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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가방 들고 무작정 美아티스트 찾아간 박진영…"절박했던 한류의 개척자" [더 라이프이스트-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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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가방 들고 무작정 美아티스트 찾아간 박진영…"절박했던 한류의 개척자" [더 라이프이스트-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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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한국 대중음악계는 안정적 성장의 궤도에 올라서 있었다. 음반 시장의 축이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한류'라는 단어가 정착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국내에서 만드는 음반마다 대히트를 기록하며 프로듀서로서 명성과 부를 모두 거머쥔 박진영 역시 한국이나 일본 시장에 안주하며 거대 기획사의 수장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안정된 왕좌를 버리고 돌연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올렸다. 손에는 직접 만든 음악이 담긴 CD 가방 몇 개가 전부였다.

    당시 서구 대중음악의 중심지인 미국에선 K팝란 개념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온 프로듀서'라는 타이틀은 메이저 음반사 문턱을 넘는 데 아무런 보증수표가 되지 못했다. 현지 기획사 관계자들은 그를 반기지 않았고 미팅 약속조차 잡기 어려웠다. 박진영은 뉴욕 맨해튼의 작은 월세방에 거처를 잡고 아웃캐스트(Outkast), 윌 스미스(Will Smith), 메이스(Mase) 등 현지 유명 아티스트와 프로듀서들의 작업실을 무작정 찾아다니는 '아날로그 영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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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전략은 지극히 1차원적이면서도 절박했다. 음반사 로비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다 관계자가 지나가면 CD를 건넸고, 기회가 생기면 길거리나 차 안에서도 자신이 만든 비트를 틀어놓고 직접 춤을 추며 음악을 설명했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과 인종적 선입견, 흑인 음악 중심의 팝 시장이 가진 견고한 폐쇄성은 냉혹했다. 동양인 프로듀서가 만든 R&B, 히프합 비트를 미국 메이저 아티스트에게 파는 것은 당시 음악계 상식으로는 무모함을 넘어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치부됐다.

    하지만 이 무모한 집념은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냈다. 2004년 래퍼 메이스의 앨범 곡 수록을 시작으로, 윌 스미스의 앨범 《Lost and Found》에 수록된 'I Wish I Made That', 아웃캐스트의 멤버 자키엘(Big Boi)과의 작업 등 성과가 이어졌다. 한국 프로듀서 최초로 빌보드 차트 상위권 앨범에 자작곡을 올린 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박진영이 얻은 것은 단순한 음반 저작권 수입이 아니었다. 세계 가장 거대한 음악 시장이 움직이는 생태계, 즉 A&R(아티스트 및 곡 수급) 시스템, 음원 유통망, 서구 아티스트들의 의사결정 방식을 현장에서 직접 체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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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초기 도전은 엄밀한 의미에서 K팝 시스템의 이식이 아닌, '한국인 프로듀서 개인의 미국 시장 침투'에 불과했다. 박진영이라는 개인의 감각과 집념으로 이뤄낸 성과였기에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되기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소모된 막대한 시간과 비용, 한국 본사의 인력 자원 분산은 JYP엔터테인먼트에 초기 재무적 부담을 안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2000년대 초반 박진영의 뉴욕 고군분투는 성공과 한계를 동시에 명확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세계 최대 시장의 문을 두드린 그의 무모함은 '미국 시장도 직접 부딪히면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입증했지만, 동시에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거대한 음악 산업의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 '맨땅에 헤딩'식 경험은 훗날 그가 '개인 프로듀서 박진영'에서 '시스템을 가진 JYP'로 진화하게 만드는 결정적 복선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국내 정상을 차지한 걸그룹 '원더걸스'를 미국 투어버스에 올라타게 만드는 거대한 도박의 씨앗이 되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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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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