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가 거세질수록 중국은 첨단 반도체 확보 경쟁보다 인공지능(AI)을 제조업 전반에 이식하는 전략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AI 모델 성능 경쟁을 넘어 철강·석유화학·자동차·조선 등 산업 현장의 운영 방식 자체를 장악해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을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2일 발표한 '미·중 경쟁 2.0, 중국의 AI·공급망 전략 변화와 우리의 대응' 보고서를 통해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반도체와 AI 모델 개발을 넘어 제조 생태계와 생산 표준을 둘러싼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등 수출 통제가 중국 AI 산업을 위축시키기보다 오히려 독자 생태계 구축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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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확보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화웨이의 '타우 법칙(Tau Scaling)'과 3차원 적층, 첨단 패키징 등을 활용해 시스템 차원에서 성능을 높이는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보고서는 "중국은 국산 AI칩과 CANN 소프트웨어, AI 모델이 함께 발전하는 독자 생태계도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창신메모리(CXMT), 양쯔메모리(YMTC) 등을 앞세워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면서 글로벌 메모리 공급망 영향력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중국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유엔이 정의한 모든 공업 분류 항목을 자국 영토 안에 갖춘 세계 유일의 '자기 완결형' 공급망이다. 유엔 국제표준산업분류(ISIC)상 대분류부터 세분류까지 전 제조업 분야의 공장을 보유한 국가가 중국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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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본, 독일 등 전통 제조 강국들이 비용이나 환경 문제로 기초 제조업과 원자재 생산을 해외로 이전해 공급망 빈틈이 생긴 것과 대조적이다. 초첨단 반도체부터 최하단 나사, 기초 소재까지 모두 직접 만드는 완결형 구조는 어떤 제재에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자, 언제든 글로벌 공급망을 압박할 수 있는 레버리지가 된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중국이 이 같은 제조 완전성을 기반으로 'AI+제조' 전략을 펼치며 공세로 전환했다고 보았다. 중국의 진짜 목표가 휴머노이드 로봇 판매 확대가 아니라 AI를 제조 현장에 대규모 적용해 작업 방식(워크플로우)을 사실상의 국제표준(de facto standard)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이 AI 모델과 학습 알고리즘 경쟁에 집중하는 반면 중국은 AI를 철강·석유화학·조선 등 전통 제조업에 접목해 생산 공정을 고도화하고, 이를 글로벌 사우스 등 해외 제조 현장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번 현장 운영 방식이 자리 잡으면 교체 비용이 커져 중국식 운영 로직이 세계 제조업의 사실상 표준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산업연은 한국도 HBM 등 개별 반도체 경쟁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반도체와 철강·조선 등에서 축적한 조업 판단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제조 LLM'을 개발하고, 이를 HBM과 첨단 소재·장비 등 한국의 강점과 결합한 'K-제조 아키텍처(독자적 제조 시스템)'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술과 생산능력, 표준, 현장 데이터를 하나의 전략 자산으로 묶어 글로벌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국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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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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