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홍준표 전 대구시장 닮았죠?"</i>
기자가 묻기도 전이었습니다. 최근 동대구역 광장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바라보던 한 어르신이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지역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을 기리고 산업화의 의미를 되새기겠다는 취지로 추진된 사업이 공개된 뒤 논란이 두 갈래로 번졌습니다. 하나는 설치 과정이 적법했느냐는 행정적 논란, 다른 하나는 약 6억원을 들여 만든 결과물이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을 제대로 구현했느냐는 완성도 논란입니다.
◇ 설치 권한 놓고 법정 공방…운명의 시간 D-7
행정적 논란은 결국 법정까지 갔습니다. 국가철도공단은 광장 소유권이 공단에 있는 상황에서 대구시가 사전 승인이나 충분한 협의 없이 동상을 설치했다며 철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구시는 동대구역 광장을 오랫동안 관리해왔고 시설물 설치 권한도 있다는 취지로 맞서고 있습니다.ADVERTISEMENT
법원은 오는 10월1일 1심 판결을 내릴 예정입니다. 동상의 운명을 가를 시간이 이제 D-7로 다가온 셈입니다.

문제는 이미 적지 않은 세금이 투입됐다는 점입니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대구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박정희 동상 제작·설치 용역비는 4억8000만원입니다. 광장 정비공사비 4470만원, 조명시설과 시설물 관리부스 등 부대시설 설치비 5500만원까지 더하면 총 5억7970만원입니다. 2024년 12월23일 설치 이후 2025년과 2026년 별도 관리비는 없었다고 대구시는 밝혔습니다.
법원 판단에 따라 약 6억원을 들여 만든 시설물이 설치 2년도 채 되지 않아 철거 또는 이전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습니다. 만약 철거 판단이 내려질 경우 철거와 원상복구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애초 법적 분쟁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한 뒤 예산을 집행했는지도 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새로 취임한 추경호 대구시장도 일단 법원 판단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추 시장은 지난 22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우리 지역사회가 배출한 훌륭한 지도자"라고 평가하면서도 동상 소송과 관련해서는 "소송 쟁점과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 관련 일을 주로 하는 단체 등 보수 성향 단체 15곳은 최근 국가철도공단 소송 취하를 요구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대구시의 행정적 절차에 미비함이 있었더라도 상징성이 큰 동상을 철거하는 조치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 보수 심장 대구서도 엇갈린 평가…완성도 논란까지

행정 절차뿐 아니라 결과물 자체를 둘러싼 뒷말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비교적 강한 대구에서도 동상의 얼굴과 전체적인 인상을 두고 반응이 엇갈렸습니다.
현장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기를 보여주듯, 곳곳에서 해당 동상의 사진을 찍는 시민들이 포착됐습니다. 하지만 앞서 기자에게 먼저 "홍준표를 닮았다"고 말을 건 시민의 반응처럼 대체로 완성도 측면에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터져 나옵니다. 현장에서 직접 본 취재진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 했지만, 홍준표 전 시장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동상 공개 직후부터 박 전 대통령보다 홍 전 시장과 더 닮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외형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졌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상당수 시민들도 "만약에 얼굴만 박정희 대통령을 더 닮았어도 이런 논란까지는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ADVERTISEMENT
외형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 있지만, 수억원의 공공예산이 들어간 기념조형물이라는 점에서 '닮았느냐, 아니냐'는 단순한 호불호를 넘어 제작 과정에서 어떤 검증을 거쳤는지에 대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공공 동상의 외형과 고증을 둘러싼 논란은 과거에도 반복됐습니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은 갑옷과 칼, 자세와 얼굴 등을 둘러싸고 고증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2019년 국회 이순신 장군 동상 교체 과정에서도 기존 동상의 일본도 논란을 바로잡으려다 새 동상의 얼굴을 두고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진 바 있습니다.
ADVERTISEMENT
전문가들은 이런 논란이 반복되는 배경으로 충분한 숙의 절차의 부재를 짚습니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역사적 가치가 있더라도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시 전체 미관과 조화되는지 따져야 하고, 공감도 조사와 의견 수렴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의 경우 동상 건립이 제안되면 역사적 가치를 검증하고, 시민위원회가 공감도 조사를 거친 뒤 도시 공간과의 조화까지 검토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여러 지역에서 이 같은 사업이 늘어날 것"이라며 "갈등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숙의 절차를 자치단체 조례로 공식화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ADVERTISEMENT
이정우/신현보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