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대리인’ 문제는 경영학의 오랜 연구 주제다.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과 상충하는 의사 결정을 내릴 위험이 구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으로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는 게 정설이다.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생길 수밖에 없는 비용인 만큼 이를 최소화할 방도를 찾는 게 합리적 선택이 된다. 많은 기업이 더 정교한 인센티브 및 처벌 체계를 도입해 선의든 아니든 대리인의 선택이 주인의 이해와 최대한 일치하게끔 유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대리인 문제가 기업 경영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정치 영역에서의 대리인 문제는 더 심각하다.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회가 국가 미래를 고민하기보다 정치 투쟁에 집중하는 모습은 대리인 문제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 국민이 보기에 볼썽사나운 것은 차치하고, 국가 운영과 관련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정치에서의 대리인 문제는 폐해가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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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관점에서 풀어야 할 국정 현안이 쌓여가고 있다. 다수 국민은 침묵하는 가운데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만 요란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대리인이 사심을 갖고 결정해서는 문제가 더 꼬일 가능성이 큰 사안들이다. 주인의 의사 결정은 지금은 힘들더라도 미래에 초점을 맞추는 게 일반적이다. 동시에 일의 경중과 대소를 판단하고 선후, 완급도 조절하기 마련이다. 국가 운영과 관련된 결정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하지만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권의 의사 결정이 과연 그런지 의구심이 든다.
부동산 대책과 세제 개편이라는 초대형 이슈에 묻혀 있지만, 2차 공공기관 이전은 나라 미래를 고려한 의사 결정이 요구되는 중대 현안이다. 지역별 나눠 먹기로 진행된 1차 공공기관 이전이 새로운 성장 거점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서울과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고 지역 거점을 만들려면 이전 대상인 350여 개 기관을 두세 곳에 집중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지역 반발 등 정치적 부담이 크겠지만 가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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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지방자치단체는 벌써 사활을 건 유치 경쟁에 나섰다. 두세 지역에 몰아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공교롭게도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 대상과 시기를 다시 조율하고 있다. 여당에서는 민감한 의제나 갈등 소지가 큰 정책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앞으로 대리인이 아니라 주인으로서의 의사 결정이 이뤄질지 걱정이다.
정부가 내국세의 20.79%를 자동 배분하던 교육교부금 배정을 55년 만에 없애기로 한 것은 의미가 큰 결정이다. 하지만 불안 요인도 남아 있다. 당장 전국 16개 교육청이 모두 반발하고 있다. 직선제 교육감들은 국회를 찾아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줄어드는 초·중·고 학령인구와 무관하게 교육청 예산은 늘려가겠다는 억지다. 정부 스스로도 교부금이 전년 대비 줄어들면 국가가 그 차액을 보전하도록 법률에 명시하기로 약속했다. 미완의 개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국회에 주어졌다.
주주환원 확대 일변도의 정치권 입법 방향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엊그제 “배당을 많이 했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겨났겠나. 자본 축적으로 과감히 키워야 한다”고 말해 주목받았다. 갖은 비판을 쏟아낸 개인투자자와 달리 국가 미래를 고민해야 할 정부와 국회 구성원은 흘려들어선 안 될 발언이다. 주주환원을 늘려가는 방향 자체는 옳지만, 무리한 요구와 과도한 쏠림은 바로잡아야 할 책무가 있다.
이뿐만 아니다. 첨단산업 연구개발 인력과 억대 연봉의 고소득 관리자까지 주 52시간 근로제에 옭아맨 것을 넘어 모든 근로자의 야간 작업 횟수까지 ‘월 12회’로 제한하려는 여당 의원들의 최근 움직임은 이해하기 어렵다. 모든 것을 시시콜콜 통제하고 간섭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소수 지지층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바라보고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런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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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서 대리인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로는 흔히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와 함께 직업윤리 실종이 꼽힌다.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국정 현안을 풀어가려면 정치의 책임윤리 회복이 급선무다. 분명한 사실은 기업이든 정치든 대리인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 전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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