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콩쿠르 결선에서 정명훈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해 공동 2위에 올랐다. 지휘자가 된 뒤에는 아르카디 볼로도스, 베아트리체 라나, 조성진 등과 이 곡을 협연했다. 정명훈이 2011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녹음한 ‘비창’은 도이체 그라모폰 레이블로 발매됐다. 유튜브 서비스 초기 가장 먼저 검색되는 이 곡의 연주들도 그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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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한경아르떼필하모닉 ‘더클래식 2026 시리즈 3’ 콘서트가 열렸다. 프로그램은 차이콥스키의 위 두 곡. 강릉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정민이 포디엄에 올랐다. ‘아버지 정명훈’을 보며 자란 그에게도 이 두 곡은 유년기부터 의식 깊이 각인된 작품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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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 프로그램인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의 협연자는 윤홍천이다. 기대감과 궁금증이 뒤섞인 기분이었다. 그의 레퍼토리 가운데 중심은 모차르트, 슈베르트, 슈만 등 독일-오스트리아 음악의 시적이고 서정적인 부분에 놓여왔다.
1악장 호른의 합주가 지나간 뒤 피아노의 첫 화음부터 윤홍천의 타건은 다른 연주자들보다 볼륨이 작았다. 화려하고 대담한 효과를 자랑하는 연주보다는 낱낱의 순간을 중시하는 ‘슈베르트적’ 차이콥스키를 예감할 만했다. 이런 표정은 개개의 부분들이 모듈처럼 펼쳐지는 1악장에서 특히 효과가 좋았다. 윤홍천은 각각의 터치가 자아내는 달콤한 음색에 힘을 쏟았다. 작품 곳곳에 기호처럼 삽입한 저음역의 웅얼거림이 안락하고 편안했다.
플루트를 위시한 목관의 솔로 악구들에서 한경필의 단원들은 차이콥스키가 요구했을 법한 소박한 음색을 손에 잡힐 듯이 표현했다. 3악장 피날레의 종결부에서 나란히 상승음형으로 달려가는 부분에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사이 엇박자가 발생해 아쉬움을 남겼다.
후반부 ‘비창’은 지휘자가 자신만의 고유한 해석을 본격적으로 침투시키기 좋은 작품이다. 협주곡에서부터 이미 그랬지만, 이 지휘자의 비팅은 수직과 수평의 움직임이 많고 각각의 박에 가속과 감속을 주거나 예비박을 줄 때 지휘봉이 오른쪽 귀 뒤로 가는 모습 등 정명훈을 연상시키는 점이 많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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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각 파트 음색의 밸런스였다. 공고해진 한경필의 연주력에 힘입은 바 크겠지만, 감정의 부침이 많은 이 후기낭만주의 대곡에서 따뜻한 계열의 진한 음색이 흐트러지지 않은 채 부풀고 잦아들었다. 1악장 전개부의 강렬한 팀파니 롤링부터 속도를 충분히 늘여 잡고 다이내믹을 강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3악장의 종결부에서 갑자기 템포를 확 당기는 모습은 정명훈이 펼쳐 보였던 모습과 비슷했지만 그 대조는 한층 더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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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에서도 목관의 솔로 부분들은 최선을 다해 인상적인 음색들을 펼쳐냈다. 유감이라면, 한경필의 단원들이 정민의 비팅에 완벽히 적응하지 않은 모습들이 종종 눈에 들어온 점이다. 1악장의 제1주제 시작 부분엔 특히 아쉬움이 많았다. 이 곡에는 현이 ‘알아서’ 맞춰 들어와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이런 경우 음 시작(아인자츠)의 음색이 종종 흐트러졌다.
정명훈의 ‘비창’도 서울시향의 음반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연주 간에 세부의 차이가 많다. 그러므로 직접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누구를 의식하지 않아도 정민은 이날 무대에서 충분히 극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오페라적으로 강렬한 ‘비창’의 매력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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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타계했을 때 정명훈에게 전화를 걸자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LA필에서 부지휘자로 함께 일한 지 1년이나 지나서였다. 베토벤 ‘레오노레 3번’ 서곡을 연주한 후 무대 뒤로 들어가자 그는 내 등을 두드리며 ‘당신은 지휘자야(You are Conductor)’라고 했다. 내가 지휘자가 되기로 마음을 굳힌 순간이었다.”
27일 정명훈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를 지휘했다. 그가 이날 롯데콘서트홀에서 정민의 지휘를 보았다면, 다른 조언 없이 그의 등을 두드렸을 것 같았다. ‘너는 지휘자야.’
유윤종 음악평론가·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