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유럽연합(EU)이 긴축정책 완화를 공식화해 긴축에서 성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언론과 시장 전문가들은 불황 탈출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하면서도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불어넣지 않으면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 EU, 성장으로 '유턴' EU 집행위원회는 29일(현지시간) 내놓은 재정정책 권고에서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폴란드 등 6개 위기국에 대한 재정적자 감축시한을연장했다.
또한 이탈리아, 라트비아, 헝가리 등은 EU의 재정감독 대상 목록에서 삭제됐다.
이런 조치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각국이 재정위기 이후 허리띠를 졸라매는 재정 긴축을 택했다가 오히려 실물경제가 힘을 잃고 실업률만 치솟아 위기감이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주요 언론은 "불황 타개에 재정 긴축이 먼저냐, 경제 성장이 먼저냐"의 논란 끝에 나온 이번 조치를 "EU가 성장으로 유턴한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사설에서 "집행위가 노골적이고 광범위한긴축 정책에서 현저히 유턴을 했다"며 "유로존 국가들의 동시다발적인 재정 긴축은위기를 잘못 진단한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그리스처럼 재정지출을 줄여야 하는 나라도 있지만, 대체로 유로존의 적자와 부채 수준은 감당할 만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진짜 문제는 지나친 경상수지 불균형, 호황일 때는 범유럽이고 불황일 때는 국내용인 금융부문, 활기 없고 지속 불가능한 성장"이라고 분석했다.
부채가 어느 정도여야 위험 수준에 이른 것인지, 성장에 부채 축소가 필수적인지,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관점은 늘 엇갈린다.
유럽 재정위기가 본격화한 이후 한동안은 국가 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긴축론이세를 얻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90%를 넘으면 성장률이 현저히 둔화한다고 분석한 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로고프-라인하트' 이론을 핵심 근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이 이론에 계산상의 오류로 인해 심각한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밝혀져 긴축론의 이론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
게다가 실제로 뼈를 깎는 긴축재정을 시행한 유럽 국가들이 심각한 불황과 실업을 겪으면서 긴축론에 대한 회의가 커졌다.
그러면서 경기 부양론을 지속적으로 펼치는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비롯한 성장론자들이 힘을 얻었다.
EU와 주요국도 남유럽 국가들을 비롯한 위기 국가들의 불만이 폭발 단계에 이르자 조금씩 방향을 틀었다.
재정위기 국가의 긴축에 가장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독일은 최근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통해 청년 실업을 해결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과 피에르 모스코비치 프랑스 재무장관, 베르너호이어 유럽투자은행(EIB) 총재는 지난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모여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청사진을 공동 계획 중임을 시사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국영 재건신용은행(KfW)을 통해 재정위기국의 중소기업을 직접 지원하는 이른바 '미니 마셜 플랜'을 세우고 있다.
◇ 여전히 성장 전망 불투명…시장 "금융부문 변화 필요" 그러나 시장은 유럽의 성장 전망에 대해 쉽게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무하마드 라흐만 유럽담당 국장은 FT에 "이번 긴축 완화에도 국가들이 수정된 재정적·구조적 목표를 기꺼이 달성하려 할지, 또 그럴능력이 있는지는 여전히 큰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이번 EU 집행위의 조치에 대해 성장 촉진에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AP통신에 따르면 한네스 스보보다 유럽의회 사회당그룹 의장은 "집행위는 여전히 타당한 결론을 이끌어내고 노선을 변경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며 예산 감축 시한을 10∼15년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29일 유럽 증시도 EU 집행위의 결정을 호재로 받아들일 새도 없이 독일 실업률·물가상승률 상승, 유로존 은행 민간부문 대출 감소 등 경기지표 악화 소식에 반응해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EU가 성장과 고용 촉진을 위해 각국 정부에 주문한 구조개혁 실행이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성장을 위한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EU 집행위 역시 이번 권고를 내면서 단기간 내 유로존의 견고한 성장은 어려우므로 각국 정부가 구조 개혁을 추진해야 하며 그에 따라 정치·사회적 지지를 잃을수 있다는 점을 각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침체에서 빠져나와 성장을 하려면 무엇보다 금융부문에서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FT는 사설에서 "확장 재정정책에는 통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기록적으로 낮은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가 더 내려갈 수도 있겠지만, 전달 메커니즘이 깨진 만큼 위기국의 중소기업까지 대출 흐름이 닿으려면 ECB가 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유럽 은행들의 자본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면서 "유로존이 부러워하는미국의 회복은 상당 부분 금융부문에 대한 시의적절한 개입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 한국 증시는 긍정적 효과 기대 유럽 경제 정상화에 대한 회의감은 여전하지만, 한국 시장은 향후 EU와 주요국의 경제 부양책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서서히 높이고 있다.
특히 실물 경제가 살아나기까지는 오래 걸리더라도 증시에 신뢰감 상승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박상규·임정석 BS투자증권 연구원은 30일 보고서에서 "유로존 역내 주요국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 근접했다"며 "그간의 긴축노력과 각종재정대책으로 시장 신뢰가 커졌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현 시점에서 성장으로의 정책 기조 변화는 다시 시장 신뢰감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성현·배재현·정하늘 한화증권 연구원은 독일이 9월 총선까지 성장으로 기조 변화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하면서 "자본재 비중이 높은 수출 국가인 한국과 중국, 유로존과 연관이 높은 섹터에 일정 부분 모멘텀을 제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cherora@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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