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이맘때면 흥미롭게 보는 조사가 하나 있습니다. 인크루트가 선정하는 ‘대학생이 뽑은 일하고 싶은 기업’입니다. 올해로 23년째 이어진 조사입니다. 대학생들에게 어느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지를 묻는 단순한 설문이지만 2004년부터 쌓인 결과를 한 줄로 늘어놓고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그 안에는 한국 경제의 변화가 있고, 기업의 흥망이 있고, 무엇보다 청년들이 일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가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1위입니다. 조사가 시작된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 동안 1위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였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에게 삼성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지금보다 훨씬 컸습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세계적 기업, 높은 연봉, 안정적인 직장, 그리고 그 회사의 구성원이라는 자부심까지 한꺼번에 제공하는 곳이었습니다. 좋은 직장이 곧 큰 회사였던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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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0년대 들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이 치고 올라옵니다. 특히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카카오는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습니다.
대학생들이 원하는 것이 달라진 겁니다. 회사 이름이 얼마나 큰가보다 그 안에서 어떻게 일하는지가 중요해졌습니다. 정장을 입고 상사의 지시를 받는 대기업보다 자유롭게 옷을 입고, 영어 이름이나 ‘님’으로 서로를 부르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직접 서비스로 만드는 회사가 더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어느 회사에 들어갈 것인가’에서 ‘어떻게 일할 것인가’로 질문이 바뀐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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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판이 움직였습니다. 2023년과 2024년 삼성전자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2025년에는 SK하이닉스가 처음으로 1위에 올랐습니다. 올해도 SK하이닉스가 1위입니다. 삼성전자와 CJ올리브영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얼핏 20여 년 전 상황이 돌아온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같은 장면은 아닙니다. 2000년대의 삼성전자가 ‘큰 회사’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의 SK하이닉스가 주는 매력은 조금 다릅니다. HBM을 앞세운 반도체 경쟁력, 빠르게 커지는 실적, 그리고 그 성과가 구성원의 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입니다. 실제로 최근 조사에서 대학생들이 일하고 싶은 기업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는 것은 급여와 보상입니다.
여기서 변화의 방향이 보입니다. 2000년대 대학생들이 찾았던 것은 ‘회사라는 울타리의 확실성’이었습니다. 2010년대에는 ‘일하는 방식의 자유’였습니다. 지금은 ‘내가 만들어낸 성과가 나에게 돌아오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규모에서 문화로, 문화에서 보상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지난 23년의 순위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시대의 변화는 더욱 선명합니다. 한때 대학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지금은 상위권에서 보기 어려운 기업들이 있습니다. 2000년대만 해도 국민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은 높은 연봉과 안정성을 동시에 갖춘 최고의 직장으로 꼽혔습니다. 한국전력 같은 공기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포스코를 비롯한 중후장대 기업들도 산업의 중심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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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디지털전환과 점포 축소가 이어지며 금융회사의 이미지는 달라졌고, 공기업 역시 과거와 같은 성장의 이미지를 주기 어려워졌습니다. 철강과 중공업도 여전히 중요한 산업이지만 대학생들에게 미래 산업의 이미지를 주는 데는 IT와 플랫폼, 반도체보다 불리했습니다.
한때 정상에 올랐던 카카오의 변화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2020년부터 3년 연속 1위였지만 이후 순위는 내려왔습니다. 자유로운 기업문화와 빠른 성장, 플랫폼 산업의 미래를 상징했던 회사가 산업 성장성 둔화와 여러 논란을 거치며 ‘가장 미래적인 회사’라는 이미지를 잃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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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시대가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계속 상위권에 남아 있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삼성전자입니다. 1위를 내준 적은 있어도 20년 넘게 대학생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의 최상위권을 지켜왔습니다. 네이버도 플랫폼 기업 가운데 비교적 안정적으로 상위권을 유지했고, 현대자동차 역시 전통 제조기업 가운데 꾸준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CJ 계열사들도 콘텐츠와 식품, 유통 등 사업 영역을 넓혀가며 대학생들의 선택을 받아왔습니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좋은 복지나 높은 연봉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대학생들이 그 회사의 ‘다음’을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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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반도체와 스마트폰으로 사업의 중심을 옮겨왔고, 현대차는 자동차 회사에서 모빌리티 기업으로 자신을 바꿔왔습니다. 네이버는 검색을 넘어 AI와 콘텐츠, 커머스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CJ도 식품 회사라는 오래된 이미지를 콘텐츠와 K푸드, 뷰티로 계속 업데이트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현재 좋은 회사보다 앞으로도 좋아질 것 같은 회사를 선택합니다. 아무리 큰 회사라도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젊은 인재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반대로 지금의 규모가 조금 작더라도 성장의 방향이 선명하면 인재가 먼저 움직입니다. ‘일하고 싶은 기업’ 순위는 어쩌면 실적표보다 먼저 움직이는 기업의 미래 기대치일지도 모릅니다.
요즘 청년들이 돈만 본다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23년을 통째로 놓고 보면 다른 그림이 보입니다. 이들은 한 번도 돈만 좇은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자신에게 가장 확실한 미래를 줄 것 같은 회사를 선택했습니다. 2000년대에는 기업의 규모가 확실성이었고, 2010년대에는 성장 산업과 자유로운 문화가 확실성이었으며, 지금은 성과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보상의 약속이 확실성입니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질문은 23년 내내 같았습니다. “이 회사에서 나의 미래가 보이는가.”
인재를 얻고 싶은 기업이 답해야 할 질문도 결국 이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좋은 회사인가”가 아니라 “젊은 인재가 우리 회사에서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가.” 대답할 수 없다면 연봉 테이블을 고치기 전에 회사의 미래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