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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 차릴 때마다 올린 ‘정종’…알고 보니 일본 브랜드였다고? [명욱 교수의 주류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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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 차릴 때마다 올린 ‘정종’…알고 보니 일본 브랜드였다고? [명욱 교수의 주류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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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 되면 전통주 시장에서 검색량이 급등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정종'이다. 구글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2025년 추석이나 설날 시즌에는 '전통주'라는 키워드보다 '정종'의 검색량이 훨씬 높게 나타난다. 수많은 한국인이 명절 차례주로 정종을 찾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차례주로 정종을 찾는 일차적 이유는 제례 예법에 있다. 제사 때 읽는 축문(祝文)에는 '근이청작(謹以淸酌)'이라는 문구가 들어간다. 이는 '삼가 맑은 술을 바친다'는 뜻으로, 정갈하게 걸러낸 맑은 술을 올리는 것이 도리였다. 문제는 이 맑은 술의 대표 격으로 대중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명칭이 바로 정종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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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정종은 한국 고유의 술 이름이 아니다. 이는 일본식 청주(사케)의 특정 브랜드명에서 유래했다. 현재 일본에는 정종(正宗)이라는 한자를 사용하여 술을 만드는 양조장이 100~150곳에 달한다. 19세기 일본에서 정종이라는 이름이 대유행하며 고급 사케의 대명사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정종이라는 이름의 기원
    이 명칭의 기원은 일본 고베 나다 지역의 야마무라 주조로 올라간다. 당주 야마무라가 불교 선종의 대표적 어록인 《임제록(臨濟錄)》에서 '임제정종(臨濟正宗)'이라는 구절을 발견한 것이 계기였다. 여기서 정종(正宗)은 '바른 으뜸' 즉 정통 계보를 의미한다. 야마무라의 본래 노림수는 언어유희였다. 정종을 일본어 음독으로 읽으면 '세이슈'가 되는데, 이는 청주(淸酒)의 일본어 발음과 완전히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정종(正宗)이라는 두 글자에는 이미 '명검(名劍)'을 뜻하는 옛말 '마사무네'라는 훈독이 따로 굳어져 있었고, 하필 임진왜란 당시 조선 침략에 가담했던 센다이의 다이묘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의 이름까지 같은 발음이었다. 대중은 청주와의 언어유희 대신 이 익숙한 읽기 쪽으로 끌려갔고, 결국 술도가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마사무네'라는 이름이 굳어져버렸다. 타 양조장들이 너도나도 정종 이름을 쓰기 시작하자, 야마무라 주조는 상표를 차별화하기 위해 '사쿠라마사무네(櫻正宗/앵정종)'로 리브랜딩했다.
    강화도 조약으로 정종 한반도에
    이후 강화도 조약으로 사쿠라마사무네, 키쿠마사무네(菊正宗) 등이 한반도에 수입되었고, 1880년대부터 국내 진출 일본인 양조장들이 정종 브랜드를 대거 사용했다. 일제는 1909년 주세법으로 주류에 과세하고 면허제를 도입해 가양주 문화를 옥죄기 시작했고, 1910년 강제 병합 후 1916년 주세령을 통해 탁주·약주·소주를 '조선주'로, 청주를 사실상 일본식 청주로 규정하면서 한국 술의 역사에서 청주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배제했다. 이 통제는 갈수록 강화되어, 1934년에는 자가용 면허 제도 자체가 완전히 폐지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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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의 원조, 한국에 공장을 세우다
    정종이라는 브랜드가 한반도에 결정적으로 뿌리내린 계기는 1929년 정종 브랜드의 원조인 야마무라 주조의 마산 진출이었다. 야마무라 주조는 자회사 법인인 쇼와주류주식회사와 야마무라 주조 마산 공장을 세웠다.

    이곳에서 앵정길(사쿠라 마사요시)와 사쿠라 마사무네(앵정종), 그리고 대전정종(大殿正宗)을 생산했다. 이 물량은 경성, 평양, 부산 등 국내 주요 도시는 물론 만주 등 해외로까지 대량 유통 및 홍보되었다.
    조선주의 붕괴와 정종의 대두
    1930년대 후반 전시 체제는 조선주 양조업계의 붕괴를 가속했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38년 국가총동원법 발효 이후 조선총독부는 쌀 소비를 극도로 제한했다. 특히 주류 제조 시 백미 사용을 금지하고 7분도미만을 공급했다. 전통 누룩을 사용하는 조선주는 겨층이 남은 7분도미를 사용할 경우 잡균 번식과 당화 불량으로 발효가 파탄 났다. 반면 일본인 자본의 청주 공장은 군량 공급 및 당국의 혜택으로 우선적인 원료를 배정받았고, 품질 저하로 조선주 양조장이 폐업하는 동안, 최소한의 품질을 유지한 일본식 정종은 매출이 25% 급증하며 시장 독점을 완성했다.




