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집은 더위와 추위, 맹수를 피하기 위한 생존의 공간이었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먹고 자는 것뿐 아니라 쉬고 즐기는 생활의 공간이 됐다. 집값이 무섭게 뛰는 지금은 자산의 의미가 커졌다. 어느새 집에는 ‘3.3㎡(평)당 얼마’라는 수치가 따라붙었다.하지만 집의 가치를 숫자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집을 기억과 몽상의 공간이라고 했다. 인간의 기억과 상상력, 무의식이 투사되는 곳, 그 공간이 인간을 꿈꾸게 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억 속의 나’는 그때 머물렀던 그 공간과 떼어놓을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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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젊은 층에서 확산하는 ‘핀셋 인테리어’는 집이 아니라 집 안 ‘공간’에 집중한다. 집 전체를 뜯어고치는 대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특정 공간에 공을 들인다. 거대한 집값의 장벽 앞에서 내 집 마련도, 이사도 쉽지 않다면 내가 머무는 공간이라도 바꾸겠다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물리적 행위인 ‘집 꾸미기’를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철학적 행위로 전환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만의 공간을 꾸미는 일은 나를 들여다보는 관찰에서 시작한다. 밝은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어두운 조명 아래서 마음이 평온한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긴장이 풀리는지, 책을 읽을 땐 책상보다 창가 자리가 더 편안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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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집을 고치는 일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과 닮았다. 낡은 것을 버리고,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내면 오래 곁에 두고 싶은 것만 남는다. 한 평 남짓한 공간을 바꿨을 뿐인데도 집이 편안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내 마음이 듬뿍 담겼다는 의미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에서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권리가 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공간, 나를 나답게 해주는 곳.
핀셋 인테리어는 ‘한 평의 행복’을 준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색을 고르고, 몸을 깊숙이 누일 소파를 들인다. 반신욕을 즐길 욕조 주변을 꾸미고 식물에 작은 자리를 내준다. 하루의 피로를 내려놓을 나만의 ‘힐링 스폿’이 내 몸과 마음을 어루만진다.
한 번이라도 집을 꾸며본 사람은 안다. 집 한켠을 바꾸다 보면 뜻밖의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무엇을 버릴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것이 도드라진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사람은 때로는 공간으로 시간을 기억한다. 어린 시절 뛰놀던 운동장에 서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사랑하던 사람과 함께 앉았던 의자엔 여전히 그때 감정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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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머무는 집에도 그런 소중한 시간이 켜켜이 쌓인다. 적은 비용으로 확실한 행복을 누리려는 ‘소확행’이 집안으로 스며드는 이유다. 작다고 해서 행복의 깊이가 얕은 것은 아니다. 매일 반복해서 누리는 행복은 더 선명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집에서 반신욕을 즐기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아끼는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소중하다. 좋아하는 음식을 요리하는 시간, 오랜 기간 모은 피규어가 반겨주는 공간이 에너지를 충전해 준다.
굳이 집 전체일 필요는 없다. 한 곳이면 충분하다. 내 마음을 오롯이 내려놓을 공간, 누구도 침범하지 않는 나만의 한 평. 그곳이 ‘마이 스위트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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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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