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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의 성문은 안에서 열렸다…이사의 감시의무와 내부통제 [서이헌의 법과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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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의 성문은 안에서 열렸다…이사의 감시의무와 내부통제 [서이헌의 법과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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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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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여름 극장가를 휩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는 트로이의 마지막 밤에서 시작한다. 10년을 버틴 철벽의 요새를 하룻밤 만에 잿더미로 만든 것은 성 밖의 군대나 투석기가 아니었다.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는 말에 속아 트로이인들이 스스로 성벽을 헐고 들여놓은 거대한 목마, 즉 내부의 적이었다.

    고전이 전하는 그 밤에는 경고도 있었다. 사제 라오콘이 목마에 창을 던지자 속이 빈 몸통이 울렸고, 예언의 능력을 지닌 공주 카산드라는 목마를 들이면 성이 망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트로이인들은 그 소리를 듣지 않았다.
    현대 기업의 붕괴…내부비리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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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기업의 명운이 갈리는 현장을 오래 지켜보며 확인한 사실이 있다. 현대 기업의 붕괴도 영화가 되살린 트로이의 최후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점이다. 거시경제의 충격이나 글로벌 경쟁이라는 외부의 파고를 잘 넘기던 우량 기업이 한순간에 존폐의 기로에 서는 계기는 대개 내부 비리에서 시작된다. 임직원의 거액 횡령, 핵심 영업비밀 유출, 회계 부정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가 곧 트로이의 목마다.

    2011년 상법 개정 당시 필자는 법무부에서 회사법 개정을 담당하는 실무자로서 준법지원인 제도와 준법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신설하는 현장에 있었다. 당시 시장에서는 옥상옥 규제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고, 생존과 성장이 시급한 몇몇 기업들이 규정과 매뉴얼을 갖추는 수준에 머문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15년이 흐른 지금 사법부의 잣대는 훨씬 엄격해졌다. 제도의 외형을 갖춘 것만으로는 위기 상황에서 경영진을 방어할 수 없게 됐고, 오히려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형식적 시스템은 유사시 이사회와 최고경영진의 선관주의의무 위반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고 있다.

    판단 기준은 이사가 위법행위에 직접 가담했는가에서 마땅히 해야 할 감시 의무를 소홀히 했는가로 옮겨갔다. 그 출발점이 된 것이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의 1996년 케어마크 판결이다. 이사가 불법행위를 직접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회사의 위험을 적시에 파악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정보 및 보고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거나 그 작동을 방치했다면 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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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대법원도 같은 취지의 법리를 받아들였다. 2008년 대우 분식회계 사건에서 이사에게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작동시킬 의무가 있다고 처음 밝혔고, 2011년 준법지원인 제도는 그 연장선에서 나온 입법이었다. 이어 장기간의 가격 담합이 문제 된 2021년과 2022년의 판결에서 대표이사들은 해당 부서에 믿고 맡겨서 몰랐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업무가 고도화되고 분업화된 대규모 기업일수록 법적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합리적인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작동시킬 의무가 강하게 요구된다고 판단했다.

    미리 감지할 수 있었던 위험 징후를 걸러내지 못하고 방치한 결과에 대해 결국 이사들의 선관주의의무 위반 책임이 인정됐고, 경영진 개인에게 수십억 원대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사례도 나왔다. 몰랐다는 항변은 더 이상 면책 사유가 아니며, 시스템 미비 자체가 이사의 법적 위험이라는 경고다.
    이사 충실의무 대상, 주주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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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지난해 7월 시행된 개정 상법은 이사의 부담을 한 겹 더 얹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종래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어졌고, 이사는 직무를 수행할 때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할 의무까지 지게 됐다. 이사가 의무를 다했는지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사람의 범위 자체가 넓어졌기 때문에, 내부통제의 실패로 회사에 손실이 나고 주가가 흔들리는 사태가 오면 이사 개인은 회사만이 아니라 주주들까지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감시의무를 소홀히 했을 때 이사 개인이 감당해야 할 대가가 그만큼 무거워진 셈이다.

    공직에 있는 동안 여러 기업 비리 사건들을 살펴보고 최근 로펌 대표변호사로서 기업들의 내부 실태를 진단하며 확인한 현실도 이와 같다. 한 중견기업은 에이스 임원이라는 이유로 특정인에게 영업과 자금 집행 권한을 10년 넘게 집중시켰다가 거액의 횡령 사고를 맞았다. 시스템의 부재는 회사에 손해를 입히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잘못 없는 경영자 개인을 위기로 몰아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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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무진 단위에서 은밀하게 벌어진 위법행위가 뒤늦게 적발돼 이를 전혀 알지 못했던 대표가 조직의 수장이라는 지위만으로 강도 높은 수사를 받는 경우를 여러 차례 봤다. 실무 단계의 일탈을 걸러낼 시스템을 미리 갖추지 못한 최고경영자는 자신이 지시한 적 없는 일로도 이렇게 무방비로 법적 위험에 노출된다. 어느 경우든 목마는 이미 오래전에 성 안에 들어와 있었고, 아무도 그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이다.

    현장에 컴플라이언스 정착 필요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경영진이 법적 위험에서 벗어나고 회사를 지키려면 컴플라이언스를 최고경영자의 실질적인 방패로 현장에 정착시켜야 한다.

    첫째, 위험 신호가 위로 올라오는 길부터 뚫어야 한다. 비정상적 자금 흐름이나 결재선 누락 같은 신호가 비리 당사자를 거치지 않고 감사위원회나 외부 독립 법률기관에 직접 보고되는 핫라인이 실제로 가동돼야 한다. 제보가 보고 라인을 따라 올라가다 비리 당사자도 알게 되는 구조라면 어떤 목격자도 입을 열지 않는다.

    둘째, 계약 체결과 자금 집행 권한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지 말고 분산해 서로 검증하도록 하는 권한 상호견제 원칙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유능하고 믿을 만한 사람일수록 권한이 집중되기 쉽지만, 견제 없는 권한은 언제든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앞서 본 횡령 사건도 결국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긴 데서 시작됐다. 권한을 나누는 것은 그 사람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과 회사를 함께 지키기 위해서다.

    셋째, 감시하는 쪽이 감시받는 쪽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준법감시 조직이 단기 실적을 압박하는 영업 부서나 인사권자에게 휘둘린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종이 위의 규정으로 남을 뿐이다. 이사회가 직접 나서서 독립된 권한과 예산을 보장해야 한다.

    내부통제는 더 이상 국가가 강제하는 귀찮은 규제가 아니다. 단 한 번의 화이트칼라 범죄가 기업을 존폐 위기로 몰아넣고 이사 개인의 모든 것을 잃게 만드는 환경에서, 투명하게 살아 움직이는 감시 체계야말로 기업과 경영진 자신을 지키는 가장 저렴하고 확실한 방패다. 성문을 여는 것은 언제나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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