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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돌로 쓴 詩, 약한 건축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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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돌로 쓴 詩, 약한 건축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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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크리트 장벽과 철근 상자가 세계 도시를 지배한 20세기. 권위를 과시하던 건축의 시대를 끝내고, 가장 연약한 재료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건축가가 있다. “건축은 자연을 정복하는 승자의 도구가 아니라 기꺼이 자연에 지고 스며드는 순응의 매개체여야 한다”고 외치는 일본의 구마 겐고(72)다.

    그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상징인 콘크리트가 자연과 인간을 단절시키고 도시의 혐오 시설로 전락하는 모습을 직시했다. 20대부터 건축 비평을 쏟아내며 ‘약한 건축(負ける建築)’이라는 파격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하게 된 이유다. 구마 겐고는 나무, 돌, 대나무, 종이 등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마모되는 재료를 엮어 태초의 인간이 지은, 건축의 본질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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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마 겐고는 차갑고 거대한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이 가득 찬 도시에서 출발했다. 시작은 참담한 실패였다. 1991년 도쿄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지은 사실상 첫 작품이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약 10년간 도쿄 건축계에서 퇴출당했다. 좌절했지만, 무너지진 않았다. 시골을 돌며 지방의 목수, 석공, 전통 종이 장인들과 만난 ‘유배 생활’은 그를 완전히 바꿔놨다. 나무와 돌 등의 입자를 잘게 쪼갠 독창적 기법이 그렇게 탄생했다.

    구마 겐고의 ‘약한 건축’은 약하지만 결코 무력하지 않다. 수천 개의 가느다란 나무 루버와 돌 입자로 건물의 덩어리를 잘게 쪼개 빛과 바람이 통하게 만든다. 도쿄올림픽 국립경기장을 비롯해 영국 스코틀랜드 V&A던디미술관, 중국 베이징 그레이트뱀부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사바트요 개조, 포르투갈 굴벤키안미술관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셀 수 없이 많은 랜드마크가 그의 손을 거치며 대지 예술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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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세계적인 거장이 된 지금도 수행 비서 없이 기내용 가방 하나만 든 채 세계 현장을 직접 찾아간다. 건물이 들어설 땅을 발로 디디며 흙과 공기의 결을 읽어내고, 그 지역 고유의 자재와 장인들의 숨결을 건물에 이식한다. 자연과 문화를 이기려 들지 않고 기꺼이 고개 숙여 스며드는 그의 작업 방식에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다.

    쉼 없이 하늘길을 오가는 그를 최근 한국경제 아르떼가 도쿄 구마겐고건축사무소(KKAA) 본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삶에도 건축에도 ‘바람길’을 내야 한다”는 건축가이자 한 철학자의 이야기다.


    콘크리트 부수고 미래를 짓다…20세기 '미움받는 건축'의 종말
    구마 겐고가 말하는 '약한 건축'
    구마 겐고(71)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다. 철학가이자 사상가라고 불러도 좋다. 그는 콘크리트 중심의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에서 벗어나 자연 소재를 엮어내는 ‘약한 건축’의 개념을 만들었다. 크고, 화려하고, 영원불멸할 것 같던 건축의 시대를 정면으로 비판해온 사람. 그렇게 21세기 글로벌 건축의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 시프트를 이끌고 있다. 1954년생인 구마 겐고는 도쿄대 공학부 건축학과에 진학했고, 대학원에서는 하라 히로시(1936~2025)의 연구실에 소속됐다. 친구들은 아틀리에 형식의 설계 사무소로 진출했지만, 그는 사회에서 배우고 싶다는 이유로 조직형 설계 사무소인 일본설계에 입사했다. 그는 “그저 반골 정신만 있었을 뿐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주류에 반항하고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한 바 있다. 일본설계에서 약 3년간 근무한 뒤 새로운 경험을 쌓기 위해 도다건설 설계부로 이직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도시계획학과 객원연구원(1985~1986)을 거쳐 1986년 시노하라 사토코와 함께 공간연구소를 설립했다. 1990년 현재의 구마 겐고 건축도시설계사무소(KKAA)를 세웠다. KKAA는 도쿄에 본사가 있고 파리, 베이징, 상하이, 서울에 지사를 두고 있다.


