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석밥 한 공기조차 절반 크기로 줄어들고 있다. 편의점에서는 유부초밥을 두 알만 담아 팔고, 1~2인 가구를 겨냥한 고기는 200g 단위로 쪼개졌다. 한 병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중국 프리미엄 백주까지 50~65㎖짜리 미니어처로 판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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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와 1인 가구 증가에 식단관리와 ‘경험 소비’까지 맞물리면서 식품·주류업계에 ‘미니’ 제품이 빠르게 늘고 있다. 대용량 제품의 100g당 가격이 더 싸더라도 남겨 버리는 것보다 필요한 만큼만 사는 게 낫다는 소비자가 증가한 영향이다.
햇반 210g→110g…편의점선 2알 유부초밥
7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최근 110g짜리 ‘햇반 부드러운 미니밥’을 출시했다. 햇반의 대표 백미 제품이 210g인 점을 감안하면 용량을 거의 절반으로 줄인 셈이다. CJ제일제당은 앞서 지난 6월 파로통곡물밥과 렌틸콩현미밥 등 110g짜리 ‘햇반 라이스플랜 미니밥’ 2종을 먼저 출시한 데 이어 백미로 제품군을 넓혔다.햇반은 이미 2004년 130g짜리 ‘작은 공기’를 내놨지만 최근에는 이보다 20g을 더 줄였다. 단순히 혼자 사는 소비자를 겨냥한 것만은 아니다. 밥 양을 조절하는 식단관리족이나 소식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한 공기’의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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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소용량 즉석밥의 존재감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닐슨 데이터 기준 즉석밥 시장에서 130g 작은 공기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상반기 9%대에서 올해 상반기 16%대로 상승했다.
편의점도 앞다퉈 한 끼의 크기를 줄이고 있다. CU는 지난달 소용량 간편식 시리즈 13종을 내놨다. 단품 요리를 소량으로 담은 미니컵을 비롯해 유부초밥은 두 알만 담고 샌드위치도 기존보다 작은 크기로 만들었다. CU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진행한 소비자 조사에서는 절반 이상이 양에 대한 부담과 과도한 칼로리, 남은 음식 처리 등을 이유로 미니 간편식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특히 25~29세의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고기도 작아졌다. GS25는 1~2인 가구를 겨냥해 200g짜리 ‘한끼 양념육’을 판매하고 있다. 올해 GS25의 축산가공 카테고리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90% 증가했다. 지난 4월 한끼 양념육을 개편한 뒤 이를 판매하는 점포의 축산가공 일평균 매출은 이전보다 250%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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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계에서는 소용량 제품이 과거와는 다른 이유로 선택받고 있다고 본다. 예전에는 1인 가구가 혼자 먹기 편한 크기를 찾는다는 설명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식사량 자체를 줄이거나 탄수화물 섭취량을 조절하고 싶은 소비자까지 수요층이 넓어졌다.
50만원 백주도 65㎖로…‘필요한 만큼’ 소비
‘미니화’는 수십만원짜리 프리미엄 주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백주 수입업체 남경무역은 지난해 초부터 65㎖ 제품은 소매점용, 100~125㎖ 제품은 외식업소용으로 나눠 소용량 백주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기존 500㎖ 제품의 8분의 1 수준까지 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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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L&B가 운영하는 와인앤모어에서는 위스키와 보드카, 진 등과 함께 백주 미니어처가 판매되고 있다. 춘천 세계주류마켓도 계산대 인근에 미니어처 전용 진열대를 운영하고 있다. 남경무역은 몽지람 등 주력 백주 네 종류를 작은 용량으로 묶은 선물세트까지 만들었다.
고가 백주일수록 미니어처 효과는 크다. 몽지람 등 프리미엄 백주는 500㎖ 한 병 가격이 수십만원에 이른다. 처음 접하는 소비자라면 맛도 모르는 술 한 병에 수십만원을 쓰기 부담스럽지만, 65㎖짜리 미니어처는 수만원대로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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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시장에서는 이보다 큰 100~125㎖ 제품이 활용되고 있다. 워커힐호텔 중식당 금룡, 몬드리안서울이태원 SMT차이나룸, 포시즌스호텔서울 유유안,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파르나스 웨이브 등에서 소용량 백주를 판매하고 있다.
모던눌랑과 시추안하우스, 팔진향, 모트32, 페이홍러우 등 기업형 중식당으로도 판매처가 확대됐다. 두 사람이 식사하며 한두 잔씩 나눠 마실 수 있게 해 고가 백주의 가격과 높은 도수라는 진입장벽을 동시에 낮춘 것이다.
유호성 남경무역 대표는 “50~65㎖ 제품을 소장하거나 여러 제품을 비교해 맛보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며 “지난해 초부터 소매점에는 65㎖, 외식업소에는 100~125㎖ 제품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용량 열풍 … '가성비' 기준 달라진 결과
업계에서는 이 같은 소용량 열풍을 ‘가성비’의 기준이 달라진 결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같은 가격에 얼마나 많은 양을 살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면 최근에는 자신이 실제 소비할 만큼만 구매해 음식물 낭비와 지출을 줄이는 것이 새로운 가성비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소용량 제품은 단위당 가격만 놓고 보면 대용량보다 비싼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은 음식을 버리는 비용과 보관 부담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여기에 건강을 위해 적게 먹으려는 수요와 비싼 제품을 조금씩 다양하게 경험하려는 소비까지 더해지면서 ‘작게 파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상품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에게 중요한 것은 무조건 많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식사량과 생활 방식에 맞는 양을 선택할 수 있느냐”라며 “식품업체들도 제품의 맛뿐 아니라 용량을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