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노동 계급 기준’

수치만 보면 미국에서 노동자는 늘었다. 10일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가 공개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60%가 자신을 ‘노동 계급’이라고 답했다. 2024년(54%)과 비교해 6%포인트 높아졌다. 블루칼라(77%)뿐 아니라 사무직 등 다른 직종에서도 61%로 높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결과가 모호해진 노동자의 개념적 기준을 방증한다고 분석했다. 정치학자 케빈 루닝은 “여러 조사를 살펴보면 미국인은 경제적으로 불안전하다고 느낄 때 스스로를 노동 계급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AI 물결로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커지자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답하는 사람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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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제조업에서 일하는 전통적 의미의 육체노동자는 크게 줄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1264만 개로 전체 비농업 고용의 7.9%에 불과했다. 제조업 일자리 수가 정점을 찍은 1979년 6월(21.7%)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비중이다.
이런 가운데 기술 혁신으로 ‘생산 수단을 가진 자본가와 노동력을 대가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경계는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특히 1970년대부터 컴퓨터와 산업용 로봇 등으로 반복 업무가 대체돼 노동자 사이에서도 생산성 및 임금 격차가 벌어졌다. 다론 아제모을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파스쿠알 레스트레포 보스턴대 교수가 1980~2016년 미국 노동시장을 분석한 결과 자동화 노출 상위 20% 집단의 실질임금은 12% 감소했지만 자동화에 가장 덜 노출된 집단의 실질임금은 약 26% 증가했다.
◇AI가 긋는 새 계급선
이 같은 변화는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회계, 금융, 법률, 프로그래밍 등 고숙련 전문직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해 “세계 노동자 4명 중 1명이 생성형 AI에 일정 수준 이상 노출됐다”고 발표했다. 사회적 변화를 등에 업고 ‘투잡’과 투자로 소득을 끌어올리는 노동자는 더욱 늘고 있다. 브랑코 밀라노비치 뉴욕시립대 교수에 따르면 자본소득 상위 10% 가운데 노동소득 상위 10%가 차지한 비율은 1950년 약 10%에서 2018년 약 30%로 높아졌다. 이 같은 추세는 AI로 가속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과 자본에서 모두 부를 늘리는 ‘호모플루티아’(부유를 뜻하는 라틴어)가 제3 계급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ADVERTISEMENT
AI의 직접적 수혜를 누리지 못하거나 자본소득을 올리지 못하는 노동자의 소득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브렌트 나이먼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는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챗GPT를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지금 인간이 하는 수많은 일을 머지않아 기술이 대신하게 된다는 데 공감할 것”이라며 “전체 부가가치에서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을 일컫는 노동소득분배율이 추세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2분기 미국 비농업 기업의 노동소득분배지수는 93.446으로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47년 1분기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2차대전 직후에는 115.996이었다.
앤디 케슬러 월스트리트저널(WSJ) 칼럼니스트는 “미국 민주사회주의자 사이에서 ‘노동 계급을 중심에 둔 정치’라는 슬로건이 나오지만 오늘날 노동 계급은 최상류부터 하류까지 전 계층에 퍼져 있다”며 “과거의 계급 구분이 정치·사회적으로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손주형 기자 handb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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