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 10시 서울 남산에 올라 도심 야경을 감상하고, 자정까지 집 근처 체육시설에서 운동한다. 퇴근이 늦은 직장인은 오후 9시까지 문을 여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는다. 심야에는 홍대·광화문·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명동·강남 등 서울의 야간 명소를 잇는 '반딧불이버스'가 도로를 누빈다.
서울시가 시민의 생활시간을 밤까지 확장해 관광과 골목상권 활성화로 연결하는 ‘야간경제’ 실험에 나선다. 식당과 상점, 문화시설의 영업시간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운동·문화·관광·교통·안전·청결 등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를 야간에 하나의 운영체계로 묶는다는 구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일 서울시청에서 ‘24시간 활력경제도시 서울’ 계획을 발표했다. 정책 대상 시간은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다. 오후 6~9시에는 문화와 여가를, 오후 9시~자정에는 체류와 소비를, 자정 이후에는 귀가와 안전을 중심으로 도시 서비스를 설계하는 것이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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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5년 뒤 연간 야간소비 5조원을 추가로 창출하고, 외국인 관광객 3000만명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소상공인의 전체 매출에서 야간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5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공공시설 밤까지 '활짝'

서울시가 야간경제의 출발점으로 내세운 부분은 상권 활성화가 아니라 시민의 여가였다. 시가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용하고 싶은 야간 콘텐츠로 공원·수변 야간 산책로가 44.2%로 가장 많이 꼽혔다. 야시장·야장 37.8%, 고궁·박물관·미술관 야간 개장 33.3%, 심야 영화·책방·북토크 31.2% 등이 뒤를 이었다.
시민 의견을 토대로 서울시는 시·자치구와 학교, 공원 등에 있는 체육시설 269곳의 운영시간을 시설 여건에 따라 최대 자정까지 연장한다. 한강과 지천의 축구장·야구장·풋살장 등 체육시설 259곳에는 조명을 확충하고 노후 시설을 정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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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유휴공간을 운동과 휴식 공간으로 바꾼 ‘펀스테이션’도 18곳으로 늘린다. 러닝뿐 아니라 파크골프, 샤워, 사우나 등을 즐길 수 있는 생활밀착형 웰니스 공간으로 조성한다. ‘7979 서울 러닝크루’와 야간 테마 러닝, 전문선수 재능기부 레슨도 확대한다.
문화시설을 즐길 수 있는 시간도 길어진다. 현재 주 1일만 야간 개방하는 시립 박물관·미술관·도서관 등 8곳을 오는 9월부터 주 5일 오후 9시까지 순차적으로 운영한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학예사와 함께하는 야간 전시 토크를, 한성백제박물관에서는 ‘백제왕도 달빛기행’ 등 문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오는 9~11월 시범운영을 거쳐 내년부터 상시 운영할 방침이다. 서울공예박물관 잔디마당과 세종문화회관 옥상·뒤뜰 등 평소 활용도가 낮았던 공간도 야간 공연장으로 바뀐다.
어르신의 저녁 활동도 지원한다. 노인복지관과 종합사회복지관은 평일 주 2회 저녁까지 문을 열고, ‘우리동네 활력충전소’에서는 별빛체조와 별빛댄스, 작은 음악회 등을 운영한다.
DDP ·남산·광화문·한강…'밤의 랜드마크'로

오 시장은 시민의 늘어난 활동시간을 관광과 상권 매출로 연결하는 축으로 DDP·남산·광화문·한강을 꼽았다.
DDP에서는 오는 9월부터 ‘DDP 365 라이트’를 시범 운영한다. 오후 7시부터 매시 정각 미디어아트를 상영하고 패션·디자인·뷰티·먹거리·쇼핑 콘텐츠를 동대문 상권과 연결한다. 오 시장은 “(관광객들이) DDP를 보고 바로 돌아가지 않고 동대문에서 한 시간을 더 머물게 하겠다”며 “그 한 시간이 지역 상권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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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은 밤에도 머무는 도심 힐링 명소로 바꾼다. 오는 10~11월 매주 금·토요일 백범광장에서 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 ‘감성 캠프닉’을 운영한다. 텐트에서 야외영화와 버스킹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남산 둘레길에는 야간 단풍 트레킹 코스를 만들고 한국숲정원에는 야간조명을 활용한 ‘반딧불 정원’을 조성한다.
남산과 명동을 하나의 야간 관광축으로 연결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장기적으로 남산 곤돌라와 전망대, 명동 재미로 일대 창조산업허브 등을 연계해 ‘남산 나이트 워크’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광화문은 낮에 집중된 유동인구를 저녁까지 붙잡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감사의 빛’과 서울라이트 광화문, 시티캔버스 등 미디어아트에 야외도서관, 요가, 거리공연을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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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사계절 야간 놀이터로 육성한다. 드론라이트쇼와 빛섬축제 개최를 늘리고 뚝섬한강공원 경관조명을 개선한다. 2027년에는 잠원한강공원부터 동호대교까지 약 4㎞ 구간을 ‘빛의 호수, 서울 동호’로 조성한다. 겨울에는 뚝섬에서 노천 사우나와 요가·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서울의 산과 사찰 역시 관광 콘텐츠가 된다. 아차산 해맞이공원과 응봉산 팔각정, 낙산 성곽길, 용왕산 스카이워크를 야간 하이킹 코스로 개발한다. 조계사·봉은사·화계사에서는 오는 10월 29일부터 11월 4일까지 야간 명상과 산책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달빛야장 25곳…자치구마다 '힙지로' 만든다

