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기업에 다니는 36세 직장인 A씨는 주말에는 과외 플랫폼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평일에는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회사 근처에서 배달 일을 한다. 하지만 최근 입소문을 타고 과외 수입이 늘면서 과외 교사로 전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보험설계사 자격증도 취득할 계획이다. A씨는 “과외 교사로 일하면 학부모들을 상대로 보험 영업을 하기도 수월하다”며 “배달 수입은 예전만 못해 점차 비중을 줄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플랫폼 등을 기반으로 일하는 노무제공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자가 15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가입자 증가세는 눈에 띄게 둔화한 반면, 여러 일을 병행하는 ‘N잡형’ 종사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한때 플랫폼 노동시장의 성장을 주도하던 배달라이더,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등의 증가세도 주춤하면서 노무제공자 노동시장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산재보험 가입자 수는 노무제공자 노동시장의 규모와 제도 적용 범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재편되는 노무제공자 시장
13일 국민의힘 김위상 의원이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노무제공자 산재보험 가입자는 150만3638명이다. 2021년 76만2937명, 2022년 80만4987명이던 가입자는 2023년 119만3801명으로 48.3%(38만8814명) 급증했다. 2024년에도 143만8067명으로 20.5%(24만4266명) 늘었다. 산재보험 의무 가입 업종이 확대되고 가입 기준이 ‘소득 기반’으로 바뀌면서 기존 통계에서 빠져 있던 노무제공자들이 대거 편입된 영향이다. 하지만 제도 개편 효과가 잦아들면서 올해 상반기 가입자는 지난해 말(149만218명)보다 1만3420명(0.9%) 증가하는 데 그쳤다.ADVERTISEMENT
업종별 가입자 추이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난다. 배달기사가 포함된 퀵서비스기사 가입자는 2023년 26만4247명에서 2024년 33만361명, 2025년 36만6337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올해 6월 말에는 36만1004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5333명(1.5%) 줄어들었다. 택배기사도 2025년 7만7703명에서 올 상반기 말 7만8356명으로 653명(0.8%) 늘어나는 데 그쳤다. 소프트웨어 프리랜서 역시 같은 기간 2만3169명에서 2만3891명으로 소폭 증가했다. 배달업계 관계자는 “배달 경기 악화와 시장 포화로 전업 배달기사가 대거 이탈하고, 그 자리를 용돈벌이로 잠깐 일하는 사람이 채우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대리운전기사도 감소세가 이어졌다. 2023년 9만7240명이던 가입자는 올해 6월 8만6058명으로 3년 새 11.5% 줄었다. 회식 문화 위축과 주류 소비 감소 등이 맞물리면서 대리운전 수요가 감소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N잡형’은 급증…산재보호 사각지대는 확대
반면 여러 곳에 노무를 제공하거나 임금근로와 노무제공을 병행하는 ‘N잡형’ 종사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산재보험 복수취득 노무제공자는 2023년 7월 35만8213명에서 2025년 7월 59만6067명으로 2년 만에 66.4% 급증했다. 같은 기간 한 곳에서만 일하는 단일 노무제공자는 77만3239명에서 78만5832명으로 1.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체 노무제공자 중 복수취득자 비중도 같은 기간 31.7%에서 43.1%로 높아졌다. 노무제공자 열 명 중 네 명 이상이 여러 일을 병행하고 있다는 의미다.ADVERTISEMENT
유형별로 보면 두 곳 이상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노무+노무’형이 40만4343명으로 가장 많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노무제공자를 병행하는 ‘노무+근로’형은 5만5263명에서 11만9133명으로 2.2배 늘었다. 세 곳 이상에서 일하는 ‘삼중 이상’ 취득자도 2만4135명에서 7만2591명으로 3배 급증해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부업을 한 임금근로자는 40만3000명으로, 이 중 중소기업 근로자가 37만9000명(94%)에 달했다.

이런 흐름 속에 ‘N잡 친화적’ 노무제공 업종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보험설계사가 대표적이다. 산재보험 가입자는 2021년 36만4437명에서 2023년 34만8153명으로 감소했지만, 2025년 42만6479명에 이어 올해 6월에는 43만8811명으로 늘었다. 다른 일과 병행하기 쉬운 직종 특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설계사는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고 초기 비용도 거의 들지 않아 본업이 있는 사람도 쉽게 뛰어들 수 있다”며 “대형 손해보험사들조차 부업을 권장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기존 노무제공자 업종에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부업도 확산하고 있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이미지·영상·글 제작 및 판매, AI 학습데이터 라벨링, 숏폼·유튜브 콘텐츠 제작 등이 대표적이다. 퇴근 후 스마트폰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어 직장인들의 새로운 부업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부업이 소득 보충 수단을 넘어 일상적인 노동 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이들을 제도권으로 포섭해 보호하는 방안이 새로운 정책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사회보험과 근로시간 규제는 여전히 개별 직종이나 근로관계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며 “생계유지를 위해 퇴근 후에도 부업에 나서는 취약계층 노동자일수록 각종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 이들을 위한 보호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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