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아기의 인권을 생각하는 ‘르봐이예 분만 철학’이 보급되면서 산부인과 병원의 분만실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인권분만 철학을 바탕으로 르봐이예 분만법을 잘 구현하고 있는 곳이라면 몰라도, 그저 생색내기로 그치는 병원이라면 예비 엄마 아빠는 분만실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이 자신들에게, 아기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 잘 모를 수 있다. 요즘 대부분 아빠들이 ‘우리 아이 태어날 때 탯줄은 내가 잘랐다’고들 자랑하듯 말하는데, 탯줄을 자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을까. 그 순간이 아기에게는 고통일 수도, 평화일 수도 있음을 말이다.
아기는 엄마의 뱃속에서 탯줄을 통해 숨을 쉰다. 숨을 쉰다는 것은 조직에 산소를 공급하고 대부분 이산화탄소인 찌꺼기를 버리는 것이다. 아직 아기의 허파가 제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태아의 혈액은 허파에서 공기를 만나지 않고 탯줄을 통해 흘러나가 태반에서 엄마의 혈액과 만나서 깨끗해진다. 그 혈액은 다시 엄마의 허파로 가서 산소를 얻고 이산화탄소 찌꺼기는 버리고 오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러니까 아기는 탄생 전에는 완전히 엄마에게 의존하여 숨을 쉬는 것이다. 그런데 아기가 엄마의 자궁문을 빠져나와 세상에 태어난 순간, 처음으로 아기의 폐에 공기가 들어가고, 아기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된다. 르봐이예 박사는 그의 저서 <평화로운 탄생(원제: Pour Une Naissance Sans Violence)>에서 묘사하기를 “아기는 처음 폐에 공기가 들어가는 순간, 피부를 태우고, 화상을 입히고, 온몸을 휩싸는 불덩어리를 삼키는 경험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이 끔찍한 불과 싸우려고 허우적대고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첫울음이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기의 첫 호흡이 일순간에 바로 폐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허파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도 탯줄로는 여전히 피가 흐르며 호흡 활동을 계속 한다. 새로운 기관인 폐가 완전히 일을 도맡아 할 수 있을 때까지 출산 후 3~5분간 활발히 움직이는 것이다. 아기는 이렇게 양쪽 경로로 산소를 받아들이다가 폐로 산소를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해지면, 탯줄 호흡이 멈추게 되고, 이 때 탯줄을 잘라야만 아기는 더 이상 폐호흡이 고통스럽지 않게 된다. 즉, 이 짧은 시간을 보장해줄 때 아기는 평화롭게 의존의 세계에서 독립의 세계로 넘어오게 되는 것이다.
자, 이제 출산을 앞두고 있는 부부들은 분만실에서 탯줄을 언제 잘라야 하는 지, 그것이 왜 중요한 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르봐이예 분만에서는 분만실 조명을 자궁안 밝기와 비슷하게 맞춰 태어난 아기가 시각적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배려할 뿐 아니라 아기가 태어나면 바로 엄마의 배 위에 올려줘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듣게 함으로써 안정감을 찾고 편안하게 폐호흡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탯줄 박동이 저절로 움직임을 멈추면 그 때 아빠가 탯줄을 자를 수 있도록 한다. 그 후 분만실내에 마련된 아기 욕조에서 양수의 온도와 같은 물속에 놀게하는데 , 아기는 물과 놀면서 스스로 분만시 스트레스로 경직된 몸을 풀면서 엄마의 자궁 양수 속에서 느꼈던 기분을 되찾는다. 세상과 마주했던 첫 고통이 안도감과 즐거움으로 바뀌면서 아기는 눈을 뜨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즉시 엄마젖을 빨게 하는데 아기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엄마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쪽쪽 소리를 내며 힘차게 젖을 빤다. 이때 엄마는 사랑의 호르몬에 취해 그동안 힘들고 고통스런 일들은 잊어 버리고 아기와 교감을 나누게 된다.
르봐이예 박사는 탯줄이 갑작스럽게 잘리느냐 스스로 움직임을 멈출 때까지 기다려주느냐에 따라아기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물론 이 세계에 대한 행동 양식까지도 결정된다고 보았다. 미셀 오당 박사도 출산 후 1시간 동안의 아기에 대한 배려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아기와 엄마가 어떻게 첫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아기가 훗날 타인과 주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접근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도 공감을 하고 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많은 것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특히,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조기교육, 영재교육, 각종 사교육을 통해 자녀가 좀더 훌륭하게 자라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바로 아기가 태어나는 첫 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면, 수동적으로 출산에 임해서는 안된다.
예비 부모 스스로가 아기와 산모,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출산방식을 찾고, 병원에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우리의 출산 문화가 좀더 발전하리라고 본다.
(글=인권분만연구회 회장 산부인과 전문의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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