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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기기 섹터에 있어 시장의 가장 큰 우려는 사이클의 피크아웃(peak-out: 업황이 정점을 찍고 꺾이는 것)이다. 과거 전력기기 섹터가 사이클 산업의 흐름을 보여왔던 만큼, 현재의 업사이클 국면에서도 투자자들의 관심은 산업의 피크아웃 시점에 집중되고 있다.
앞서 업사이클이 통상 3~5년간 지속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2년부터 시작된 이번 랠리의 다운사이클 전환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주요 전력기기 기업들의 주가가 사이클 초입 대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는 점도 시장의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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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된 피크아웃 논쟁
시장에서는 사이클의 피크아웃 시점을 예측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기업들의 신규 수주, 수주잔고와 변압기의 가격 추이를 나타내는 변압기 생산자물가지수(Producer Price Index·PPI)가 지속적으로 관찰되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 간 변압기 수출입 통계와 변압기의 주요 원재료인 방향성 강판(Grain-Oriented Electrical Steel·GOES: 자속이 한 방향으로 잘 흐르도록 결정 방향을 정렬한 전기강판으로 변압기 철심에 쓰임) 가격 등도 업황을 가늠하는 보조 지표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 지표들의 변화를 통해 업황의 지속 여부와 사이클의 변곡점을 예측하려 하고 있다.
다만 이 지표들로는 업황을 선행적으로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PPI는 제품 인도 시점의 가격을 반영하는 후행 지표이며, 수출입 통계 역시 리드타임(수주에서 납품까지 걸리는 기간)을 고려하면 2~3년 전 업황을 보여주는 지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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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는 기업별 영업 성과와 수주 정책에 따라 편차가 크고, 별도의 슬롯 예약 제도(slot reservation: 고객이 미리 생산 라인의 생산 슬롯만 선점하는 방식)를 운영하는 경우 실제 수요가 즉시 수주로 인식되지 않을 수 있다. 파생 지표에 의존한 업황 진단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보다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전력망 병목의 근원지인 미국의 계통연계(grid interconnection: 발전설비·수요설비를 기존 송배전망에 접속시키는 절차) 데이터를 취합했다. 계통연계 과정에서는 변압기, 차단기, 개폐기 등 핵심 전력기기가 필수적으로 요구되기에 신규 계통연계 수요는 곧 전력기기 수요 그 자체로 해석할 수 있다. 취합된 데이터는 유틸리티사들의 계통연계 신청 규모, 신청 시점, 준공 시점, 발전원과 전압대 등으로 구분해 전력망 시장을 다양한 관점에서 진단할 수 있게 가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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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GW의 신호…피크아웃은 시기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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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정리하면, 전력기기 섹터에 대한 피크아웃 우려는 시기상조라 판단된다. 최근 취합한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유틸리티사들의 신규 계통연계 신청량은 여전히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5년에 집계된 계통연계 신청량은 약 564기가와트(GW)로 미국 전체 발전량인 1400GW의 약 40%에 육박한다.

과거 다운사이클이었던 2010년도 초반과 비교하면 5배 증가한 수준이며, 직전 사이클이었던 2008년과 비교해도 2배 이상을 상회한다. 2026년 YTD(Year To Date: 연초 이후 현재까지 누계) 계통연계 신청량은 167GW로 올해 역시 500GW를 충분히 상회할 것으로 예상한다.
실질적인 전력기기 수요는 2030년까지 견조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계통연계 신청량과 목표 연계 시점을 조합하면 전력기기 필요 시점을 유추할 수 있다. 조합한 데이터에 따르면 전력기기 제품 수요는 2025년 357GW에서 연평균 22% 성장해 2028년 648GW를 기록할 전망이다.
2025년 실제 계통에 연결된 물량이 52GW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2028년 신청분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전력기기 공급은 최소 10배 이상 확대돼야 한다. 미국은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타 지역 대비 앞서 투자를 단행해 왔다. 향후 유럽, 중동 및 개발도상국의 후속 투자를 고려하면 전력기기 사이클은 보다 장기화될 여지가 충분하다.

데이터상으로는 2028년 이후 수요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이를 사이클의 피크아웃으로 해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유틸리티사들은 통상 착공 3~4년 전에 계통연계를 신청하며, 10년 이상 장기 프로젝트를 선제적으로 신청하는 경우는 드물다.
2029~2030년 데이터가 감소하는 이유는 해당 시점의 신규 신청이 아직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수요 피크 역시 점진적으로 후행 연도로 이연될 가능성이 높다. 미래에셋증권이 데이터를 취합한 6개월 동안 실제로 피크아웃 시점도 함께 약 6개월가량 이연됐다.

