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이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 화면에 한 아기 사진이 떴다. 이 남성과 교제 중이던 여성은 "누구냐"고 물었다. 여성이 계속해서 추궁하자 남성은 결국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란 사실을 털어놨다. 남성 A씨는 미혼 여성 B씨를 속이고 교제를 시작했다. 이들은 한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만났다. A씨는 미혼 행세를 하면서 B씨를 만났고 며칠 뒤 처음 성관계를 가졌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관계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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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같은 해 7월 스마트워치 속 아기 사진이 뜨면서 A씨의 혼인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A씨는 배우자와 별거 상태로 이혼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실제로 A씨 부부는 약 2개월 뒤 이혼이 확정됐다.
미혼남 행세하며 교제하다 '감봉 1개월' 징계
A씨와 B씨는 혼인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교제를 이어갔다. 이들 관계는 A씨가 B씨에게 교제를 중단하자고 말하면서 파국으로 접어들었다. B씨는 A씨에게 계속해서 교제를 이어가자고 애원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그는 A씨가 재직 중인 곳에 징계를 청원하는 고발장을 냈다. A씨가 일하는 곳에선 "혼인 사실을 숨긴 채 성관계를 가진 후 이혼일까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했다"면서 감봉 1개월 처분을 내렸다. A씨가 징계를 받게 된 가장 큰 고리는 직업이었다. A씨가 일했던 정부 기관에선 "공무원의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A씨를 감봉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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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이혼이 확정되기 전 다른 사람과 교제했다는 이유만으로 '품위유지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징계를 취소해야 한다는 취지의 소송을 냈다. 재판 당시엔 감봉 처분이 향후 진급심사 감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징계가 지나치다는 주장도 폈다.
법원 "이혼 전 외도보다 '미혼' 속인 것이 중요"
하지만 법원이 주목한 대목은 '외도'가 아니었다. 1심 법원은 징계사유가 배우자에 대한 정조의무를 위반했다는 데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징계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이 사건 징계사유는 원고가 혼인기간 중에 외도를 해 배우자에 대한 관계에서 정조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 아니라 B씨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혼인해 자녀가 있는 사실을 숨기고 미혼이라고 거짓말을 해 교제를 시작한 사실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씨의 이러한 행위가 군 장교로서의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데에 아무 의문이 들지 않는다"며 "사후적으로 B씨가 A씨의 사정을 이해하고 용서한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징계사유가 소급적으로 소멸하는 것도 아닌 데다 단지 징계양정에서 참작할 사정이 될 뿐"이라고 했다.
2심은 한발 더 나아갔다. 2심 재판부의 경우 혼인 여부가 B씨 입장에선 A씨와 만날지, 교제하고 성관계를 할지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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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재판부는 "B씨가 A씨와의 만남·교제·성관계 여부를 결정할 때에 A씨의 혼인 여부가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을 것이고 혼인관계를 알았다면 A씨를 만나지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A씨가 마치 자신이 미혼인 것처럼 B씨를 기망해 이에 속은 B씨로 하여금 성적 자기결정권을 잘못 행사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깊어져 B씨가 이를 끊기 어렵게 된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A씨가 B씨에게 자신의 혼인관계를 실토한 것으로 보이고 그것도 B씨에게 자녀 사진을 들켜 추궁을 받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실토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A씨 측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직장인들, 회사 밖 사생활 비위엔 "징계 불필요"
이 판결은 공공부문의 경우 사기업보다 사생활 비위에 징계권을 행사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넓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례로 꼽힌다. 공무원에겐 직무 안팎을 가리지 않고 품위를 유지할 의무가 적용된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공기업에서도 '품위유지의무 위반'을 고리로 징계 처분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반면 사기업은 직원의 사생활을 놓고 징계권을 행사하는 데 비교적 제약이 따른다. ADVERTISEMENT
대법원 판례를 보면 근로자의 사생활상 비행은 원칙적으로 징계사유라고 못 박기 어렵다. 해당 행위가 사업 활동과 직접 관련돼 있거나 기업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 우려가 있을 때 예외적으로 징계가 가능하다. 취업규칙 등에 '회사 명예 실추', '직장질서 문란' 등을 징계사유로 구체적으로 정해뒀는지도 중요하다.
직장인들도 '회사 밖'에서 벌어진 외도엔 징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경닷컴이 지난해 비즈니스 네트워크 서비스 리멤버에 의뢰해 직장인 1048명을 조사한 결과 57%(594명)는 회사 밖 불륜에 대해 "징계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징계해야 한다"는 응답은 24%(249명)에 그쳤다. 징계가 필요 없다고 본 이들 가운데 62%(371명)는 '직원의 사생활이어서'를 이유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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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륜의 무대가 회사 안으로 들어오자 태도가 돌변했다. 응답자 중 58%(603명)는 사내 불륜이 적발될 경우 '회사 차원에서 징계해야 한다'고 봤다. '징계가 필요 없다'는 응답은 28%(295명)에 그쳤다.
징계 찬성자 가운데 46%(276명)는 '직장질서가 문란해질 수 있어서', 38%(227명)는 '기업 문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서'를 이유로 지목했다. 징계 수위로는 해고 32%(190명), 전직·보직해임 30%(181명) 순이었다. 인사·노무 담당자 288명만 놓고 물었을 땐 '징계 찬성' 비율은 64%(184명)로 더 높게 나타났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