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더그랜드롯데 서울’. 메인타워 1층 회전문을 밀고 로비에 들어서자 은은한 향이 코끝을 먼저 스쳤다. 달콤한 초콜릿과 상큼한 시트러스가 섞인 듯한 향이다. 롯데를 상징하는 ‘가나초콜릿’에서 영감을 받아 새롭게 만든 시그니처 향이라는 게 호텔 관계자의 설명이다.
시선을 돌리자 네이비와 라이트블루 색깔로 꾸며진 꽃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더그랜드롯데 서울이 새롭게 정한 브랜드 컬러다. 벽면에는 최명영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50년 넘게 작품 활동을 이어온 한국 단색화의 주요 작가다. 1979년 문을 연 뒤 47년 동안 서울 도심을 지켜온 호텔이지만 로비의 첫인상은 이전의 롯데호텔 서울과는 사뭇 달랐다.
'더그랜드롯데 서울'로 재탄생
이 호텔은 지난해 5월부터 메인타워 7~21층을 리뉴얼해 개별 객실 공간을 넓혔다. 이날 엘리베이터를 타고 새롭게 단장한 객실층으로 올라갔다. 문이 열리자 과거 짙은 우드톤으로 꾸며져 다소 무거운 분위기였던 기존의 복도 대신, 밝은 화이트톤 벽과 푹신한 카펫이 눈앞에 펄쳐졌다. 엘리베이터 홀에는 유충목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물방울의 형성과 기억의 순환을 한 화면에 담은 작품이다.ADVERTISEMENT

복도를 따라 객실로 걸어갈수록 로비와 객실이 하나의 공간처럼 이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복도에서 사용한 색상과 소재는 객실에서도 반복됐다. 호텔 관계자는 “투숙객이 로비에서 객실로 이동할 때 공간이 단절됐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전체적인 디자인을 연결했다”고 설명했다.

16층에 올라가 그랜드디럭스 객실(크기 42.8㎡) 문을 열자 가장 먼저 체감되는 변화는 ‘공간’이었다. 침대와 업무용 책상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던 기존 비즈니스호텔 객실과 달리, 침대 주변으로 여유 공간이 넉넉했다. 욕실로 들어가자 차이는 더욱 뚜렷하게 느껴졌다. 세면 공간과 욕조가 웬만한 호텔 객실보다 널찍하게 배치돼 있었다.
ADVERTISEMENT
20층에 위치한 슈페리얼 스위트 패밀리(57.7㎡) 객실은 침실과 거실이 분리돼 있어 개방감이 돋보였다. 거실에는 가족이 둘러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소파를 배치했고, 침실과 공간을 분리해 여러 명이 머물러도 답답하지 않도록 설계했다. 객실 수를 줄이는 대신, 객실 하나 당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하도록 한 이번 리뉴얼의 방향성을 가장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객실 수 줄이고 공간 넓혀
서울 한복판에 세워진 호텔이 어떻게 객실 당 공간을 단번에 늘릴 수 있었을까. 더그랜드롯데 서울은 이번 리뉴얼 과정에서 객실 수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메인타워 객실 737실을 590실로 줄였다. 한 번에 147개, 약 20%에 해당하는 객실을 없앤 것이다.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이그제큐티브 타워를 포함하면 이 호텔의 전체 객실 수는 1015실에서 868실로 감소했다.
호텔업에서 객실은 곧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이다. 객실 수가 많을수록 수익도 늘어난다. 그런데 더그랜드롯데 서울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을 줄이는 대신 한 객실의 면적과 상품 가치를 높이는 쪽을 택했다. 객실 구성에서도 이런 변화가 드러났다. 가족 단위 투숙객이 함께 머물 수 있는 스위트룸을 확대했다. 기존 객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업무용 책상도 사라졌다. 그 대신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을 배치했다. 호텔을 출장객이 잠을 자고 업무를 보는 공간에서 가족과 관광객이 오랜 시간 머무르는 공간으로 바꾸려는 시도다.
투숙객의 취향을 반영한 서비스도 눈에 띄었다. 객실에는 기본 베개가 놓여 있지만 요청하면 취향에 맞는 베개로 교체할 수 있다. 하우스키핑을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다. 넓어진 욕조와 세면 공간, 테이블처럼 따로 떼어놓고 보면 작은 변화지만 객실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한 장치가 된다.

객실 디자인은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호텔 디자이너 피에르 이브 로숑이 맡았다. 포시즌스 호텔 조지 V 파리 등 세계적인 럭셔리 호텔을 디자인한 인물이다. 이번에는 프랑스식 럭셔리에 한국적 미감을 섞었다. 화려함을 앞세우기보다는 밝고 우아한 색감과 소재를 사용하고 한국적인 요소를 곳곳에 녹여냈다. 옷걸이 벽면에는 소나무와 폭포를 세밀하게 그린 산수풍 무늬가 있었다. 침실등도 한국적이면서 모던한 도자기를 연상케 했다.
피부과 등 7~9층 웰니스 시설
변화는 객실에 그치지 않는다. 메인타워 7~9층은 객실 대신 임대 공간으로 바뀐다. 피부과, 스파 등 의료·웰니스 관련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호텔에서 잠만 자는 것이 아니라 미용과 의료, 웰니스 서비스를 함께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다.ADVERTISEMENT
한국적 요소는 객실 밖에서도 돋보인다. 로비 직원들이 입은 새 유니폼은 목 부분과 옷깃의 선이 일반적인 호텔 유니폼과 다르다. 한복을 비롯한 한국 전통복식의 ‘동정’과 ‘깃’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로비의 향부터 꽃 장식, 복도와 객실의 색상, 직원 유니폼까지 하나의 브랜드 경험으로 묶은 셈이다.

롯데호텔이 47년만에 대대적인 리뉴얼에 나선 배경에는 서울 호텔시장의 변화가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서울 특급호텔의 경쟁축도 단순한 객실 공급에서 넓은 객실과 식음료, 웰니스 등 체류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 객실을 최대한 많이 채우는 것보다 한 명의 고객에게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하고 이에 걸맞은 가격을 받는 전략이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ADVERTISEMENT
호텔을 둘러보고 다시 1층 로비로 내려오자 처음 맡은 달콤한 시그니처 향이 다시 느껴졌다. 객실 하나를 더 만들어 한 명이라도 더 재우는 대신 한 명의 투숙객이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무엇을 보고, 맡고, 경험할지를 설계한 것이다. 47년 된 서울 도심 호텔의 변신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재울 것인가’에서 ‘한 명에게 얼마나 높은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로 향하고 있었다.

더그랜드롯데 서울 관계자는 “객실당 면적을 넓히고 고객이 머무는 공간과 체류 가치를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며 “‘시간을 초월하는 품격과 우아함’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호텔 곳곳에 녹여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