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인 수퍼모델 지젤 번천(30)이 집안 욕조에서 아들을 낳아 화제가 되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출산 중 의식이 깨어있고 침착하고 싶었다. 약물 복용은 하고 싶지 않았으며, 출산을 위해 평소 요가와 명상을 해서인지 출산 당시 큰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많은 산모들이 경막외마취를 자연스럽게 선택하고 약물을 이용한 무통분만을 선호하는 추세인데, 세계적인 미모의 소유자이자 많은 돈을 버는 모델로 알려진 여성이 최첨단 의료기관에서 출산하지 않고 가정분만을 선택한 것에 대해 신선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출산 중 진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생명 탄생의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했던 그녀가 욕조를 이용한 수중분만을 하면서 새삼 ‘수중분만’에 대해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도 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중 분만은 말 그대로 물 속에서 아기를 낳는 것이다. 최초의 수중분만은 고대 크레타 문명의 미노스인들이 바닷물이 낮게 고인 해수 풀에서 분만을 했다는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프랑스 의사인 미셸 오당에 의해 최초로 수중분만 개념이 정리되어 현재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수중분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욕조에 채워진 따뜻한 물은 산모의 근육을 이완시켜주면서 정신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에 진통 억제 효과가 있으며, 분만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도 감소시켜준다. 물의 부력으로 인해 체중에 의한 중력이 감소되면서 임산부 마음대로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또한 산모의 회음부 근육이완이 쉽게 되므로 굳이 회음부를 절개할 필요도 없어진다. 태아의 입장에서도 따뜻한 물(양수)에서 따뜻한 물(욕조)로 나오는 편안한 여행이 된다. 바깥 세상의 강한 빛과 소리를 물이 한번 걸러주기 때문에 급격한 환경 변화가 없어 좀더 평화로운 출생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남편이 아내와 함께 진통을 겪으면서 아기 탄생을 지켜보기 때문에 뜨거운 감동을 나누며 가족간의 유대가 깊어진다는 데 있을 것이다.
반면, 수중분만에도 단점은 있다. 우선 산모와 태아의 감염 가능성인데 욕조를 깨끗이 소독하고 깨끗한 수돗물을 사용한다면 감염 위험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다음은 수중 진통이나 분만시에는 태아의 심박동 및 자궁 수축을 감시하기 위한 장치들을 간헐적으로는 부착할 수 있으나 지속적으로 부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수중분만은 고위험 산모를 제외하고 정상 산모들에게만 시행할 수 있다.
이런 의료적인 측면 외에 몇 가지 주의점이 있다. 우선 진통이 길어지는 경우, 욕조에서 3시간 이상 머물게 되면 지치게 되므로 다시 분만 대기실에 들어가 쉬게 되는데, 젖은 몸을 닦고 옷을 입고 하는 과정이 번거로울 수 있다. 태반은 욕조 안에서 분만하기도 하고 욕조 밖 분만대에서 분만하기도 하는데, 출혈을 대비해 가능한 한 분만대에서 하게 되므로 젖은 몸으로 왔다갔다 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또한, 관장을 충분히 잘 해줘야 욕조에서 대변이 떠다니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이런 번거로운 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중분만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자연 분만법 중 하나이다. 이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자연스러운 생명 행위가 100년의 근대의학 역사에서 ‘문화’는 없어진 채 ‘의료’행위로만 변질되는 가운데, 태아와 산모를 위한 좀더 자연스러운 출산환경을 되찾기 위한 과정에서 복구된 분만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산모와 태아의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수술이 불가피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러 가지 자연분만법으로 출산을 한다는 것은 산모와 태아에게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현대 의학이 가야할 길은 100명의 산모를 위한 100가지의 자연분만방식이 가능하도록 의료환경을 갖춰나가는 것이 아닐까. 산모들마다 느끼는 진통의 강도, 신체조건 등이 다 다른데도 일자형 침대에서 힘주기를 강요하는 획일적인 자연분만법은 자연분만율을 떨어뜨리고 난산 끝에 제왕절개율을 높이는 결과를 낳고 있으니 말이다.
아쉽게도 국내에서 수중분만이 가능한 병원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물’에서 출산하는 특별한 감동을 느껴보고 싶다면 수중분만을 고려해보자. 수중분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중에서 진통을 완화하면서 출산할 수도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분만방식을 적극적으로 찾아봤으면 한다.
(도움말= 인권분만연구회 회장 산부인과 전문의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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