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아팠다. 대학에 합격하고 고향인 부산을 떠나면서부터는 아픈 엄마를 볼 일이 잘 없었다. 의과대학 공부에 치여 살던 스물셋 어느날,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 집에서 엄마를 보고 깜짝 놀랐다. 20년 넘게 병마와 싸우던 엄마의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지 않고 빠져 있었다.7일 서울 마포구 콘스탄트 본사에서 만난 양미경 콘스탄트 연구소장(65·사진)의 기억 한켠에는 머리카락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훗날 탈모 치료에 뛰어든 이유다.
ADVERTISEMENT
양 소장은 국내에서 탈모 치료를 가장 먼저 시작한 의사 중 한명이다. 최근 서울 대치동에서 27년간 운영하던 병원을 접고 1989년생 정근식 대표가 창업한 스타트업 콘스탄트에 합류했다. 콘스탄트는 올해 2월 기준 아모레퍼시픽을 포함한 굴지의 뷰티 기업들로부터 총 12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이 회사 주력 브랜드인 리필드 제품은 두피에 화장품처럼 바르는 ‘헤어 토닉’이다.
양 소장은 서울대 의대에서 방사선종양학을 전공하고 서울대병원에서 15년간 암 환자를 치료했다.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는 대학병원 근무 막바지에 만난 39세 말기 뇌암 환자다. 항암 치료를 하던 중 환자의 어머니가 치료 중단을 요청해왔다. 양 소장은 “30대가 다 가도록 공부만 하던 아들이 마지막 삶을 누릴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라 바로 퇴원시켰다”고 했다. 주변에선 “의사가 어떻게 치료를 포기하느냐”는 질책이 쏟아졌다. 사표를 던졌다. 무엇을 해볼까 고민하다 탈모 치료 병원을 차렸다.
ADVERTISEMENT
양 소장이 주목하는 것은 모발의 성장 주기다. “탈모가 진행되면 모발의 성장기가 짧아지고 머리카락이 충분히 자라기 전에 빠집니다. 성장기를 유도하면서 퇴행기 진입을 늦출 수 있는 물질을 찾기 시작했죠.” 수많은 실험을 반복한 끝에 ‘사이클릭 ADPR(cADPR)’을 찾았다. 이 물질이 모발 성장에 관여하는 신호를 활성화하고 성장 주기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확인하고 특허를 냈다.
어느 날 병원에 한 환자가 찾아왔다. 콘스탄트의 정근식 대표다. 콘돔 브랜드 사업을 하던 정 대표는 탈모 상담을 받으러 병원을 찾았다가 양 소장이 개발한 제품을 접했다. 두 달 사용하더니 사업을 제안했다. 늘 그랬듯 손사래를 쳤지만 정 대표가 거듭 설득했다.
리필드는 현재 미국·영국·호주·홍콩 등 10개국에서 탈모케어 제품을 판매 중이다. 2023년 12억원에 불과하던 연 매출은 올해 3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