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서울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헤지스(HAZZYS)의 플래그십 스토어 ‘스페이스H 서울’. 매일 같이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이날은 더 특별했다. 매년 이맘때쯤 열리는 내년 봄·여름(SS) 시즌 수주회에 역대 처음으로 글로벌 틱톡커들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신제품들을 둘러보며 수시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현장에서 만난 카메룬 출신 카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스타일링하기 좋은 데님 컬렉션을 SNS에 소개할 계획”이라고 했다. 헤지스는 데님을 주요 소재로 하는 ‘헤지스 블루’를 세계 시장에서 브랜드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라인으로 육성하고 있다.
헤지스의 수주회 문법은 작년부터 확 달라졌다. 기간을 기존 이틀에서 10일, 올해는 15일까지 대폭 늘렸다. 올해는 이 중 하루를 ‘글로벌 콘텐츠 데이’로 지정해 헤지스의 글로벌 ‘틱톡 크루’로 활동 중인 외국인 크리에이터들을 불렀다. 카메룬을 포함해 독일, 베트남,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UAE) 출신 크리에이터 6명이 이날 스페이스H 서울을 찾아 콘텐츠를 제작했다. 베트남 출신 깜뚜는 “틱톡 크루에 합류하기 전부터 헤지스 제품을 눈여겨보고 있었다”며 “이번 컬렉션에선 리넨 셔츠를 포함한 여름용 제품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헤지스가 글로벌 바이어 대상 수주회에 이토록 공을 들이는 건 K패션 대표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다. 단순히 제품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헤지스라는 브랜드에 담긴 철학과 스토리를 전파해 고객 충성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소비자 관점에서 접근하는 인플루언서들은 고객 친화적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데 최적의 툴이다. 헤지스를 운영하는 LF 관계자는 “제품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에 담긴 콘텐츠와 공간, 문화적 경험까지 일체화된 브랜드자산으로 만들어야 글로벌 경쟁력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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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런칭 26년 차를 맞는 헤지스는 토종 국내 브랜드지만, 1928년 당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최고 명문 로잉(조정) 팀이었던 ‘헤지스 클럽’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만큼 영국 감성에 근본을 두고 있다. 이번 컬렉션도 ‘노팅힐-런던의 색’(Notting Hill ? The Color of London)을 주제로 삼아 헤리티지를 이어갔다. 헤지스를 대표하는 강아지 캐릭터 해리(Harry)가 출연하는 인공지능(AI) 기반 영상물도 제작해 브랜드 세계관을 한층 넓혔다. 해외 바이어들이 언어 장벽 없이 브랜드 컨셉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란 설명이다.

외국인 매출이 빠르게 늘고 있어 한국적 감성을 적절히 섞어내는 작업도 병행 중이다. 한국의 전통 오방색(五方色)에서 따온 채도 높은 색상의 ‘아이코닉’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LF에 따르면 스페이스H 서울 매장을 찾는 외국인 고객은 아이코닉 티셔츠를 평균 3개씩 구매한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선 약 40%가 같은 상품을 서로 다른 색상으로 많게는 5~6장씩 사 갔다. 이번 컬렉션에선 국가무형문화재인 박영애 침선장, 국가유산진흥원과 협업한 데님 아트워크도 새롭게 선보였다.
AI 기술은 헤지스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과정에서 핵심 동반자가 됐다. 바이어들은 더 이상 옷걸이에 걸려 있는 샘플만 보지 않는다. 핵심 제품이 조합된 룩북 영상을 AI로 제작해 핏과 디테일, 스타일링 방법 등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이 룩북과 연동된 B2B(기업 간 거래) 오더 시스템을 통하면 별도의 문서 작업 없이도 원하는 제품을 편리하게 주문할 수 있다. 최우일 LF 헤지스 사업본부장은 “수주회와 실제 주문 시점 간 시차로 인한 불편함, 엑셀 시트를 작성해야 하는 번거로움 등을 해결하기 위해 수주 시스템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7월 22일부터 이달 7일까지 진행된 수주회 기간 이뤄진 수주 규모가 전년 대비 10% 늘었다.

작년 기준 연 매출 ‘1조 브랜드’로 성장한 헤지스는 올해 공격적인 해외 진출 전략에 기반해 글로벌 시장에 안착할 계획이다. 중국, 대만, 베트남, 러시아 등에 80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인 데 이어 오는 9월 홍콩에 매장을 추가로 낸다. 내년에는 태국·인도에 이어 프랑스까지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 장기적으로 중동 진출도 염두에 두고 파트너사를 물색 중이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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