추가 신청 '제로' 가정해도 병목은 남아
더욱 주목해야하는 점은 추가 신청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가정을 적용하더라도 전력망 병목이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2025년 계통연계에 성공한 발전원이 약 52GW에 불과한 반면, 현재 집계만으로도 2030년 계통연계 예정 물량은 311GW에 달한다.
글로벌 전력기기 업체들이 공격적인 증설을 진행하고 있으나 생산능력이 현재 대비 2배 확대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연간 공급 가능한 물량은 약 100GW 수준으로 추정된다. 즉, 공급 확대를 감안해도 연간 200GW 이상의 계통연계 병목은 지속될 전망이다.


긍정적인 수요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신중한 증설 기조와 램프업(ramp-up: 신설 라인의 가동률을 정상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과정) 시차로 전력기기 수급은 보다 타이트해질 전망이다. 2024년 기준 글로벌 변압기 캐파(CAPA)와 수요는 각각 3264기가볼트암페어(GVA: 변압기의 피상전력 용량 단위)와 1979GVA로 네임플레이트(설비 명판에 표기된 정격 기준 최대 생산능력) 생산 여력은 충분하다.
다만 숙련공 양성, 벤더 인증(발주처가 요구하는 납품 자격 심사·승인) 확보와 부품 수급 차질 등에 따른 가동률 저하로 실제 생산량은 생산능력을 큰 폭으로 하회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향후 예상되는 수요 증분은 공급 증분을 상회한다.
수급이 균형을 이룬 2019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2030년까지 공급은 연평균 3.4%, 수요는 연평균 5.9%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2030년 수요는 실제 생산능력을 28% 상회할 것으로 분석한다.
수급 차질에 더해 현재까지 누적된 수요 또한 상당하다. 앞서 살펴본 수요와 공급 간 괴리로 공급 부족분은 지속적으로 누적된 상황이다. 미국 시장의 경우 2026년 5월 기준 계통연계를 대기 중인 물량(interconnection queue: 계통연계 대기열)은 약 1543GW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30년 치 대기열, 구조적 공급 부족의 증거
평균적으로 미국에서 연간 신규 계통으로 연결되는 물량이 50GW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현재 쌓인 대기 물량을 해소하는 데만 최소 30년 이상이 필요하다. 누적된 수요와 앞으로 예상되는 수급 차질을 고려하면 변압기 수급 차질은 구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분석한다.

타이트한 제품 수급은 전력기기 판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과거 업사이클 구간이었던 2005~2009년과 2020년부터 현재까지의 변압기 PPI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동일 기간 미국 전력망 계통 데이터를 살펴보면 신규 계통연계 신청용량이 실제 계통 연결 완료용량을 큰 폭으로 상회하고 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신규 연결 신청용량이 향후 변압기 수요의 선행지표라는 점을 고려하면, 변압기 PPI 상승은 공급 부족이 주도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지표에서도 신규 계통연계 신청용량은 연결 완료용량을 여전히 웃돌고 있다. 제한적인 증설과 대기 수요를 감안하면 변압기 PPI의 상승 기조는 중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분석한다.
중장기적인 전력기기 업사이클을 전망하는 가운데, 초고압대의 제품군이 각광받을 것으로 분석한다. 변압기는 전압별로 주요 사용처가 상이한데, 초고압 변압기는 주로 발전소당 발전용량이 큰 에너지원과 연계해 사용된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의 발전소별 발전용량을 살펴보면 모든 에너지원에서 발전용량의 확대가 목격되고 있다.
태양광 발전의 경우 발전소당 용량이 2016년 대비 2배 이상 확대됐으며 가스 발전소 역시 3배 가까이 확대됐다. 발전원 용량이 올라가면 함께 사용되는 변압기의 전압 규모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345kV급 이상 초고압 전력기기의 수혜를 전망하는 이유다.

커지는 발전소…초고압이 뜬다
유틸리티사의 신규 계통연계 신청 자료에서도 초고압 전압대의 상대적 강세가 확인된다. 145kV 이하 전압대는 2023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345kV 전압대의 계통연계 신청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발전소당 발전용량이 확대되기 시작한 시점과 정확히 맞물린다.
텍사스 전력신뢰도위원회(ERCOT)의 경우 765kV급 변압기를 2028년부터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해 30GVA 이상의 누적 설치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 동부 13개 주 관할 지역송전기구(PJM)와 뉴욕주 독립계통운영자(NYISO)는 각각 2028년과 2034년 대규모 765kV 변전소 설치를 계획 중이다.
중저압 변압기 업체들은 통상 수주 상황에 따라 제품 사양을 비교적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으나, 345kV급 이상의 고전압 제품은 납품 이력과 벤더 인증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기업 중 초고압대의 변압기 생산이 가능한 기업은 10곳 미만으로 관련 경험과 레퍼런스를 보유한 업체들을 중심으로 선별적인 수주가 예상된다.

