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건축이든 삶이든 바람길 열어야 사람이 통한다"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건축이든 삶이든 바람길 열어야 사람이 통한다"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약한 건축'이라는 개념으로 건축사의 한 세기를 비틀어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구마 겐고. 스스로를 '경주마'라고 부르며 1년 중 절반 이상을 해외 건축 현장에 머무는 그를 일본 도쿄 아오야마에 있는 구마겐고건축도시설계사무소(KKAA) 본사에서 만났다. KKAA의 첫인상은 기대와 달랐다. 건축대학 캠퍼스의 평범한 설계실과 같았다. '세계적 건축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평범한 사무실, 다양한 언어로 소통하는 젊은 건축가들의 활기. 문도 칸막이도 없이 이들 사이에 있는 구마 겐고 자리 역시 "타인의 생각과 변화가 유연하게 통과하도록 인생의 '바람길'을 열어둬야 한다"는 그의말, 그리고 자연과의 경계를 지운 그의 건축물과 꼭 닮아 있었다. 인도 출장에서 막 돌아왔다는 그는 '구마 체크' 시간을 기다려온 직원 한 명 한명을 마주하고 있었다. 구마 체크는 모든 스태프가 자신의 설계안과 아이디어를 갖고 구마 겐고와 1대 1로 만나 대화하는 시간이다. 자연을 정복하려는 세상의 룰을 뒤집고 평생 '자연에 지는 법'을 외쳐온 거인의 말을 직접 들었다.

    ▷어릴 때 아버지가 건축물을 많이 보여주셨다고 들었습니다.

    ADVERTISEMENT


    “아버지께서 워낙 건축에 관심이 많았어요. 1960년대는 일본 건축이 엄청난 기세로 성장하며 건물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던 시대였습니다. 단게 겐조, 구로카와 기쇼의 작품 같은 건축물이 끊임없이 지어졌고 가족이 다 함께 보러 가곤 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여느 아버지처럼 유원지 같은 곳에 데려가는 분이 아니었어요. 건축을 보는 건 돈도 안 들잖아요(웃음). 제가 열 살이던 1964년 도쿄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었는데, 단게 겐조가 설계한 ‘요요기 국립 경기장’ 부속 수영장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어요. ‘우아, 나도 커서 이런 건물을 짓고 싶다’고 마음먹었죠. 도쿄올림픽 주경기장은 제 건축 인생에서 일종의 ‘보은’의 기회였어요. 감사하죠.”

    ▷약한 건축(負ける建築)이라는 철학을 말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는 ‘패배(負け)’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ADVERTISEMENT


    “<약한 건축>을 쓰던 젊은 시절 저의 건축은 규모가 작은 것이 많았어요. 당시에는 ‘아예 눈에 띄지 않는 건축’을 함으로써 오히려 시대에 강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단순히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 및 자연과의 ‘조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스코틀랜드에 지은 ‘V&A 던디’ 미술관처럼요.”

    ▷건축물을 구상할 때 핵심은 ‘인간과의 소통’이라고요. 설계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땅을 구석구석 걸어 다니는 것입니다. 우선 직접 걸어보며 온몸으로 대지를 느끼는 거죠. 바닥을 통해 땅의 단단함과 부드러움, 공기와 흙이 머금은 습기까지 몸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설계의 시작입니다. 그 장소가 지닌 독특한 재료, 그곳에 사는 장인을 찾아내 그곳에서밖에 할 수 없는 건축을 하는 것. 건축이 생명을 얻는 건 ‘지어진 뒤에 생성되는 이야기’라고 믿습니다.”


    ▷소멸하는 소재를 다루며 깨달은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ADVERTISEMENT


    “문득 내가 어떤 거리와 마을을 걸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꼈는지 돌이켜보면 그것은 늘 ‘시간과 함께 나이 들어간 곳’이었습니다. 대개 자연의 소재가 듬뿍 쓰여 세월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 자체가 깊은 아름다움을 자아내죠.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고 누구나 늙어갑니다. 건축도 유한한 운명과 나란히 발맞춰야 삶의 이치와 위로를 전할 수 있지 않겠어요.”

    ▷구마 겐고의 건축은 작은 입자가 모여 있어 감탄하게 됩니다. ‘입자의 건축’에는 늘 틈새가 있습니다.

    ADVERTISEMENT


    “건축이든 인간관계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바람길’입니다. 제 사무소 역시 의도적으로 수평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통풍이 좋은 조직이어야만 비로소 세상에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건축’을 지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남미와 아프리카에선 ‘흙벽돌’로 건축하죠. 역설적으로 물질을 낭비하지 않는 첨단 테크놀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현대 건축은 역사적으로 어느 단계, 어떤 지점까지 와 있다고 봅니까.

    ADVERTISEMENT


    “현대 건축은 아주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인구가 폭발하던 20세기와 달리 지금은 인구가 줄어들고 사회가 수축하는 시대입니다. 맨땅에 건물을 새로 짓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 거예요. 그 대신 ‘기존의 오래된 건물을 어떻게 고쳐 쓰고 재생할 것인지’가 화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마주할 ‘미래의 건축’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기술과 인간의 역할이 매우 흥미롭게 결합하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KKAA에서도 매일 인공지능(AI) 툴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설계에 도움을 받고 있죠. 작업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뿐 아니라 인간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발상을 자극하죠. 건축가로서 이 부분에 굉장히 큰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AI가 인간의 기술적 역할을 대신하는 영역이 늘어날수록 인간이 지닌 본연의 환경 감각과 자연에 대한 원초적 감각은 훨씬 귀하고 중요해집니다. 건축이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신체와 물리적 환경 사이의 관계성을 아주 단단하게 강화해주는 미디어’라고 믿습니다.”

    ▷평소 직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빨리 패스해라!’요(웃음). 축구에 비유하자면 혼자 공을 너무 오래 쥐고 머뭇거리면 안 됩니다. 공을 독점하지 않고 끊임없이 유기적으로 빨리빨리 패스해야 강한 팀이 되죠. 건축도 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건축가에게 “실패에 낙담하지 말라”고 조언하죠.

    “저 역시 젊은 시절 평단과 대중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 여파로 지방을 전전했죠. 하지만 시대는 언제나 변하고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과 기준도 결국 바뀌기 마련입니다. 혹독한 비판을 좌절의 도구로 쓰지 않고, 오히려 다음 작품을 더 단단하게 밀어 올리기 위한 강력한 스프링으로 삼았습니다. 무엇보다 건축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남 탓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설계할 때 예산, 법률 등 핑곗거리가 계속 생기죠. 어떤 악조건에서도 자신이 건축이란 형태로 남기고 싶은 게 무엇인지 죽을힘을 다해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년이나 은퇴를 고민해본 적이 있습니까.

    “단 한 번도 ‘은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려본 적이 없습니다. 인간이 세상과 사물을 향한 순수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계속 붙잡을 수만 있다면 생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건축가로 일할 생각입니다.”

    도쿄=김보라/이해원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