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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디세이’ 열풍 너머, 2천 년 신화의 진짜 무대를 걷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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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디세이’ 열풍 너머, 2천 년 신화의 진짜 무대를 걷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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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최근 극장가를 휩쓸었다. 서점가에서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수천 년 전에 쓰인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이토록 사랑받으며 시대를 관통하는 ‘고전’의 힘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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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속 영웅들이 발을 딛고 섰던 실제 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문학연구소 후마니타스 주정이 소장은 직접 고전 속 그 장소들을 직접 찾아 나섰고 그 결과를 <신화가 머문 자리>라는 책으로 펴냈다. 서양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그레이트 북스 프로그램과 인문학 강좌 등 20년 넘게 서양 고전을 강의하고 연구하며 책 속에 그려졌던 현장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주정이 소장은 7차례에 걸쳐 그리스 전역 80여 개 도시와 유적지를 답사했고, 드론까지 띄워 문헌 기록과 실제 지형을 대조했다. <신화가 머문 자리>에서는 80여 개의 답사지 중 호메로스 서사시와 그리스 비극의 무대 20여 곳을 다뤘다.

    Q. 20년 넘게 고전을 연구해 오셨습니다. <신화가 머문 자리>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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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과 서사가 태어난 땅은 과연 어떤 곳일까, 오랫동안 고전을 읽으며 품어온 궁금증을 직접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20년 넘게 함께 고전을 읽어온 수강생들과의 약속도 마음 한편에 있었고요. 함께 현장을 답사한 곳도 있지만 미처 가보지 못한 곳도 많아 책으로만 접했던 공간을 온전히 보여드리자는 마음이었어요. 더불어 아직 그리스 땅을 밟지 못했거나 언젠가 그곳에 가기를 꿈꾸는 독자들에게도 가장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Q. 그리스 80여 곳을 답사하셨는데, 책에 수록할 장소를 선별한 기준은 무엇인가요.


    그리스는 신화와 고전의 땅입니다. 신화가 없는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울 만큼 신화의 보고와 마찬가지죠. 답사 후 정리한 원고만 70꼭지가 넘었는데 1권에는 20여 개 도시와 지역을 엄선해 정리했습니다. 선별 기준은 명확했습니다. 독자들이 신화와 역사의 줄기를 잡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를 기본 축으로 삼았고 대중적으로는 덜 알려졌지만 고전 속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 장소를 더했습니다. 지면의 한계로 덜어낸 아쉬움이 큰 만큼, 독자들이 고전을 따라가는 데 먼저 내디뎌야 할 디딤돌 같은 장소들이라 할 수 있어요.

    Q. 책으로 읽던 신화와 실제 현장에 섰을 때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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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 관념에 머물던 이야기가 현실에서 선명하게 보인다는 점입니다. 현장에 서면 ‘왜 하필 이곳에서 그 사건이 일어났는가’를 이해하게 됩니다. 아울리스 장소가 대표적입니다. 트로이로 향하는 그리스 함대가 아울리스에 집결했고 그곳에서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키려 했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서보면 바람이 불지 않아 출항하지 못했던 원정군의 절박함이 이해됩니다. 인신공희가 극적 장치가 아니라 현실적 고뇌였음이 피부로 와닿죠. 신화는 현장에서 비로소 온전히 읽힙니다.

