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반도체·로봇 같은 성장 산업에서는 전통적 밸류에이션(가치 평가) 방식 자체가 통하지 않아요. ‘드림 밸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정훈 삼일PwC PE그룹장(부대표·사진)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산업 전체가 재편되는 대변혁의 시기”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부대표는 삼일PwC에서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의 재무실사와 기업가치 평가 등을 총괄하며 28년 가까이 몸담아온 베테랑이다. 삼성그룹과 한앤컴퍼니(한앤코)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과 PEF가 주요 고객이다. 특히 삼성이 중요한 딜을 할 때마다 믿고 맡기는 에이스 회계사로 정평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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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 ‘드림 밸류’는 과거 실적이나 현재 이익 규모가 아니라 미래 성장 가능성, 향후 시장 지배력, 기술력, 비전 등을 고려해 기업 가치를 정하는 밸류에이션 방식을 뜻한다. 드림 밸류라는 개념을 그가 처음 체감한 건 코로나19 이전 플랫폼 기업들이 급성장하던 시기 맡았던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 인수 실사였다. 2019년 말 독일 딜리버리히어로가 우아한형제들들을 인수할 때 거래가치가 약 4조7000억원이었는 데, 이는 당시 500억원 수준이던 영업현금창출 능력(EBITDA)의 100배에 달했다. 그는 “배달 앱이 외식업 소비 방식 자체를 바꿔놓은 시기였다”며 “그때 전통적 밸류에이션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개념이 지금은 반도체·AI 관련 기업들에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고 했다. 일례로 데이터센터 액체냉각 기업 쿨아이티시스템즈는 KKR이 보유하다가 올해 에콜랩에 6조50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는데, 이 가격은 예상 EBITDA의 약 29배에 달한다. 같은 시기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이 보유했던 보이드의 열관리 사업부도 13조원으로 예상 EBITDA의 약 22.5배에 팔렸다. 제조업·산업재 M&A에서는 EBITDA의 8~11배 수준에서 가격이 매겨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는 “이 정도 배수면 현재 기준 이익 창출력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만 최장 30년이 걸리는 셈”이라며 “과거 실적을 기준으로 미래 예측하는 방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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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시장 전반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새로운 표준이 된 시대’라고 진단했다. 이 부대표는 “고금리 기조가 길어지고 글로벌 지정학적 변수까지 겹치면서, 예전처럼 시장이 다시 안정될 것이라고 기다리는 전략은 통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환경에서 기업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스트레스테스트를 거친다”며 “그럼에도 버틸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베팅하는 용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반도체·AI 밸류체인처럼 성장동력이 명확한 영역에서는 앞으로 대기업이 이런 결단을 내리는 사례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PEF들의 대응 방식은 대기업과 결이 다르다고 그는 말했다. 대기업이 시너지를 앞세워 고평가된 첨단산업 딜에 직접 베팅한다면, PEF는 크레딧·인프라·부동산 등 다양한 펀드 구조를 짜서 이런 고평가 영역을 커버하거나, 아예 다른 분야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PEF 시장에 대해서는 “국민성장펀드 자금이 풀리는 하반기에는 미드캡급 딜이 활발해질 것”이라며 “펀드 규모상 대형 딜보다 1000억~3000억원대 안팎의 중소형 딜 위주로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부대표는 최근 삼일회계법인 내 AI 트랜스포메이션 업무도 함께 맡고 있다. 그는 기존 실사 인력이 수행하던 데이터 마이닝·가공 업무를 AI로 전환해 업무 부담을 줄이고, 회사가 축적해온 실사 데이터와 노하우를 자체 AI 프로그램으로 개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AI 중심으로 조직 문화를 전환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며 “이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느냐가 앞으로 회계법인은 물론 모든 전문직의 생존을 가를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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