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직장은 사라지고, 집값과 자산시장은 여느 때보다 예측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앞선 세대가 걸어온 삶의 공식도 희미해졌습니다.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지금 이 기사를 읽는 우리는 그 어느 세대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연금은 더 이상 은퇴를 앞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연금 빌드업>은 가장 긴 투자, 연금을 처음부터 배우고 차근차근 쌓아가기 위한 기록입니다. [편집자주]
올해 상반기 퇴직연금 투자자들의 선택은 단연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였다. 미래에셋증권 퇴직연금 계좌에서 순매수액이 가장 컸던 상장지수펀드(ETF) 3개가 모두 두 기업을 핵심 자산으로 편입한 반도체 상품이었다. 순매수 상위 10개 중 6개도 반도체 관련 ETF로 채워졌다.
특히 상위 1, 2위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등 반도체 대표 기업과 우량 채권을 결합해 퇴직연금 적립금 전액을 투자할 수 있도록 설계한 ETF 상품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다만 국내 증시가 급락한 7월에는 미국 대표지수 ETF가 순매수 상위권을 차지하며 투자 흐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상반기 퇴직연금 ETF 순매수 1~3위 모두 반도체

2일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확정기여(DC)형·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의 ETF 순매수액 1위는 'RISE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이었다. 'KODEX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과 'SOL AI반도체TOP2플러스'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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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순매수 1·2위 상품은 운용사와 추종지수만 다를 뿐 투자 구조는 비슷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최대 25%가량 편입하고 나머지 절반을 국고채 등 우량 채권으로 채운다. 국내 반도체 대표 기업의 주가 상승을 추구하면서 채권으로 변동성을 낮추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RISE 상품은 'KAP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지수'를, KODEX 상품은 'Wise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채권혼합지수'를 각각 추종한다. RISE 상품은 지난 2월26일, KODEX 상품은 4월7일 상장됐다. KODEX 상품은 2분기에 처음 거래되기 시작했는데도 2분기와 상반기 순매수액 모두 2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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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상품은 퇴직연금에서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적용받지 않아 계좌 적립금의 100%까지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DC형과 IRP 계좌에서는 주식형 ETF 등 위험자산에 적립금의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지만, 일정 요건을 충족한 채권혼합형 ETF는 나머지 30%에도 편입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하면 퇴직연금 계좌의 실질적인 주식 노출 비중을 높일 수 있다. 적립금의 70%를 주식형 ETF에 투자하고 나머지 30%를 주식 비중이 절반인 채권혼합형 ETF에 담으면 전체 적립금의 주식 노출 비중은 약 85%까지 올라간다.
다만 위험자산 한도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것이 원금 보장이나 낮은 가격 변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두 상품 모두 주식 부문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돼 있어 반도체 업종이 하락하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순매수 3위인 SOL AI반도체TOP2플러스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국내 인공지능(AI)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까지 총 10개 종목에 투자하는 주식형 상품이다. 앞선 두 상품과 달리 위험자산으로 분류돼 퇴직연금에서는 적립금의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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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순매수 상위 10개 중 반도체 관련 ETF가 6개에 달했다. 1~3위 상품 외에 'TIGER 반도체TOP10'이 5위, 'KODEX AI반도체TOP2플러스'가 7위, 'PLUS 글로벌HBM반도체'가 9위에 올랐다. 미국 대표지수를 추종하는 'TIGER 미국S&P500'과 'TIGER 미국나스닥100'은 각각 4위와 6위를 기록했다.
2분기 반도체 쏠림…급락장에선 미국지수 ETF로 피난

분기별로 보면 반도체 집중 현상은 2분기에 더욱 뚜렷해졌다. 1분기에는 TIGER 미국S&P500이 3위에 올랐고 코스피200·코스닥150 등 국내 대표지수 상품도 다수 상위권에 포함됐다. 반면 2분기에는 반도체 관련 ETF가 순매수액 1~4위를 모두 차지했다.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을 추종하는 상품은 10위권에서 빠졌다.
다만 반도체 업황에 대한 기대만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2분기 상위권에 진입한 상품 상당수가 올해 새로 상장돼 신규 상품 출시 효과가 함께 반영됐을 가능성이 높다. RISE 상품은 거래 기간이 한 달 남짓이었던 1분기에도 순매수 2위에 올랐고, SOL 상품 역시 3월17일 상장된 뒤 상반기 누적 3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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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들어서는 순매수 상위권의 구성이 다시 바뀌었다. 지난 1일부터 27일까지 미래에셋증권 퇴직연금 계좌에서 순매수액이 가장 컸던 ETF는 TIGER 미국S&P500이었다. TIGER 미국나스닥100과 KODEX 미국나스닥100이 각각 2·3위를 차지해 미국 대표지수 상품이 최상위권을 휩쓸었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8303.41에서 6755.75로 18.64% 하락했다. 국내 증시가 급락하는 과정에서 퇴직연금 신규 순매수의 무게중심도 국내 반도체에서 미국 대표지수로 달라진 것이다. 국내 특정 업종에 집중하기보다 미국 대표지수로 투자 범위를 넓히려는 수요가 부각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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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순매수 2위였던 KODEX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은 7월 5위로 내려왔고, 상반기 1위인 RISE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은 상위 10개에서 빠졌다.
다만 이를 반도체에서 자금이 일제히 이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TIGER 반도체TOP10이 7월 순매수 4위, KODEX AI반도체TOP2플러스가 7위에 올라 반도체 저가 매수 수요도 이어졌다. KODEX 200은 6위,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KODEX 머니마켓액티브는 8위에 새로 진입했다. 미국 대표지수와 국내 대표지수, 반도체, 단기 금융상품으로 선택이 나뉜 모습이다.
"위험자산 한도 제외≠원금 보장"…종목 쏠림 주의해야
다만 이들 상품은 증시 급락기 두 자릿수대 손실률을 피하지 못했다. ETF 정보업체 ETF체크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RISE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과 'KODEX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의 최근 한 달 총수익률은 각각 -14.05%, -13.29%였다.전문가들은 퇴직연금에서 위험자산 한도를 적용받지 않는 상품도 원금보장형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채권혼합형 ETF라도 주식 부문이 소수 종목과 특정 업종에 집중됐다면 가격 변동 위험이 작지 않다는 설명이다. 상품에 편입된 주식 비중과 종목 집중도, 손실 가능성을 확인한 뒤 투자자의 위험 감수 수준에 맞게 투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성인 전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위험자산 한도를 적용받지 않는 채권혼합형 상품이라고 해도 투자자가 이를 원금보장형에 가까운 완전한 안전상품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형주더라도 최근 변동성이 크게 높아진 만큼 자산의 절반을 두 종목에 투자하는 상품을 실질적으로 안전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연지 한경닷컴 기자 kong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