    Q. 호메로스의 무덤을 다녀온 뒤 배에서 불편한 밤을 보내며 ‘위대한 서사도 인간의 고통을 지워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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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결국 스스로 견뎌내야 합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2천 년 넘게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영웅의 승리뿐 아니라 패배자의 슬픔, 전쟁이 남긴 공허와 상처까지 함께 기록했습니다. 아킬레우스나 오디세우스 역시 영웅 이전에 고통을 견뎌야 했던 인간이었습니다. 답사 현장도 늘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만실인 페리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서사 속 인물들도 각자의 불편한 밤을 묵묵히 견뎠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고통이 인간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인간은 때로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호메로스는 그 모습을 영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오늘날까지 우리가 호메로스를 다시 읽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Q. 수많은 장소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을 꼽는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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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타 남단의 작은 섬 ‘가브도스’입니다. 본래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곳이었지만, 다녀온 뒤 더 깊은 질문이 남았습니다. 책에는 담지 못했지만 이곳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겪은 현대 과학자들이 정착해 피타고라스 철학을 모색했던 공간입니다. 현대 과학의 비극을 겪은 이들이 왜 수천 년 전 고대 철학자의 삶에서 대안을 찾으려 했는지 여전히 궁금합니다. 이 장소는 끊임없이 사유하게 만드는 공간이기에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Q. 신화 속 비극적 인물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야 할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오이디푸스를 자주 떠올립니다. 그는 비극적 운명을 피하기 위해 부모라 믿었던 이들을 떠나며 필사적으로 바른 선택을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의와 발걸음이 역설적으로 신탁을 완성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살다 보면 인간의 계산과 의지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마주합니다. 운명을 피하려 했던 그의 발걸음이 결국 운명을 완성했다는 것, 그 아이러니가 지금도 오이디푸스를 읽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화는 인간의 한계와 불완전함을 보여주며, 삶을 겸허하게 돌아보게 만듭니다.

    Q. 불안과 불확실성에 지친 현대인에게 고전이 건네는 지혜 무엇입니까.

    고전은 ‘영원한 오늘’입니다. 2천 년 전 텍스트를 읽으면서도 끊임없이 오늘의 우리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문명과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인간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사랑하고 질투하며 불안해합니다. 고전이 불안을 없애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동일한 불안과 고통을 견디며 길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것을 이해하고 견디는 데 필요한 지혜를 건네는 것, 그것이 지금도 고전이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Q. 고전 읽기를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과 독서 팁이 있다면요.

    고전을 처음 접하는 분이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한 권을 읽는다면, 저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권하고 싶습니다.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주인공이 늘 곁에 두던 책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역사’는 재밌습니다. 역사책이면서 여행기 같고, 지리지 같으면서 신화와 민담도 들어 있습니다. 반면 인간의 심리와 내면에 관심이 있다면 에우리피데스의 그리스 비극을 권합니다. 사랑과 배신, 가족의 갈등을 다룬 감정선이 놀라울 만큼 현대적입니다. 부담감보다는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작은 입구에서부터 가볍게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Q. 장소와 고전을 잇는 소장님만의 인문학적 여행법이 있나요?

    저의 여행은 책을 읽다가 발견한 매력적인 장소를 메모해 두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다 보니 제 여행은 자연스럽게 테마 여행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튀니지의 카르타고, 스베이틀라, 두가, 알제리의 팀가드, 콘스탄틴, 모로코의 볼루빌리스처럼 서로 다른 나라에 있는 도시들을 하나의 역사적 흐름 안에서 따라가 볼 수 있습니다. <아이네이스>를 지도 삼아 트로이부터 카르타고, 이탈리아 쿠마의 동굴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한 권의 고전이 여행의 지도가 되는 셈입니다. 그러다 보면 독서가 여행지를 만들고, 여행은 다시 독서로 돌아옵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이 책을 읽는 모든 분이 그리스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고전의 한 문장을 만났을 때, 그 이야기 뒤에 실제 바다와 산과 도시가 있었다는 것을 한번 떠올려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고 싶습니다. 아들과 십수 년 넘게 여러 곳을 함께 답사하며, 아들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가고, 저는 이 답사의 결과를 책으로 내기로 했습니다. 아들은 먼저 목표를 이루었는데, 저는 많이 늦었습니다. <신화가 머문 자리>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저 역시 오래된 약속 하나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 <신화가 머문 자리>는 어떤 책인가?
    저자가 10여년간 그리스의 곳곳을 다니며 직접 촬영하고 차곡차곡 모은 정보들을 장소별로 풀어내는 책이다.
    올림포스가 왜 신들의 산이 되었는지, 바위가 가득한 델포이는 왜 가장 신성한 장소가 되었는지, 올림피아는 왜 종교와 경기의 장소가 되었는지,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가 어떤 공간에서 시작되었는지 등을 각각의 장소와 고전을 함께 풀어내며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구성한다. 총 360쪽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그리스 곳곳의 사진과 그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고전들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져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술술 읽힌다.


    박경희 기자 gerrar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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