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전을 부치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전과 잡채는 물론이고 갈비찜과 불고기, 나물까지 데우거나 간단히 조리하면 되는 '간편식'이 명절 밥상의 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다. 1인 가구 증가와 명절 문화 간소화에 더해 "먹는 음식은 유지하되 만드는 수고는 줄이자"는 소비가 확산하면서 식품·유통업계도 추석 간편식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명절 소비의 장기 추세상 이 같은 흐름이 뚜렷하다. GS샵이 2015년과 2025년 추석 직전 3주간 TV홈쇼핑과 모바일 앱 매출을 비교한 결과 식품 매출 비중은 9.3%에서 17.9%로 10년새 2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식품 매출액은 80% 증가했다. 반면 냄비와 프라이팬 등 주방용품 매출 비중은 8%에서 3.3%로 절반 넘게 떨어졌고 매출액도 38% 감소했다. 명절에 음식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를 직접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를 사는 소비는 줄었단 얘기다.
명절 음식도 '외주화'…10년 새 달라진 장바구니
명절 간편식 확대는 전체 가정간편식(HMR) 시장 성장과 맞물려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축산물·건강기능식품 생산실적 통계자료'에 따르면 즉석섭취식품, 신선편의식품, 즉석조리식품, 간편조리세트를 합친 국내 간편식 출하액은 2020년 3조6526억원에서 2024년 6조3425억원으로 4년 만에 73.6%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6조381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데워 먹거나 간단히 조리하는 즉석조리식품 출하액은 같은 기간 2조103억원에서 2조9555억원으로 47% 늘었다.ADVERTISEMENT
간편식의 역할도 달라졌다. 과거 라면이나 만두, 즉석밥처럼 평상시 한 끼를 빠르게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손이 많이 가는 '특식'을 대체하는 영역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시장조사업체 NIQ는 소규모 가구 증가와 여성 경제활동 확대, 외식 물가 상승 등을 국내 HMR 시장이 성장한 주요 배경으로 꼽는다. 식품업체와 대형 유통업체가 품질과 종류를 끌어올린 점도 간편식의 일상화를 뒷받침했다.
특히 명절은 간편식의 '효용'이 극대화되는 시기다. 전이나 잡채, 갈비찜처럼 여러 재료를 손질하고 오랜 시간 조리해야 하는 음식이 한꺼번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기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부 메뉴만 간편식으로 바꿔도 조리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명절 간편식이 단순히 '혼자 먹는 한 끼'를 넘어 가족 상차림을 보완하는 상품으로 확장되는 배경이다.
전·나물에 갈비까지…'한 상'을 통째로 판다
업계는 이러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 중이다.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고 플랫폼에서는 전면에 간편식을 진열하고 있다.ADVERTISEMENT
올해 추석을 앞두고 GS샵은 해물누룽지탕, 한우등심불고기, 갈비찜 등 별도 손질 없이 상에 올릴 수 있는 간편식을 편성했다. 롯데백화점은 간편식 선물세트를 직전 명절보다 40% 확대하고 손질 수산물 물량도 2배 늘렸다. 나물 9종과 모둠전 7종, 일품요리 5종에 식기까지 묶은 '한상차림 선물세트'도 처음 내놨다. 개별 간편식을 파는 단계를 넘어 명절 상차림 자체를 상품화하는 셈이다.
대형마트에서 나타난 매출 증가도 업계가 간편 제수음식에 힘을 싣는 배경이다. 롯데마트의 제수용 간편식 매출은 2025년 추석 시즌(9월1~18일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약 20% 성장했으며, 이는 직전 해(2024년) 성장률 15%보다 가파른 수치로 나타났다. 이마트 피코크 간편 차례상 역시 2024년 추석 기준 전년 대비 31% 증가한 바 있어, 명절 간편식 시장이 매 명절마다 두 자릿수 성장률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떡갈비와 LA갈비, 전 등이 대표 인기 품목이었다.
'혼추족'까지 잡는다…편의점도 6000원 명절 한상
명절 간편식 시장이 커지면서 판매 채널도 대형마트에서 편의점·홈쇼핑·백화점으로 넓어졌다. 특히 편의점에서는 차례상을 준비하는 가족 단위 수요와는 다른 '1인 명절식'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올해 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는 일제히 추석 간편식 라인업을 내놨다. 메뉴는 불고기·잡채·모둠전·삼색나물·떡갈비·송편 등으로 다양해졌다. 도시락 한 개에 명절 음식을 조금씩 담거나 잡채와 전을 별도 상품으로 구성하는 식이다. 주요 명절 도시락 가격도 6000원대로 책정됐다.
실제 편의점 명절 간편식 수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CU는 자체 조사 결과 명절 당일을 포함한 3일간 명절 도시락 매출 증가율은 전년 대비 2023년 18.5%, 2024년 20.8%, 2025년 12.2%로 3년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명절 연휴 도시락 매출 가운데 대학가·원룸촌·오피스텔 등 1인 가구 밀집 지역에서 발생한 비중은 60.5%에 달했다. 세븐일레븐도 2025년 추석 연휴 간편식 매출이 전년 추석보다 삼각김밥 23%, 도시락 15% 각각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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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명절 간편식이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는 가족 상차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대신하는 전·갈비·나물·수산물 등으로, 편의점에서는 1인분으로 명절 기분을 낼 수 있는 도시락과 소포장 상품으로 시장이 양분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례상 비용 31만원…'덜 만들고 필요한 만큼 산다'
물가 부담도 간편식 수요를 뒷받침하는 요소로 꼽힌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조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 4인 기준 제수용품 25개 품목의 평균 구입 비용은 31만310원 수준으로 조사됐다. 전년보다 2.3% 낮아졌지만 한 번의 명절 상차림에 30만원 넘는 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다.간편식의 경우 필요한 양만 구매할 수 있고, 재료 손질과 조리에 필요한 시간, 남은 식재료 처리 부담까지 줄일 수 있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특히 가족 규모가 작아질수록 여러 종류의 전과 나물, 차례 음식 등을 각각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크고, 효율도 떨어진다고 느끼는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간편식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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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자체를 간소화하는 흐름도 맞물린다. GS샵의 10년 소비 데이터에서 식품 매출이 늘어나는 동안 주방용품 매출이 줄었다는 것은 명절 음식을 먹는 문화와 직접 조리하는 문화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명절 음식은 먹되 명절 노동은 줄이는' 방식으로 소비가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식품·유통업계 입장에서도 명절은 성숙기에 접어든 HMR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험대라는 반응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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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한 끼용이던 간편식이 복날 삼계탕, 명절 전·갈비·잡채처럼 조리 난도가 높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메뉴로 확장되는 상황이다. 명절 간편식 시장 변화는 단순히 '요리를 하지 않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 음식과 사서 차릴 음식을 구분하고, 가족 규모와 시간에 맞춰 필요한 만큼 구매하는 방식으로 명절 식문화가 재편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간편식 시장이 전과 잡채에서 갈비와 나물, 수산물, 한상차림 세트까지 상품군이 넓어지는 가운데 앞으로 유통업체의 경쟁도 '간편한 한 끼'를 넘어 얼마나 자연스럽게 가족의 명절 밥상에 들어갈 수 있느냐에 달릴 것으로 보인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