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증시에서 외국인은 가격을, 기관투자자는 모멘텀을, 개인투자자는 꼭지를 산다고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이 법칙은 깨지지 않아 ''불멸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이런 불멸의 원칙도 이제 사라져가고 있다.
바로 ''자문사 랩''이라는 새로운 투자처가 생겼기 때문이다.
랩 계정(Wrap Account)은 주가 변동성이 커지면서 보다 밀착한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상품이다.
일반적으로 주식형 펀드의 경우, 60% 이상 주식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조항 때문에 주가가 급락을 하는 상황에서 고객들의 자산들을 온전하게 지켜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랩 계정에서는 현금비중 100%도 펀드매니저의 판단에 따라 가능하다.
게다가 고도로 훈련된 매니저가 직접 개인투자자들의 계좌 그대로 거래한다는 특징도 있다.
증권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약 5,000만 원 정도 기본 계좌를 개설하면 펀드매니저가 내 계좌를 직접 운용해주니 고객으로서도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개인 계좌를 기관투자자가 운용하게 되므로 개인이 사는 시장이 더 이상 꼭지가 아닐 수 있다.
최근 들어 펀드에서 이탈한 자금이 상당히 빠르게 랩으로 몰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좋은 지수 방어력을 보이고 있는데, 이들의 역할이 결코 작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지난 5월 폭락장에서 외인들의 매도량은 겨우 6조 1000억 정도였는데 랩 계좌로는 무려 28조원이나 몰렸다.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매도세를 이겨낼 정도의 막강한 힘을 가진 새로운 수급 주체가 될 수 있다.
사실 랩 계좌로 몰리는 액면보다 더 큰 힘을 가졌다고 판단하는데, 랩 계좌를 추종하는 개인매매 또한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가령 10억 원 규모의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이 기관투자자들의 생각을 엿보려고 최소 비용인 5,000만원 상당을 계좌 개설한 후 실시간으로 기관투자자의 매매 내역을 살펴보고 그들의 패턴을 따라하는 경우가 좋은 예다.
이렇게 본다면, 자산운용사에 몰린 돈이 28조 원이지만 이를 추종하는 자금까지 고려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개인 자금이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 이런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개인으로서 기관투자자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매력을 간과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어떠한 트렌드가 형성되면 버블이 생기기까지 지속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런 트렌드를 좇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같은 종목이라고 해도 나중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그 이전에 가입한 사람들이 매수했던 종목을 살 수밖에 없다.
언젠가 시세는 끝이 나야만 하는데 많은 돈이 몰리다 보면 결국 가장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총알받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염두해야 한다.
무조건 친구 따라 강남갈 일이 아니라 랩계좌를 운용하는 매니저의 도덕성과 그동안의 레코드를 철저하게 검증하고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부디 그간 결코 바뀔 수 없었던 개인필패(個人必敗)의 역사가 이번 기회를 통해 깨지길 바란다.
<글. 박문환 동양증권 강남프라임지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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