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15%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 블록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위한 사회적 논의와 여론 수렴 절차를 본격화한다. 통상 고립 방지와 멕시코 등 신규 공급망 확보라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추가 개방에 따른 농어업계의 피해 우려를 고려해 결론을 미리 정하지 않고 의견 수렴을 진행하겠다는 신중한 태도도 나타내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73차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CPTPP 가입 관련 향후 대응방향' 안건을 설명하며 "결론을 미리 정해놓지 않고, 무엇이 우리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지 충분히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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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장관은 "자국 우선주의 확산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중동 정세 불확실성 속에서 안정적인 교역 질서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며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UAE), 중국 등 11개국이 이미 CPTPP 가입 신청을 마쳤고, 우리 역시 이러한 거대한 통상 질서 변화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가입 논의 착수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과거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과정의 갈등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김 장관은 "과거 FTA 추진 과정에서 정부의 소통이 충분하지 않았거나 형식적이고 보여주기식이었다는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정부가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의 우려와 걱정을 있는 그대로 듣고 필요한 대책을 함께 고민해 실제 정책 과정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논의는 가입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가능성을 열어놓고 본격적인 공론화와 의견 수렴을 시작하는 단계"라며 "속도만을 앞세우지 않되 변화하는 통상질서에 뒤처지지도 않겠다"고 덧붙였다.
멕시코와 FTA 맺는 효과
정부가 국내 반발 부담에도 불구하고 CPTPP 카드를 다시 꺼낸 것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통상 고립을 피하기 위해서다. CPTPP는 일본·캐나다·호주·멕시코·베트남 등 12개 회원국이 참여 중이다. 관세 철폐율이 95%를 넘고 디지털·지식재산권 등 높은 수준의 규범을 요구한다.ADVERTISEMENT
가입 시 기대되는 최대 실익은 현재 양자 FTA가 체결되지 않은 멕시코와의 간접 FTA 체결 효과다. 한국은 기존 12개 회원국 중 멕시코를 제외한 10개국과 이미 직접 무역협정을 체결한 상태다. 일본과는 양자 FTA는 없지만, 2022년 발효된 메가 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통해 다자간 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최근 멕시코가 미체결국 품목에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등 무역 장벽을 높이는 상황에서, CPTPP 가입은 멕시코 현지 생산 거점을 둔 자동차 부품, 철강, 전자 등 우리 주력 기업의 원가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CPTPP 가입 시 실질 GDP는 0.33~0.35% 증가하고, 섬유·의류와 수송기기, 화학, 전기·전자 등 주력 제조업 전반에서 생산 유발 효과가 크다고 평가했다.
농민단체 즉각 반발 "산 넘어 산"
농어업계의 반발은 가입 추진의 최대 난관이다. CPTPP 회원국들은 농업 강국이 많다. CPTPP 가입 시 한국에 높은 수준의 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는 이날 성명을 내고 "농업 현장과 사전 협의 없이 논의를 본격화했다"며 관련 절차 중단을 촉구했다. 한농연은 "CPTPP 회원국의 농산물 평균 관세 철폐율은 97%에 육박하는 반면 한국은 72% 수준에 불과하다"며 "가입 시 추가 개방으로 국내 농업에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도 농업계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고 나섰다. 농식품부는 별도 입장을 통해 "가입 시 농업 분야에 상당한 영향이 우려되며 농업계의 예상 피해를 소홀히 다루거나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며 "농업계와 충분히 소통한 뒤 추진 여부가 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다음 달 농업인 종합단체와 품목별 생산자단체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진행하고, 경제적 타당성 연구용역 결과를 공청회에서 공개할 계획이다.
향후 CPTPP 가입 성패는 ‘실효성 있는 국내 보완대책’과 ‘이익 공유 모델’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가입 신청 이후에도 12개 기존 회원국과의 개별 협상, 일본산 수산물 규제 등 민감 현안 조율, 국회 비준 동의 등 험난한 관문이 남아 있어 정부의 갈등 관리 역량이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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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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