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군대의 내무반에서는 소녀시대가 TV에 나오면 고참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한다.
지난 80년대에도 상황은 비슷했으나 주인공이 소녀시대가 아니라 김완선이었다는 점이 다르다.
80년대 시장 지배적 댄싱퀸이었던 김완선이 컴백 음반을 발표했다. 타이틀곡은 ''슈퍼 러브''. 이번에는 댄스곡이 아니라 락(Rock)이다.
지난 19일 홍대앞 음악 카페에서 진행된 음반 발표회 현장에는 기자들뿐 아니라 중년의 아저씨 팬들로 보이는 얼굴들도 많았다.
이들은 예상치 못한 질문을 쏟아내 오랫만에 돌아온 가수 김완선에 대한 이해를 깊게 했다. 김완선은 특유의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편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도 묘한 끌림…. 그것이 연륜일까.
그녀는 오랜 공백 기간에 대한 해명(?)으로 과거의 보따리를 풀었다. 88년에 시도했던 일본 진출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시엔 ''너무 일찍 간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단다.
92년에는 영화를 하고 싶어 홍콩에 건너갔다가 본의 아니게 음반만 발표했고 이어서 대만으로 향했다. 97년 홍콩이 중국에 반납되면서 북경어권인 그곳으로 진출한 것.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첫번째 발표곡으로 발라드를 선택했으나 실패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당시 대만은 요즘 한국의 방송 환경과 비슷했단다. 가수들이 노래할 수 있는 가요 프로그램보다도 토크 위주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이 대세여서 언어가 짧은 김완선으로서는 한계가 명확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스타였지만 대만에서는 신인 신세를 면치 못했던 셈이다.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이 들었단다. 하지만 당하고만 있을 그녀가 아니었다. 죽었던 오기가 발동해 한국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솟구쳐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고 한다. 당시를 한 마디로 요약하는 그녀.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것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수많은 청춘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들끓게 했던 댄싱퀸이 과거를 돌아보며, 이제부터는 그 팬들과 함께 흘러가는 세월의 동반자로 다가온, 보다 원숙해진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댄스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뭐 그냥... 무대는 신나고 재미 있을 거 같아요" 타이틀곡 ''슈퍼러브''는 락 앤드 댄스(Rock and Dance)를 표방했다.
이날 그녀가 팬들에게 선물한 CD에는 ''타마(TAMA)''라는 의문의 뮤지션이 눈에 띄었는데 함께 작업한 락 밴드였다고. "뒤에서는 락 밴드가 연주하고 앞에서는 댄서들과 같이 퍼포먼스 할 생각이에요." 적어도 비주얼만큼은 상당히 기대되는 무대다.
팬들로 보이는 중년남들이 의외의 질문을 날리기 시작했다. "KBS 7080 콘서트 출연은 안 해요?" 김완선이 웃었다. 옛날에도 요청은 왔는데 정중히 사양했단다.
''그냥 살기 위해서''라든가 ''이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라는 이유로 함께하기는 싫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음악이 좋았던 그 시절의 마음을 되찾은만큼 다음달 출연을 결정했다고.
최근 가요계를 평정한 걸그룹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제가 오히려 조언을 받아야 할 것"이라며 한 발 뺐다. 엄정화, 이효리, 유리를 좋아하고, 걸그룹 중에서는 2NE1을 최고로 꼽았다. ‘뮤지션이란 느낌이 강하게 드는 그룹’이라며. "몇 년 간 훈련받은 그들 개개인의 역량은 정말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앞으로 우리 음악이 (2NE1처럼) 스타일면에서 더욱 다양해질 거라고 전망했다.
김완선은 데뷔 초창기부터 5집이 나올 때까지 김창완, 이장희, 신중현, 손무현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했다. "저는 별다른 취향 없이 음악 자체가 좋았던, 그냥 가수가 되고 싶었던 어린 소녀에 불과했어요." 그래서 신곡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고 한다. 음악적으로는 그리 큰 불만이 없었고, 지금 돌이켜 보면 당대 명망가들과 함께 작업한 것이 그렇게 자랑스럽고 뿌듯할 수 없다고.
하지만 ''소녀''도 회한은 있어 보였다.
작곡 공부를 열심히 해 자신이 만든 신곡을 선배들에게 많이 들려주었다는데….
반응은 별로 신통치 않았다. 주로 발라드 곡이었는데 이미지랑 잘 안 맞는다는 반응이 많아 ‘꿈을 접었다’는 설명이다. "그때 실력 있는 음악인으로 도약했다면 다양한 실험을 해봤을 텐데…. 지금도 그 부분은 아쉬워요."
80년대 한 벌에 2백만 원, 3백만 원 하는 의상비에 겁없이 돈을 쓴 것도 마음 한 켠에 걸린다고 했다. 옷 스타일이나 화장하는 방법 등등 누군가로부터 일일이 간섭받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왜 그때는 그 사실을 못 느꼈는지…"
CD에 수록된 노래들을 다 듣고나니 지금까지 그녀가 털어놓은 ‘말의 진정성’에 무게가 더해진다. 초창기 불렀던 노래보다 템포는 느리지만 분명히 그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비로소’ 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소녀의 회한이 중년 들어 음악적으로 만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앨범 첫곡 <OZ ON THE MOON> 가사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 속에 기억되던 얘기
너는 그렇게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스타일 있는 뮤지션 김완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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