    그 결과 1940년대에는 와까마스 정종, 고려금 정종, 조선국 정종, 대정 정종 등 다양한 정종 브랜드까지 속출했고, 고급 청주의 대명사로 고착화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인식은 이어졌다. 1953년 8월 2일 자 경향신문에는 이순신 장군으로 보이는 일러스트와 함께 '청주 정종표'라는 광고가 실려 정종이 마치 전통주인 양 묘사되기도 했다.

    1962년 치안국의 절주 계몽 운동 지침에서는 폭음으로 인한 사고를 줄이고자 "한 사람의 표준 주량"을 정종 3합, 약주 5합, 소주 2합으로 못박기도 했다. 정종이 이미 일상적 도량형인 '합(合)' 단위로 약주·소주와 나란히 다뤄질 만큼 대중적 술 어휘에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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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
    1960년대 후반부터 정종 대신 청주라는 용어를 쓰자는 운동이 일었으나 쉽게 바뀌지 않았다. 정종이라는 발음 자체의 친숙함도 한몫했다. 한국사에는 '정종'이라는 묘호를 가진 왕이 둘 있었다. 조선 2대 왕 정종(定宗)과, 22대 왕 정조다. 정조의 원래 묘호가 대한제국 설립 전까지만 해도 정종(正宗), 한자까지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1963년 12월 영월 석회광업소가 정종대왕(정조)의 태실을 무단 훼손하고 방치한 사건이 1965년 사회적 이슈로 보도되면서, 정종(正宗)이라는 단어는 대중에게 역사적·문화적으로 더욱 친숙하게 남아버렸다.

    더 큰 문제는 용어를 '청주'로 바꾸더라도 구조적 불합리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행 주세법상 한국의 전통 누룩을 1% 이상 사용하면 법적으로 '청주'라 부를 수 없다. 대신 '약주'로 분류해야 한다. 현행법상 청주는 일본식 발효제인 입국을 99% 이상 사용해야 하며, 쌀 외에 다른 잡곡이 들어가도 청주 지위를 잃는다. 이는 1916년 일제가 한국 술을 청주 개념에서 독점시켰던 주세령의 골격이 100년 넘게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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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적으로 한국인은 정종이라는 일본 브랜드명을 명절 차례주로 부르고 있으며, 정작 전통 방식으로 맑게 빚어낸 술은 법조항에 막혀 청주라 부르지 못하고 약주라 칭해야 하는 모순에 직면해 있다. 비록 오랜 기간 일본식 청주 방식을 계승해 온 양조업계의 입장이 존재하더라도, 전통 누룩으로 빚은 맑은 술에 청주라는 제이름을 찾아주지 못하는 현행 법령은 개선 조치가 필요하다.

    결국 정종(正宗)이라는 술 이름 하나에는 너무 많은 것이 겹쳐 있다. 그 출발은 일본이었고, 불교의 선어(禪語) '임제정종(臨濟正宗)'이었고, 이 한자를 일본어로 음독하면 '세이슈'가 되어 청주(淸酒)와 발음이 같아지는 언어유희에서 상표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일본인들은 이를 훈으로 읽어 명검(名劍)을 뜻하는 옛말 '마사무네'로 읽어버렸으니, 술도가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이름으로 굳어진 것부터가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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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그 발음은 임진왜란 때 조선 침략에 가담했던 센다이의 다이묘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의 이름과도 같았고, 심지어 대한제국 선포 이전까지는 우리 조선 22대 임금 정조(正祖)의 원래 묘호이기도 했다. 불교의 깨달음과, 술 상표의 언어유희와, 침략자의 이름과, 우리 임금의 묘호가 우연히 한 발음 안에 뒤엉켜 있는 셈이다.

    그러니 이제 이 이름을 앞에 두고 묻고 싶다. 이 많은 사연을 알고 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명절 차례상 위에 '정종'을 올리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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