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미 공연단에 파업 바람이 일고 있다. 지난해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VSO)가 파업을 벌인 데 이어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FO) 단원도 파업을 예고했다. SFO 음악감독을 맡은 김은선의 새 시즌 개막 공연 지휘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공연단들이 인건비를 축소하겠다고 나서는 게 갈등의 주요 원인이다.
◇ 임금 20% 삭감안에 반발
31일 오페라와이어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등에 따르면 SFO 단원들은 “경영진이 우리와 공정한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면 9월 12일 열릴 2026/2027 시즌 개막 공연을 할 수 없다”고 2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SFO는 1923년 창단한 북미 정상급 오페라단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가 미국 동부의 오페라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면 서부에선 SFO가 패권을 쥐고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세계적인 성악 거장들이 올랐던 무대이기도 하다. 한국인 지휘자인 김은선이 2021년부터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ADVERTISEMENT
SFO 단원들의 파업 예고는 임금 삭감안이 원인이 됐다. 처음에 SFO 경영진은 새로운 시즌 이후의 계약부터 임금을 26%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단원들은 “임금의 26%를 깎겠다고 했다가 20% 삭감으로 물러섰지만 이마저도 2018년 급여 수준에 불과하다”며 “새로운 시즌을 시작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단원들은 샌프란시스코 물가가 급등한 마당에 월급까지 줄어드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항변했다. 임금 협상이 결렬되면 오는 12일 김은선 음악감독은 시즌 첫날부터 지휘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SFO가 임금을 줄이려는 이유는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SFO는 2025회계연도(2024년 7월~지난해 6월)에만 약 630만달러(약 86억원) 적자를 봤다. 코로나 이전 관객 수를 회복하지 못 해 수입에서 티켓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20% 밑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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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이 없으면 오페라단이 돌아가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그의 아내 로리 황이 연간 500만달러(약 69억원)를 후원하기로 했지만 공연단은 적자 구조를 되돌리지 못했다. 한 때 12개였던 시즌 공연 프로덕션 수도 6개까지 줄어들었다.
◇ 자금난에 그림도 담보 맡겨
파업 위기를 겪은 것은 SFO뿐만 아니다.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VSO)도 임금 20% 이상 인상을 요구하며 지난해 9월 파업을 벌이면서 공연 일부가 취소됐다. 단원들은 “다른 지역 음악가보다 임금이 30% 적다”며 3년간 임금 23%를 인상하는 안을 내놨다. 반면 경영진은 15% 인상안을 제시했다. 양측은 복리후생 패키지 등 추가 혜택을 더하는 것으로 10월 초 합의에 이르렀다.임금을 줄여야 하는 공연단으로서 단원들의 반발이 부담스럽다. 미국 공연계에선 연주자들이 모인 조합이 단체 교섭권을 갖고 수년 단위로 집단 계약을 갱신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조건이 맞지 않으면 찬반 투표를 거쳐 공연 거부 등의 강경책을 내놓기도 한다. 노조 결속력이 강해 악단으로선 대체 연주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2010년엔 임금 삭감안에 반발한 연주자들이 파업에 나서면서 디트로이트 심포니가 한 시즌의 절반을 통째로 날리기도 했다.
미국 공연단의 주머니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25회계연도 기준으로 카네기홀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각각 316억원과 291억원의 적자를 봤다. 메트로폴리탄의 경우 2024회계연도에 645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냈다. 자금난이 커지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2억달러(약 2780억원) 규모 업무 협약을 체결하며 돌파구를 모색했지만 올해 들어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최근에는 공연장 로비에 걸린 마르크 샤갈의 대형 벽화 두 점을 담보로 대출을 받기도 했다. 국내 공연업계 관계자는 “한국도 정부와 기업 등의 외부 지원이 없으면 공연단을 운영하기가 불가능한 구조”라며 “언제 미국 같은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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