서울시는 지역 먹거리와 골목상권을 야간 관광자원으로 키우는 ‘서울 달빛야장’을 올해 5곳에서 2028년 25곳으로 확대한다. ‘제2의 힙지로’를 자치구마다 만들겠다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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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된 상권에는 보행·위생시설 정비와 상권 브랜딩, 마케팅 등을 묶어 최대 20억원의 종합 패키지를 지원할 계획이다. 도로점용 허가와 옥외영업 가이드라인 등 규제 개선도 병행한다.
대상지는 자치구 공모를 통해 정한다. 주민과 상인회의 협의 수준, 도로점용 등 법적 기반, 위생·안전 운영기준, 상권의 성장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서울 전역의 균형도 함께 고려하기로 했다.
지역 특성에 맞춰 콘텐츠와 상권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야간경제 상생특구’도 추진한다. 시가 검토 중인 지원안에는 2년간 5억원 규모의 시·자치구 공동 재정지원과 야간 도로·인도 점용, 옥외광고 기준 완화, 심야버스와 CCTV 우선 확충 등이 담겼다.
다만 야간 활성화가 소음과 쓰레기, 주거환경 악화로 이어지는 것은 막겠다는 방침이다. 달빛야장 지정 때 주민·상인 협의체와 상생협약 체결을 요구하고, 운영시간과 소음·청결 관리 기준을 마련한다.
밤11시부터 '반딧불이버스' 운영
야간 활동시간이 길어지면서 심야 교통도 보강한다. 서울시는 오는 10월부터 야간명소 순환형 ‘반딧불이버스’ 9대를 투입한다. 홍대·광화문·DDP·명동·강남 등 관광거점과 호텔 밀집지역, 대학가, 지하철역을 연결한다.기존 N버스가 도심과 외곽 주거지 사이의 귀가 수요를 맡고 있다면, 반딧불이버스는 야간명소 사이의 이동을 지원하는 데 방점을 뒀다. 오후 11시부터 이튿날 오전 5시50분까지 왕복 3회 운행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다만 반딧불이버스를 타고 서울 명소를 즐긴 뒤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으로 돌아갈 교통편은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다. 시는 우선 도심 노선을 운행한 뒤 이용 수요를 분석해 시내버스 노선을 개편하고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아울러 서울시는 주요 야간거점을 중점관리구역으로 지정하고 AI 기반 인파 감지 CCTV를 확대한다. 현재 인파 밀집지역 91곳에서 운영되는 1086대의 CCTV를 활용해 혼잡도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서울시·보건소·소방·병원을 잇는 응급의료 대응체계를 구축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지역에는 서울경찰청 광역예방순찰대를 배치한다. 내년부터는 ‘서울보안관’ 100명이 야간 취약지역을 순찰하고 지구대·파출소와 핫라인을 가동한다. 야간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는 청결기동대 150명을 투입하게 된다.
"밤 소비 4%만 늘어도 5조원 효과"
서울시 셈법 보니
서울시가 야간소비 5조원 추가 창출 목표를 세운 근거는 카드 소비 데이터다. 서울의 오후 5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 카드 소비액은 하루 평균 3118억원이다. 야간소비가 1% 늘면 하루 약 31억원, 연간 1조1000억원 이상의 추가 소비가 발생한다. 시는 정책을 통해 소비를 4% 이상 늘리면 연간 약 5조원을 추가로 창출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서울시 셈법 보니
올해 상반기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823만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21.3% 증가했다. 이들의 카드 소비액은 같은 기간 56.8% 늘어난 5조6000억원이었다. 다만 외국인 소비의 65%가 강남·중구·마포 등 3개 자치구에 집중됐다. 야간 관광 동선을 서울 전역으로 넓혀 소비를 골목상권까지 확산하겠다는 게 서울시의 구상이다.
정책 추진에 필요한 추가 예산은 2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올해 추가경정예산에는 달빛야장과 생활권 야간명소 등에 약 39억원이 반영됐다. 서울시는 대규모 시설을 새로 짓기보다는 기존 체육·문화·관광사업을 야간경제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안전요원과 운영인력 등에 추가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다만 체육·문화시설의 운영시간을 연장하는 데 필요한 인력과 초과근무 비용에 관한 종합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우선 기존 인력을 탄력적으로 활용하고 단기 채용이나 ‘동행매력 일자리’ 등을 연계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야간경제 활성화 기본조례’를 만들고, 오는 9월 전문가·상인·주민 등이 참여하는 15명 규모의 서울야간경제위원회를 출범시킨다. 야간명소와 프로그램, 교통 정보를 한눈에 보여주는 ‘서울 나이트 맵’도 제작한다.
야간경제 정책을 총괄할 이른바 ‘나이트메이어’(야간시장) 임명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 런던과 암스테르담 등은 야간경제와 주민 갈등을 조정하는 별도 책임자를 두고 있다. 오 시장은 “민간 전문가 영입은 창의성과 상징성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여러 실·본부·국의 협업을 이끌려면 시장이 직접 챙기고 내부 인사에게 역할을 주는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며 “정책 성과를 지켜본 뒤 나이트메이어를 임명하거나 현 체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 시장은 “서울형 야간경제는 단순히 늦게까지 소비하고 즐기자는 정책이 아니다”며 “시민의 풍요로운 저녁에서 시작된 활력을 관광과 골목상권의 기회로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김영리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