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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우스 신화' 오쿠다 히로시 前 도요타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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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우스 신화' 오쿠다 히로시 前 도요타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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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세계화를 이끌고 세계 최초 양산형 하이브리드차(HV) ‘프리우스’ 출시를 주도한 오쿠다 히로시 전 회장이 지난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12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오쿠다 전 회장은 1995년 도요타 회장 자리에 올라 해외 생산 확대와 상품 혁신을 이끌었다. 내수 중심이던 도요타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로 성장할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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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미에현에서 태어난 그는 1955년 히토쓰바시대 상학부를 졸업한 뒤 도요타에 입사했다. 경리 부문과 필리핀 근무 등을 거치며 한때 비주류로 밀려났지만 도요다 소이치로 전 회장에게 발탁된 이후 두각을 나타냈다.

    1980년대에는 북미사업준비실에서 미국 진출을 담당하며 도요타의 핵심 생산거점이 된 켄터키 공장 건설의 초기 작업을 담당했다. 1995년 도요다 다쓰로 당시 회장이 병으로 물러나자 후임 회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도요타가 자동차 생산과 판매 법인을 통합한 1982년 이후 처음으로 창업가 출신이 아닌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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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도요타는 일본 내 판매 점유율이 하락하고 해외 진출도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쿠다 전 회장은 조직이 ‘대기업병’에 빠졌다고 진단하며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쁘다. 도요타가 변해야 일본이 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폐쇄적이고 내향적이던 경영체질부터 손댔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에 생산거점을 잇달아 늘리고 해외 판매 확대에 속도를 냈다. 주주 중시 경영과 환경기술 투자도 강화했다.


    프리우스는 오쿠다 전 회장의 결단력을 상징한다. 개발진은 기술적 난관 때문에 HV 양산 시점을 1998~1999년으로 예상했지만, 오쿠다 전 회장은 이를 1997년 말로 앞당기라고 지시했다. 1997년 12월 교토에서 예정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앞두고 환경기술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였다. 당시 개발진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반발까지 나왔지만 오쿠다 전 회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도요타는 1997년 “21세기에 맞췄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프리우스를 내놨다. 프리우스는 높은 연비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도요타의 핵심 경쟁력으로 성장했으며, 글로벌 하이브리드차의 표준이 됐다.

    이후 그는 일본의 국가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도요타 회장을 거쳐 2002년 닛케이렌과 통합해 출범한 새 게이단렌(일본경제인연합회)의 초대 회장에 오르면서다. ‘성역 없는 구조개혁’을 내건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와 함께 경제재정자문회의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는 “일본은 한 바퀴 뒤처진 주자다. 디플레이션이 심각한 것은 구조개혁이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변화를 촉구했다. 게이단렌 회장 재임 4년 동안 인구 감소에 대비한 소비세율 인상 등 약 200건의 정책 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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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쿠다 전 회장은 생전 “21세기는 20세기의 연장선에서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성공방식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이후 도요타의 글로벌화와 경영 전략을 상징하는 말로 남았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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