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베토벤 서거 200주년을 앞두고 그녀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청춘, 자연, 운명 등 8개의 강렬한 주제로 쪼개 여덟 차례의 무대에 올린다. 정형화된 클래식 연주회의 틀을 깨부수고 음악 본연의 야생성을 탐구해온 그녀답게, 이번 프로젝트 역시 평범함을 거부한다.
ADVERTISEMENT

최근 한국경제 아르떼와 만난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12세 때 홀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며 "인종차별로 힘들었던 유학 생활을 버티게 해준 정신적 멘토가 베토벤"이라고 고백했다. 지난 3월 첫 번째 무대를 마친 임현정은 다음 달 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불멸'을 주제로 베토벤 시리즈를 이어간다.
ADVERTISEMENT
임현정은 2012년 EMI에서 낸 데뷔 앨범으로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이름을 알렸다. 2009년 엄청난 속주로 유명한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는 모습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자, EMI와 계약을 맺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으로 첫 앨범을 냈다. 당시 스물네살이었던 그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세계 최연소 연주자 타이틀을 얻었다. 앨범은 한국인 최초로 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콩쿠르라는 기성 제도의 권위를 거치지 않고 인터넷과 대중을 향해 직행한 드문 케이스다.

이번 공연에서 임현정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시작으로 5번, 7번, 21번을 차례로 연주한다. 특히 '발트슈타인'이라는 부제로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21번은 임현정이 가장 애정하는 베토벤 작품 중 하나다. 그는 "베토벤의 청력이 크게 악화한 시기에 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기운을 그리듯 황홀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며 "베토벤 하면 떠올리는 투쟁적인 모습 외에도 그의 다채로운 음악적 매력을 공연을 통해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현정은 이전과 다른 형식의 공연을 기획하는 일에도 열정적이다. 2024년 그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5개곡(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포함)을 피아노 독주곡을 편곡해 무대에 올렸다. "작품이 너무 아름다워서 오케스트라 파트까지 전부 다 알고 싶었어요.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모든 걸 알고 싶은 마음과 같죠."
ADVERTISEMENT

오는 11월 17일 경주예술의전당에서는 법륜스님과 '즉문즉연' 무대도 준비했다. 역시 파격의 연장선. 사연을 듣고 그 자리에서 피아노 선율을 즉흥으로 빚어내는 공연이다. 임현정은 "바흐와 쇼팽 같은 거장들이 모두 위대한 즉흥 연주자였다"며, 악보에 갇힌 현대 클래식의 숨통을 틔우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악보의 권위에만 얽매이지 않고 음악과 삶을 직접 연결하려는 시도다.
ADVERTISEMENT
임현정은 '어떤 피아니스트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베토벤을 떠올리게 하는 단단한 소신을 밝혔다.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에는 연연하지 않는 편이에요. 베토벤도 작품이 혹평받았을 때 '신만이 줄 수 있는 불멸의 영예를 그들이 나한테 줄 수도, 뺏어갈 수도 없다'고 했거든요. 소음의 볼륨을 낮추고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허세민 기자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