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신 청구서'는 10월 2일 형사소송법 개정법률 시행을 한 달 앞두고 달라질 사법 환경의 사회적 비용을 짚어본다. 개정법 시행으로 보완수사권을 지닌 검사를 통해 미진한 수사를 걸러내던 장치가 사라지는 만큼 국민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국민 개개인의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대가로 어떻게 되돌아오고 있는지 추적한다. [편집자주]
"처음에는 탐정을 통해 포렌식을 진행하며 3000만~4000만원을 썼지만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대형 로펌에 다시 비슷한 금액을 들인 뒤에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범죄 피해를 본 기업 대표 A씨. 그는 수사기관의 도움 없이 사비로만 포렌식을 두 차례 진행했다. 처음에 수사기관에 포렌식을 요청했으나 해주지 않아 직접 민간 업체를 활용한 것. A씨는 "나는 사업을 하니 이런 큰 비용도 감수하고 진행할 수 있지만, 일반 서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도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사건 부담이 커지면서 피해자가 사비로 민간 포렌식을 거쳐 증거를 제출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향후 이런 현상이 심화하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에 따라 범죄 피해 입증 기회마저 갈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일반 형사사건까지 번진 디지털 포렌식 수요

4일 경찰청에 따르면 사이버범죄 발생 건수는 2020년 23만4098건→2021년 21만7807건→2022년 23만355건→2023년 24만1842건→2024년 31만4519건으로 늘었다. 5년 새 약 35% 증가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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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교제폭력·스토킹·성폭력 등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휴대전화와 메신저 기록이 핵심 증거로 활용되면서 디지털 포렌식 수요가 넓어지고 있다. 경찰의 디지털 증거 분석 건수는 2025년 8만3432건으로 5년 만에 30% 이상 증가했고, 같은 기간 분석관 1인당 처리 건수도 300.2건에서 388.1건으로 29% 늘었다.
경찰도 디지털 증거 분석 수요 증가에 맞춰 관련 예산을 늘리고 있다. 과학수사역량강화 예산은 2022년 349억원에서 2026년 504억원으로 5년 새 약 45% 늘었고, 과학수사시스템구축 예산까지 합치면 같은 기간 373억원에서 545억원으로 약 46% 증가했다. 사이버수사 관련 예산까지 더하면 규모는 더 커진다. 과학수사·사이버수사 관련 4개 사업 예산은 2022년 580억원에서 올해 816억원으로 약 41% 늘었다.
◇ 사건은 쌓이는데 사람은 부족…경찰 '과부하'
관련 예산이 늘고 있지만 증가 폭이 가파르게 불어난 사건과 분석 수요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현장의 평가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선 수사팀에서 포렌식 의뢰를 한 후 분석에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10일 안 되는 걸로 파악하고 있다. 임의제출이든 압수수색이든 확보된 증거물들은 일선 수사팀에서 시도청 포렌식계에 의뢰가 되고 분석하고 있다고 회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ADVERTISEMENT
하지만 현장에서는 체감이 다르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 디지털 증거 분석 건수와 분석관 1인당 처리량이 동시에 늘면서 포렌식 결과를 받기까지 한 달 이상 기다리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포렌식 업체 관계자는 "수사기관에서 포렌식을 진행하려면 한 달 이상 걸리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 직접 민간 업체에 포렌식을 맡긴 뒤 분석 결과를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포렌식 업무가 주로 시도경찰청 단위에서 이뤄지는 데다 제한된 인력으로 기기 분석을 우선 처리하다 보니, 범죄 혐의가 명확하지 않은 단계에서 신고인 등이 제출한 기기까지 모두 분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성재환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경찰의 역량과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혐의가 뚜렷하지 않은 사건은 '의심만으로 포렌식하기 어려우니 사적으로 분석해 오면 검토하겠다'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며 "경찰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이 같은 문제는 더욱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다음 달부터는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라 검사의 수사권이 완전히 없어지는 만큼 경찰 업무가 더욱 과중될 것"이라며 "피해자로서는 포렌식 등 증거 수집에서 입증 부담이 한층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 비용 감당 못 해 포렌식 포기한 피해자도
문제는 비용이다. 성 변호사는 "업체마다 다른데 일반적으로 포렌식에 드는 비용은 스마트폰이 300만원 이상, SSD·하드디스크 같은 PC는 500만원 정도"라며 "포렌식은 복구 이후 분석까지로, 수사기관에 제출하려면 포렌식 보고서까지 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반 피해자로서 고소하려고 하면 비용 부담이 많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ADVERTISEMENT
실제 포렌식 업체들이 공개한 비용을 종합하면 기본적인 분석 장비 사용료만 30만~100만원, 전문가 인건비는 시간당 10만~30만원 수준이다. 여기에 복제본 저장장치와 법정용 보고서 작성, 전문가 법정 진술 비용 등이 별도로 붙는다. 분석 대상과 범위, 긴급성 등에 따라 최종 비용이 수천만원까지 늘어날 수 있는 구조다.
표준화된 가격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인 실정이다. 최근 구형 갤럭시 스마트폰이 잠겨 서울 용산구 소재 포렌식 업체를 방문했던 한 30대 여성은 "잠금 해제하는 데 600만원을 달라고 하더라"며 "너무 비싸서 집에 돌아왔는데 결국 비밀번호를 기억해내서 핸드폰 잠금을 풀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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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여유가 없는 피해자에게 이 같은 상황은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약 1년간 교제·동거 관계에서 폭행과 특수폭행, 협박, 재물손괴 등을 당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B씨는 담당 수사관에게 삭제된 것으로 의심되는 피해 영상의 포렌식 절차를 문의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수사관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결국 사설 업체를 직접 알아봤으나 복구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시도하는 데만 200만원 이상이 필요했다. 장기간 통제와 사회적·경제적 고립을 겪어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는 포렌식을 포기한 채 저장매체와 영상을 증거로 제출했다. 두 달간 24시간 녹화된 영상을 일일이 살펴 삭제가 의심되는 날짜와 시간대까지 특정했지만, 해당 정황만으로는 증거로 보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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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삭제된 증거를 복구할 경제적 여력이 없는 피해자가 두 달치 영상을 직접 분석해 삭제 지점까지 찾아냈는데도 충분한 증거로 인정받기 어렵다면, 대체 어떤 방법으로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 "포렌식 수요 맞춰 경찰 인력·예산 늘려야"
수사기관의 인력·장비 부족으로 증거 확보와 범죄 입증 부담이 피해자에게 전가되고, 이를 메우기 위한 민간 시장이 확대되는 현상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경찰은 피해자를 대신해 범죄자에게 국가 형벌권을 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인데, 사건이 많다는 이유로 '답답하면 증거를 직접 찾아오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이렇게 되면 피해자는 변호사 선임부터 증거 수집까지 피해구제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만큼 디지털 포렌식 수요에 맞춰 인력과 예산, 장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우/신현보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