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권 초고가 아파트가 새로운 인맥 형성의 단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입주민 소개팅과 단지 간 체육대회에 이어 같은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2026년생 자녀와 가족을 위한 육아 모임까지 등장했습니다.
과거에는 학교와 직장, 고향이 대표적인 인맥의 연결고리였습니다. 최근 강남권에서는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가 새로운 기준으로 더해지는 모습입니다. 비슷한 생활권과 주거환경을 공유하는 입주민이 단지를 매개로 교류하는 이른바 '아파트연(緣)'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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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립니다. 가까운 이웃끼리 육아 정보를 나누고 친목을 다지는 생활공동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반면 자산 수준이 비슷한 입주민끼리 관계를 형성하면서 계층 간 울타리가 더 견고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2026년생도 거주 인증…이사하면 탈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지난 9일 한 플랫폼 앱에 '원베일리 키즈 26'이라는 모임이 개설됐습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에 거주하는 2026년생 자녀와 가족을 위한 모임입니다.
개설자는 "원베일리에서 함께 자라는 2026년생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한 모임"이라며 "아이들에게는 함께 자라는 동네 친구를, 부모에게는 오래 교류할 수 있는 이웃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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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 조건의 핵심은 실제 거주 여부입니다. 현재 원베일리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인증해야 합니다. 입주 예정자는 실제 입주를 마친 뒤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 모임에서도 탈퇴해야 합니다.
원베일리는 23개 동, 2990가구 규모입니다. 2023년 8월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 단지 전용면적 84㎡는 지난 5월 71억5000만원에 손바뀜하면서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입주민 모임을 둘러싼 논쟁이 단순한 이웃 교류를 넘어 계층 문제로 번지는 배경입니다.
반면 부모의 거주지가 자녀의 교우 관계를 가르는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자녀가 태어난 직후부터 아파트를 기준으로 관계망이 나뉘는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단순한 동네 육아 모임으로 볼지, 부모의 자산 격차가 자녀 관계에 반영되는 현상으로 볼지를 두고 의견이 갈립니다.
소개팅에서 '아파트 연고전'까지
원베일리에서 아파트를 매개로 한 모임이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2023년에는 입주민과 소유자의 미혼 자녀 등을 대상으로 한 소개팅 모임 ‘원결회’가 출범했습니다.지난해 5월에는 회원 약 100명이 한강에서 요트를 타며 소개팅하는 행사도 열렸습니다. 단지에서 시작된 관계를 결혼으로 이어주는 만남이 마련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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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 교류는 인근 아파트로도 확장됐습니다. 지난 5월 원베일리와 잠원동 ‘메이플자이’ 입주민들은 친선 체육대회를 열었습니다. 스크린골프와 농구, 탁구 종목에서 맞붙었습니다.

입주민들이 각자 자기 단지를 응원하면서 연세대와 고려대의 정기 교류전을 빗댄 ‘아파트 연고전’이라는 표현도 등장했습니다. 학연을 상징하던 교류전의 형태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재현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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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를 매개로 한 관계는 결혼 시장으로도 번졌습니다. 원결회는 ‘아파트 결혼 문화’를 내걸고 결혼정보회사 ‘원베일리 노빌리티’를 출범시켰습니다. 현재는 가입 대상을 강남·서초 거주자 등으로 확대했습니다.
아파트 거주 여부를 기반으로 상대를 연결하는 소개팅 앱 ‘아파팅(APTING)'도 등장했습니다. 이용자는 거주 중인 아파트를 인증합니다. 원하면 소득과 직장 등 경제적 조건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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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연과 지연이 출신 학교와 고향을 보여줬다면 아파트는 현재의 생활권을 드러냅니다. 고가 아파트에서는 단지명이 상대방의 경제적 여건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인식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생활공동체인가, 계층의 울타리인가
아파트를 기반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현상 자체는 새롭지 않습니다. 어느 동네에나 공동육아와 운동 모임, 주민 친목회가 있었습니다. 대단지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과거 골목과 마을이 담당했던 공동체 기능을 단지가 대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축 아파트의 커뮤니티 시설도 입주민 교류를 늘리는 요인입니다. 입주민들은 피트니스센터와 수영장, 카페, 독서실 등을 함께 이용합니다. 생활의 상당 부분이 단지 안에서 이뤄질수록 이웃과 만날 기회도 많아집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요즘 신축 대단지는 시설뿐 아니라 입주민끼리 연결되는 커뮤니티 기능 자체를 주거 가치의 하나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육아 모임도 비슷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이웃끼리 정보를 나누고 친해지려는 자연스러운 수요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