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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지켜본 '집안 싸움'…노엘 울고, 리암 웃자 "AI" [김수영의 디깅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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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지켜본 '집안 싸움'…노엘 울고, 리암 웃자 "AI" [김수영의 디깅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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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노엘과 리암이 싸웠습니다. 노엘은 떠났고, 밴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 밤 공연은 없으며, 남은 투어도 취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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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8월 28일 오아시스의 마지막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록 앙 센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기 직전이었습니다. 대형 스크린에도 '밴드 내 다툼으로 인해 오아시스 공연이 취소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띄워졌습니다. 현장에 있던 관객들은 웃었습니다. 일종의 이벤트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실제 이날 대기실에서는 '형제의 난'이 벌어졌고, 노엘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그 뒤로 팬들은 16년간 오아시스를 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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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현재. 눈물을 훔치는 노엘 옆에서 해맑게 웃으며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리암의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지난해 재결합을 발표하고 성공적으로 월드투어를 마친 이들의 서사를 영화화한 다큐멘터리 '오아시스: 돈 룩 백 인 앵거'의 시사회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해당 영상에는 "AI"라는 한 팬의 댓글이 달려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AI 영상은 아니었는데요. 활동 내내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끝내 해체의 원인까지 됐던 갤러거 형제의 지난한 역사를 지켜봐 온 이들의 심경을 압축한 유쾌한 한 마디였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 음악업계에서 가장 높은 관심을 받았던 일은 단연 '오아시스의 재결합'이었습니다. 스스로 "우린 살벌하게 싸운다"고 말할 정도인 갤러거 형제의 깜짝 재결합에 음악 팬들은 반가움과 함께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무대에 설 때까지는 모른다. 아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안심하면 안 된다'라며 두려움에 떨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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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두 형제는 손을 꼭 잡고 무대에 올랐죠. 이후 뒷짐을 진 채로 노래하는 리암, 기타를 치는 노엘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노엘은 버킷햇을 쓴 머리 위에 탬버린을 얹고 자유분방하게 무대를 누비는 리암을 은은한 미소로 바라보았습니다. 많은 팬이 "꿈을 꾸는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에 따르면 리암이 참여하는 첫 리허설 당일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오랜 시간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던 형제가 마침내 만나는 자리였으니까요. 리암은 본인의 파트가 끝나자마자 문을 박차고 나갔고, 노엘은 "쟤는 진짜 아무것도 신경 안 쓰는구나"라며 존경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리암은 말했습니다. "무신경해 보이려면 얼마나 신경을 써야 하는지 아냐"고. 오아시스의 프론트맨인 그는 재결합 투어를 위해 술과 담배를 모두 끊는 열정까지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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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만큼 형제에게 오아시스는 특별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팬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10년 세월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오아시스의 음악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마음에 닿고 있었습니다. 재결합 투어는 전 세계에서 매진 열풍을 일으키며 이들의 건재함을 증명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오아시스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세대가 아닌, 젊은 층에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진행된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 공연의 예매자 연령 비율은 20대가 55.5%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어 30대(28.7%), 10대(7.7%), 40대(5.2%), 50대(2.1%) 순이었죠. 사실상 오아시스의 전성기를 함께 겪지 않았던, 10~30대의 비중이 90%를 넘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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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갤러거 형제 역시 이 같은 현상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들은 "음악의 힘"을 강조했습니다. 노엘은 "공연장에 서른도 안 된 애들이 가득하다. 그 친구들이 우리 노래를 부르며 펑펑 울더라. 정말 신기하다"면서 "오아시스 세대들이 우리 음악을 가슴에 품었다가 자식들에게 물려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아시스의 탄생은 35년 전인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리암은 맨체스터에서 스톤 로지스의 라이브 공연을 본 뒤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고, 지역밴드 더 레인을 결성해 보컬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비틀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는데요. 그만한 영감을 줄 만한 '곡'을 가진 사람이 바로 노엘이었습니다. 리암은 1991년 다수의 곡을 보유 중이었던 노엘에게 밴드 합류를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오아시스가 결성됐습니다.

