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때문에 사람을 줄입니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감원 발표에서 빠지지 않는 설명이다. 2023년 5월 이후 AI와 관련해 사라진 일자리는 18만개를 넘어섰다. AI가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본격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공포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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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용 지표를 들여다보면 AI가 대규모로 사람을 대체하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에 ‘AI’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29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해 들어 기업이 가장 많이 내세운 감원 사유는 AI였다. 세일즈포스와 루프트한자, 액센츄어, 스탠다드차타드 등이 지난 1년간 인력을 줄이면서 AI를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기업들의 잇따른 감원 발표는 AI발 대량 실업에 대한 불안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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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경제학자와 노동시장 전문가들은 이를 곧바로 대량 실업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의 감원에는 AI에 따른 인력 대체뿐 아니라 실적 악화와 사업 구조조정, 투자 우선순위 변경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전문가들은 기업이 감원의 명분으로 실적 부진,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드는 것보다 AI를 앞세우는 편이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쉽다고 강조했다.
메타가 지난 1월 단행한 1000명 규모의 감원이 대표적이다. 감원은 메타버스 사업 부문에 집중됐다. 이는 메타가 AI 기기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칼베네딕트 프레이 옥스퍼드인터넷연구소(OII) AI·노동 부교수는 “기업들이 실제로 많은 업무를 자동화하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설득력 있는 증거는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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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히려 이런 감원 조치가 투자자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라며 “AI 기반 자동화가 진짜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기업이 투자자에게 AI 전환을 부각하기 위해 감원 계획을 내놓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올해 감원에 나선 기업 가운데 상당수는 AI 확산 과정에서 주가 타격을 받은 소프트웨어 업체들이다. 아틀라시안은 지난 3월 1600명을 감원하면서 이를 통해 확보한 재원으로 AI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소프트웨어 업체 오토데스크 역시 지난 1월 직원 1000명을 줄이면서 투자 우선순위를 AI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감원 대상은 대부분 영업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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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예일대 버짓랩은 미디어 및 기술 부문에서 2025년 12월 이후 해고가 증가했지만 이 원인을 AI와 직접적으로 연결 짓기는 어렵다는 분석을 내놨다. 또 AI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과 그렇지 않은 분야를 비교했을 때 임금, 일자리 증가율, 고용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제 지표에서도 대규모 감원 징후는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지난 7월 196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FT는 “정부 통계상 미국과 영국의 정리해고 규모는 과거와 비교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 아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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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진들의 전망도 비슷하다. 지난 2월 발표된 미국경제연구소(NBER)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기업 경영진들은 향후 3년간 AI 도입으로 줄어들 인력이 전체의 0.7%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FT는 “AI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아예 없다는 뜻은 아니다”며 “AI의 영향을 많이 받는 초급 직종에서 신규 채용이 급격히 감소했다”고 강조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