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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 현대미술의 여왕…'물방울 그림 거장' 쿠사마 야요이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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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 현대미술의 여왕…'물방울 그림 거장' 쿠사마 야요이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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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방울 여왕'으로 불린 일본의 현대미술 거장 쿠사마 야요이가 지난 1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7세. 사망 사실은 13일이 지나서야 알려졌다. 유족과 스튜디오는 27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고인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고 밝혔다.

    쿠사마는 아시아 미술의 슈퍼스타였다. 발랄한 물방울무늬로 뒤덮인 노란 호박과 거울방 설치작품은 세계 어느 미술관에 가도 관객이 줄을 서는 '흥행 보증수표'였고, 작품값은 살아 있는 여성 작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작업들은 작가의 깊은 고통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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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사마는 1929년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물질적으로는 풍족했지만 아버지의 외도와 어머니의 가정폭력으로 얼룩진 유년기였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열 살 무렵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제비꽃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눈앞을 뒤덮는 물방울과 그물 모양 환영(幻影)에서 도망치기 위해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가가 되겠다는 딸의 그림을 어머니는 찢어 버렸다.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에게 무작정 편지를 보내는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해 1957년 홀로 미국에 건너갔다. 뉴욕 생활은 스스로 '생지옥'이라 부를 만큼 비참했다. 캔버스와 물감을 사고 나면 밥값이 없어 시장에 버려진 생선 대가리와 배추 이파리로 국을 끓여 먹었고, 주워 온 문짝을 침대 삼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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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활 속에서 나온 작품이 쿠사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무한 그물'이다. 자신이 보는 그물 무늬의 환각을 폭 수 미터짜리 캔버스에 끝없이 그린 독창적인 작품이다. 중심이 되는 모양이 없이 감정을 걷어내고 단순한 형태를 반복한다는 이 그림의 원리는, 훗날 세계 미술의 대세로 자리잡는 '미니멀리즘'을 몇 년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시기 그린 '무한 그물' 중 하나는 2022년 경매에서 1050만달러(약 150억원)에 팔렸다. 생존 여성 작가 중 최고가 기록이었다.

    1960~1970년대 쿠사마는 전위미술의 최전선에 있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 탓에 성(性)을 두려워했던 그는 두려움을 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맞섰다. 성적인 형상을 부드러운 천으로 빚은 뒤 물방울무늬로 뒤덮는 조형물을 쏟아낸 것이다. "무서웠던 것도 무섭지 않게 느껴진다. 그렇게 작품을 하나하나 만들 때마다 나는 두려움을 극복해 나갔다." 나체 행위예술로 뉴욕을 발칵 뒤집기도 했다. 하지만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연인과 아버지의 죽음, 악화된 정신질환 속에 그는 1973년 빈손으로 귀국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그는 1977년부터 아예 도쿄의 정신병원에 들어가 살았다. 길 건너에 작업실을 짓고 반세기 동안 병원과 작업실만 오가며 그렸다. 세상이 그를 잊은 사이에도 작업은 멈추지 않았고,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사상 첫 단독 대표로 다시 세계 무대에 섰다. 1998년에는 30년 전 그가 무단 나체 해프닝을 벌였던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그의 회고전을 열었다. 2012년 파리 퐁피두센터와 런던 테이트모던 등으로 이어진 순회 회고전을 거치며 그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현대미술가 반열에 올랐다.

    말년의 쿠사마는 미술관 담장 밖에서도 사랑받는 작가였다. 거울로 무한을 만드는 설치작품 '인피니티 미러룸'은 세계 곳곳에서 '인증샷 성지'가 됐다. 루이비통과의 협업 상품과 물방울 무늬 기념품은 미술관 문턱을 넘어본 적 없는 사람들의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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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쿠사마를 사랑한 건 화려한 볼거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물방울과 호박은 반세기 동안 정신병원에서 그린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밝고 사랑스러웠다. 평생 자신을 괴롭힌 고통을 명랑한 형상으로 바꿔내는 진정성에 세계의 관객들은 감동했다.

    후배들에게는 길이 됐다. 아시아 여성 작가가 세계 미술의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다. 쿠사마에 이어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단독 대표를 지낸 시오타 치하루 작가는 기자와 만나 부고 소식을 듣고 "여성 선배 현대미술가로서 큰 영향을 받았던 인물"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한국 컬렉터들의 사랑도 각별했다. 그는 국내 경매시장에서 매년 낙찰총액 1위를 다투는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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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흔이 넘어서도 쿠사마는 매일 그렸다. 생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반 고흐의 그림이 비싼 건 그가 미쳐서가 아니다. 고난에 맞서 싸우는 인간은 존엄하고 아름답다. 나도 내가 위대한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끊임없이 고난과 싸우는 한 사람일 뿐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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