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으니 쉬겠습니다." 중국 허난성 유통기업 팡둥라이 직원이라면 이 같은 사유로 자유롭게 휴가를 낼 수 있다. 근속 1년 이상 직원에게 주어지는 '10일 자유휴가'다. 쉬는 시기는 직원이 정하고 인사 시스템에서 자동 승인된다. 관리자에겐 거부 권한이 없다. 현지에선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쓰는 휴가'란 뜻의 '불행휴가'로 유명세를 탔다.
회복형 휴가부터 생애주기형 휴가까지

3일 인적자원(HR)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국내외 기업들 사이에서 업무 생산성 향상과 사내 복지 차원의 이색 휴가제도들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올해 이색 휴가제도들이 도입되는 사례가 늘면서 화제가 된 기업들이 적지 않았다.
가장 두드러진 유형은 직원의 몸과 마음을 일률적인 근태 기준에 맞추지 않는 '회복형 휴가'다. 미국 헬스케어 스타트업 혼 헬스는 지난 5월 폐경 증상으로 휴식이 필요한 직원들을 위한 폐경휴가를 발표했다. 영국 스킨케어기업 헤븐스킨케어가 올해 도입한 '호르몬 휴가'는 이보다 범위가 더 넓다. 생리, 자궁내막증, 폐경 등 호르몬 관련 증상이 있으면 횟수 제한 없이 쉴 수 있다. 의료 증명이나 구체적인 사유도 요구하지 않는다. 직원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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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삶의 특정 '사건'을 폭넓게 휴가 사유로 인정하는 '생애주기형 휴가'도 늘고 있다. 국내 교육기술기업 인프랩은 연인과 헤어진 직원에게 이별휴가를 준다. 게임사 바삭한소프트도 이별휴가와 생일휴가를 운영한다. 필리핀·싱가포르 기업들의 복지·채용 공고에서도 생일휴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두바이 향수기업 카얄리는 생일에 쉴 수 있도록 휴가를 부여한다. 결혼·출산 중심이던 기업 경조 제도가 직원 개인사의 중요한 순간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가족의 범위가 달라진 현실도 휴가에 반영되는 추세다. 롯데백화점은 반려동물 장례휴가를 운영하고 미혼 직원에게도 경조 유급휴가를 제공한다. 하림펫푸드는 반려동물을 입양한 당일 유급휴가 하루를 준다. 입양축하금도 지급한다. 향료 제조기업 한빛향료는 비혼을 선언한 직원에게 유급휴가를 준다. 결혼 여부나 가족 형태에 따라 복지 혜택이 달라지는 간극을 줄이려는 시도다.
덕질·햇살도 휴가 사유…연차 '구매'도
휴가의 이유를 회사가 정하지 않고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맡기는 제도도 등장했다. 일본 정보기술기업 티에스원은 자신이 좋아하고 응원하는 대상인 '오시'와 관련된 활동을 위해 유급으로 쉬는 '오시카쓰 휴가'를 운영한다. 콘서트와 공연은 물론 여행이나 캠핑에도 사용할 수 있다. 두바이 광고회사 어셈블리 글로벌의 '여름 햇살 휴가'는 여름철 하루를 쉬며 햇볕을 즐기도록 한 휴무다. ADVERTISEMENT
직원이 휴가 일수 자체를 설계하는 방식도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에스티로더 영국 법인의 채용 공고엔 휴가구매제도를 통해 연차를 최대 5일 더 확보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영국 인사전문기관 CIPD가 지난 2월 발표한 조사를 보면 직원 250명 이상 기업 178곳 중 41%가 직원이 추가 유급휴가를 사거나 팔 수 있는 제도를 운영했다. 일률적으로 같은 연차를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임금과 휴식 중 각자가 더 중시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아예 조직 전체가 동시에 쉬는 '집중휴식형'도 있다. 자율비행 드론기업 니어스랩은 매년 1월2일부터 7일까지 전사가 쉬는 '유급 겨울방학'을 운영한다. 개인이 업무 공백을 걱정하거나 동료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온전히 재충전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색 휴가, 인사 실무에선 리스크"
다만 취지와 달리 이색 휴가제도가 오히려 사내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용 과정에선 다양한 이색 휴가제도를 앞세워 인재를 끌어모을 수 있겠지만 인사 관리 측면에선 리스크가 따른다. 근태 문제가 있거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직원에게 이색 휴가를 보장하지 않으려다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 과정에서 이색 휴가를 다시 없애려는 회사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둘러싼 분쟁에 휩싸이기도 한다. 일부 직원이 이색 휴가제도를 남용하는 문제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대기업 중에서도 이색 휴가를 시행하다 이를 철회하는 과정에서 유사한 분쟁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한번 도입한 휴가 제도는 다시 없애기 쉽지 않다. 김승현 노무법인 시선 대표노무사는 "직원들이 휴가 제도를 이용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에 제도를 없애려 하면 저항이 크다"며 "이색 휴가 제도를 도입했다가 기업 운영에 어려움을 느껴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사례도 많이 봤다. 이색 휴가 제도를 도입할 때 신중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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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여름휴가'라는 공식이 깨졌다. 국내외 기업들 사이에서 충분한 휴식이 업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강력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생일·이별·덕질 등 다양한 목적의 이색 휴가제도를 내놓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색 휴가를 비롯해 직원들의 휴식을 독려하는 제도가 확산하는 추세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국내외 휴가제도의 변화와 직장인들의 새로운 휴가 트렌드를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박수빈/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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