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 부부와 저녁을 먹다가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아이들은 도무지 기다리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영상이 몇 초만 늦게 뜨면 다른 것을 누르고, 주문한 물건이 다음 날 아침에 오지 않으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맞장구를 치며 웃다가 문득, 어릴 적 시절이 떠올랐다.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꼭 노래 중간에 DJ 멘트가 섞여 들어와, 온전하게 녹음된 테이프는 몇 개 되지 않았다. 명절이면 TV 편성표에서 특선영화 제목부터 찾아 표시해 두고, 그 영화를 볼 생각에 명절이 더 기다려지기도 했다. 보고 싶은 비디오가 반납되면 꼭 연락 달라고 가게 아저씨에게 수십 번을 부탁했다. 지금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옛날이야기일 것이다. 같은 MZ로 묶이지만, M은 기다림을 기억하는 반면 Z는 사실 기다려본 적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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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요즘 세대가 참을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억울한 일이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릴 일이 사라진 것이다. 클릭 한 번이면 원하는 노래와 영상이 바로 나오고, 자정 전에 주문하면 새벽에 물건이 문 앞에 놓여 있다. 기다림을 연습할 기회가 없는 세상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기다림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기다림도 근육과 같아서 쓸 일이 없으면 붙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것은 세대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빨리빨리’는 우리 모두의 체질이다.
진료실에서도 이를 매일 확인한다. 처음 외래 진료를 오면 검사 날짜부터 잡고, 검사를 받은 뒤 다시 진료실에 와야 결과를 들을 수 있다. 수술은 보통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오늘 다 안 되나요?”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고, 빠른 수술 일정을 요청받는다. 그때마다 그저 힘들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나 역시 ‘빨리빨리’의 공범이다. 3분에서 5분 안에 환자를 보고 다음 환자를 불러야 하는 외래에서, 정작 “기다리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가장 빨리 하는 사람이 나다. 환자가 밖에서 기다려주고 그 짧은 진료를 참아주는 것도 어쩌면 같은 문화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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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은 기다림의 성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기다림에는 설렘이 있었지만, 병원의 기다림에는 불안만 있다. 검사 결과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은 없고, 떨어진 청력과 마비된 신경이 언제 돌아올지 기약 없이 기다리는 환자도 많다. 이 기다림을 없애는 것은 의사의 능력 밖이다. 진료는 새벽 배송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유를 아는 기다림과 모르는 기다림은 전혀 다르다. 물건이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지 알기만 해도 견딜 만해지듯, 수술을 왜 기다려야 하는지, 병이 어디쯤 와 있는지도 3분 내 말할 수 있다. 새벽 배송은 못 해드려도, 배송 조회만큼은 해드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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