    실패가 만든 ‘약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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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 포스트모더니즘의 최전선을 경험하고 돌아온 그가 도쿄에서 시도한 첫 작품은 그야말로 ‘망했다’. 마쓰다에서 진행한 신축 빌딩 공모전에 선발돼 포스트모더니즘 양식의 ‘M2’(1991)를 야심 차게 선보였지만, 대중과 평단의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구마 겐고는 이 건물로 “버블 시기를 통과하며 거대한 오피스 빌딩이나 장식이 과잉된 상업시설로 가득 찬 도쿄의 혼돈을 현대건축으로 번역하려 했다”고 회고한다. 유리를 사용한 모던한 상자로 보이지만 중앙엔 이오니아 양식의 거대한 기둥이 관통하고, 내부를 그대로 드러낸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카오스를 의도했다는 얘기다. “1980년대 건축에 대한 심술궂은 비평”이었다고 했지만 그의 의도는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다. 일본의 버블 경제가 붕괴하면서 ‘구마 겐고는 위험한 건축가’라는 낙인이 찍힌 채 약 10년간 도쿄 건축계에서 배제됐다. 어떤 프로젝트의 제안도 받지 못했다. 고립과 유배의 시간에 그는 시골로 떠났다. 고치현, 도치기현 등 중소 지방 도시를 돌며 작은 프로젝트를 맡기 시작했다.

    콘크리트의 시대를 넘어 ‘작은 건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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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건축은 폐허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제1·2차 세계대전 이후는 건축의 시대가 도래하기 가장 좋은 조건이었다. 건축물이 한 국가, 한 도시의 랜드마크로서 권위를 뽐내기 위해 시각적 상징과 형식미에 집중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건축에도 적용됐다. 유럽에서 공공주택 건축 붐이, 미국에선 ‘내 집 마련’을 위한 주택 건축 붐이 일던 시기다.

    구마 겐고는 “20세기 건축은 미움받는 건축의 시대였다”고 말한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크고, 너무 낭비하는 데다 회복 불가능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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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생각했다. “새로운 건축에 도전해야 한다. 눈앞의 비판이나 평가에 꿈쩍도 하지 않고, 멀리 보는 역사관과 역사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아메리칸드림, 콘크리트, 샐러리맨 등 20세기를 규정하는 세 가지 키워드에서 도망치겠다는 심정으로 내린 결론은 이랬다. ‘어디서나 통용되는 건축이 아니라 그 장소에 순응하고 자연스럽게 지워지는 건축을 만들자.’

    그렇다면 콘크리트는 왜 20세기를 지배했을까. 콘크리트는 쉽고, 자유롭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지을 수 있다. 모래, 시멘트, 철근만 있으면 바닥과 천장, 두 장의 수평면만으로 구조체에서 마무리까지 다른 어떤 재료나 기술의 힘도 빌리지 않고 건물을 완성할 수 있다. 이런 만능 건축 기술은 인류 역사에 없었다. 액체 상태의 물질로 고정된 형태가 없다가 한순간 응고되는 콘크리트는 “집을 가지면 행복할 수 있다”는 시대의 욕구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영원할 것 같던 콘크리트의 전지전능함은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구마 겐고는 그 시간을 조금 먼저 예측했다. “나무는 콘크리트처럼 유동적일 수 없지만, 갑자기 단단해질 수도 없다. 언제나 적당히 고정적이고, 적당히 약한 재료다.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하고 합리적이고 큰 건축’에는 더 이상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자 같은 건축물은 인기를 잃어갔고, 초고층 건물은 시대에 뒤떨어진 부자들의 자기 과시라고 조소했다. 주변의 재료를 사용해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작은 건축’, 자연 에너지에 의존하는 작은 건축에 흥미를 갖게 됐다.”

    미움받는 건축의 시대를 끝내다

    20세기가 저물어갈 무렵 연이어 재해가 발생했다.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미국의 허리케인,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아이티에까지 대지진이 일어났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그는 확신했다. 이것은 자연의 두려움을 잊지 말라는 경고, 그리고 큰 것일수록 더 위험하고 나약하다는 메시지라고. 그는 스스로를 “미래를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건축은 단순히 건물 모양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통로다. 기후변화와 환경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구마 겐고의 건축이 다시금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구마 겐고의 건축은 자연을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그 장소에서 나는 나무와 돌, 그리고 그것으로 만든 종이를 사랑한다. 못 하나 없이 나무 조각을 겹쳐 올려 10m 높이의 건물을 완성하는가 하면, 벽을 허물어 바람이 통하도록 해 자연과 건축을 연결한다. 그야말로 ‘자연에 지는, 약한 건축’이다.

    도쿄=김보라/이해원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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