관세 측면에서도 초고압변압기의 매력이 부각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6년 4월 2일 철강·알루미늄·구리 및 파생제품에 대한 무역확장법 섹션 232(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국가안보를 이유로 특정 품목 수입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조항) 관세 체계를 개편했다.
개편에 따라 기존 금속 함량 가치 기준으로 부과되던 관세는 전체 과세가격 기준으로 전환됐으며, 대형 변압기와 배전 변압기의 관세율은 기존 50%에서 각각 15%(2027년 12월 31일까지)와 25%로 하향됐다. 개편안을 반영하면 대형 변압기의 실효 관세율은 기존 28.7%에서 15%로 낮아지고, 배전 변압기는 34.9%에서 25%로 하락한다.
절대 관세율과 감소 폭 모두에서 대형 변압기가 더 유리한 구조로, 초고압 변압기 중심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업체들을 중심으로 수익성 개선이 예상된다.
변압기 > 배전 > 전선…판가 전이력이 갈랐다
전력 밸류체인 내 선호도는 변압기 > 배전기기 > 전선 > 유틸리티 순이다.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는 국면에서 핵심은 단순히 수요가 증가하는 산업이 아니라, 수요를 판가와 수익성 개선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살펴보면 변압기와 배전기기는 공급자가 제한된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평균판매단가(Average Selling Price·ASP) 인상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또한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 확대로 전력기기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 판매 비중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이익률을 살펴보면 전선 업체들의 이익률 개선 폭은 2~3%포인트 내외에 그치고 있는 반면 변압기 및 배전기기 기업들은 업사이클 진입과 함께 이익률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중장기적인 수요가 보장된 상황에서 결국 실적을 견인하는건 증설이다. 앞서 전력기기 산업이 뚜렷한 사이클의 흐름을 보인 만큼 주요 업체들은 여전히 대규모 증설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보다 과감한 선제 투자를 집행하는 기업들이 수혜를 볼 수밖에 없다.
변압기 공장은 증설을 결정해도 공사 기간과 숙련공 양성 기간을 고려하면 제품 출하까지는 최소 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결국 예정된 증설이라면 보다 빠른 시점의 준공을 통해 공급 부족 구간에서 높은 판가와 수익성을 향유하는 전략이 유리하다.
이런 측면에서 국내 전력기기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사 대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효성중공업과 HD현대일렉트릭은 북미 초고압 변압기 수요 증가에 대응해 각각 테네시와 알라바마 현지 공장을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확대 중이다.
LS일렉트릭은 부산사업장과 북미 생산 거점을 중심으로 초고압 전력기기와 배전기기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산일전기는 특수 변압기와 중소형 변압기 수요 증가에 대응해 국내 생산설비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주요 업체들은 고전압 및 중저압 차단기까지 선제적으로 증설하고 있어, 향후 배전 시장 확대 국면에서도 수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8년이 기준…증설 서두른 기업이 이긴다
마지막으로 살펴봐야 할 부분은 밸류에이션이다. 산업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수요와 수주 모멘텀이 확인되고 있으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정도 주가에 반영돼 있는지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측면에서는 기업들이 현재 목표하고 있는 증설이 본격적으로 실적으로 나타나는 2028~2029년을 기준으로 평가함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

밸류에이션 매력도는 효성중공업과 산일전기가 가장 높다고 판단한다. 효성중공업은 적극적인 증설을 기반으로 2028년까지 40% 수준의 주당순이익(EPS)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실적 성장에 따라 주가수익비율(PER)은 2026년 31.4에서 2030년에 18배까지 하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산일전기도 유사한 흐름이 예상된다. 산일전기는 안산 1,2 공장 램프업과 154kV급 초고압변압기 증설을 통해 2028년까지 연평균 약 30%의 명목 매출액 캐파 확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회사의 높은 이익률을 감안하면 외형 성장이 EPS 성장으로 온전히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LS일렉트릭의 경우 효성중공업 다음으로 적극적인 증설이 예상되나 현재 주가는 이를 상당히 반영한 것으로 추정한다.
종합하면 전력기기 섹터 내 최선호주는 효성중공업, 차선호주는 HD현대일렉트릭이다. 양사는 변압기 및 배전기기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어 전력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되는 국면에서 가파른 실적 개선이 예상된다. 특히 초고압 전압대의 제품 생산 역량을 갖추고 있어 향후 765kV 개화에 따른 추가적인 수주 모멘텀이 기대된다.
증설 측면에서도 초고압 변압기와 배전기기 캐파 확대를 통한 외형 성장이 두드러질 전망이다. 밸류에이션 역시 증설 이후 이익 성장성을 감안하면 부담 없는 구간으로 보인다.
김태형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