸었어요. 주변사람 도움도 많이 받았고. 근래 2~3년 역경이 왔죠. 와이프는 유방암에 걸렸고, 회사나 매장에도 큰 문제가 터졌어요."
그러나 이내 워낙 낙천적인 천성 덕분에 잘 극복하고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털어놓았다.
성공과 역경을 겪으며 꾸준히 외길을 걷고 있는 이 대표는 인생 스토리를 언젠가 만화책으로 출판해보고 싶다고 고백했다. "기회가 되면 만화책을 꼭 한 번 내고 싶어요. 제목은 `커커`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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