    이후 수많은 명곡이 탄생하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은유보다는 일상적이고 직설적인 언어로 쓴 오아시스의 곡은 빠르게 음악 팬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아일랜드 이민 2세로, 맨체스터 노동자 계급 가정에서 자란 이들이 쓰는 멜로디와 가사는 곧 '노동 계층의 목소리'로 여겨졌습니다. 1990년대 브릿팝 열풍의 한 가운데에서 남부 중산층·예술학교 출신의 블러(Blur)와 대결 구도가 형성되며 한층 밀접하고 보편적인 연대감으로 거센 지지를 받았습니다.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희망·위로·자유 등의 개념을 놓치지 않는 음악의 힘은 강력했습니다. '리브 포에버(Live Forever)', '스탠드 바이 미(Stand by me)', '왓에버(Whatever), '원더월(Wonderwall)' 등의 곡이 시대를 초월해 현재 젊은 세대들의 마음마저 치유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화려한 기교나 퍼포먼스 없이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멜로디컬한 음악을 '그냥 서서' 부르거나, 시선을 끄는 비싼 겉치레 대신 캐주얼한 옷을 툭 걸치는 모습까지도 이들의 정체성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중시하는 요즘 청년들의 신조와 딱 들어맞는 부분이었습니다.

    길었던 싸움의 끝은 시간이 흐르듯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즉흥적이고 반항적인 무대 매너의 리암과 곡을 직접 쓰며 밴드의 음악적 방향성을 잡는 진지하고 통제적인 성향의 노엘. 늘상 부딪혔던 둘은 현재 나란히 카메라 앞에 앉아 과거를 회상하며 미소 짓고, 재밌는 영상이 있으면 서로 보내주는 사이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의 자녀들도 재결합을 계기로 친해졌다고 합니다.

    갤러거 형제는 "우리 노래를 듣고 눈물짓는 팬들을 보면 우리도 눈물이 흐른다"고 했습니다. 국경과 세대를 뛰어넘은 음악의 힘이 '30년 형제의 난'을 종결시킨 셈입니다. 이들은 "이제 기 싸움 따위는 하지 않는다"며 "음악이, 오아시스가 우리 형제를 살렸다"고 표현합니다.



    사실 불멸의 히트곡 '돈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를 프론트맨 리암이 아닌 기타리스트 노엘이 부르게 된 배경을 두고도 각종 '설'이 있었죠. 매번 리암이 무대에서 휙 나가버리면 본인이 그 자리를 채워 공연하는 것에 대한 짜증이 있었던 노엘은 '돈 룩 백 인 앵거', '원더월' 중 하나는 아예 자기가 부르겠다고 했다는데요. 선택권을 리암에게 줬고, 고민과 결정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야 어쨌든, 이제 리암은 노래하는 노엘을 위해 기꺼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기다립니다.

    결국 오아시스의 서사는 '돈 룩 백 인 앵거'의 메시지와 발걸음을 맞추게 됐습니다. 형제는 자신들이 노래한 대로, 더 이상 분노에 찬 채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다짐했죠. 기세를 이어 2027년 투어까지 발표했습니다. 전 세계 팬들은 투어 장소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며 벌써 흥분과 기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투어의 시작을 여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는 오아시스가 음반사 크리에이션 레코즈의 사장 앨런 맥기를 만나 인생이 바뀐 곳으로 상징성을 갖습니다. 이 밖에도 갤러거 형제의 고향이자 맨체스터 시티 FC의 홈구장인 맨체스터 에티하드 스타디움에 섭니다. 밴드가 해체했던 프랑스 파리, 부모님의 고향인 아일랜드 등에서 공연합니다. 1996년 이틀간 2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영국 넵워스도 재차 달굽니다. 당시 영국 인구의 4~5%에 달하는 250만~260만명이 티켓 예매를 시도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제2의 전성기를 연 지금의 오아시스가 내년에는 또 얼마나 많은 팬 앞에서 '넵워스의 전설'을 새로 쓸지 기대됩니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투어 일정에는 한국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한국 팬들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지난해 공연의 여운을 다시 느껴보고 있습니다. 오아시스 굿즈 티셔츠를 입고 극장을 찾은 이들이 꽤 많은데요. 영화에는 고양 공연의 분량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고양종합운동장의 전경부터 한국의 거리, 한국어 등이 나와 반가움을 자아냅니다. 한국 외에도 지역별로 본 무대 장면이 다채롭게 들어가 있어 공연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단, 전립선암 치료로 투어 도중 하차했던 원년 멤버 본헤드와 관련한 내용은 극히 단편적이라 아쉬움이 남을 수 있습니다.

    음악·공연·영상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즐거움을 주는 시대. 숨은 이야기를 알면 더 보이고, 더 들립니다. 당신의 취향을 찾을 때까지 같이 깊게 파고드는 '디깅메이트'가 되어드리겠습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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