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트래픽을 들여다보는 일을 맡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클릭 파워’로만 따지면 다이소가 삼성전자만큼이나 세다는 것이다. 다이소의 따끈따끈한 신제품을 소개하면 어김없이 조회수가 터진다. 댓글은 관심과 응원이 냉소와 비판을 압도한다.클릭 수로 먹고사는 유튜버들이 이런 ‘핫템’을 놓칠 리 없다. 유튜브에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이번 주 다이소 신상’ 영상이 한가득이다. 다이소는 그렇게 마케팅비 한 푼 안 들이고도 서른 나이에 매출 4조5000억원짜리 ‘국민 가게’가 됐다. 3만2000여 상품의 절반이 1000원짜리이고, 제일 비싼 제품 가격도 5000원인 걸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97년 서울 천호동에 1호점을 낼 때만 해도 별 볼 일 없던 ‘1000원숍’이 어떻게 유통 강자가 될 수 있었을까. 박정부 아성다이소 회장은 그 이유로 “1000원숍이란 업(業)의 본질을 잊지 않은 것과 가격을 위해 품질을 희생하지 않는다는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안달복달한 것”을 꼽았다. 고객에게 ‘다이소엔 싸고 좋은 상품이 가득하다’는 예측 가능성을 건넸고,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결과란 얘기다.
말이 쉽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지난 20년간 소비자물가가 60% 가까이 올랐는데도 2006년 책정한 가격 상한선을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다이소의 접근법은 달랐다. 원가에 적정 이윤을 붙여 가격을 책정하는 대신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가격을 먼저 정하고, 이에 맞춰 상품을 개발했다.
눈에 띄는 건 1000원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보는 건 생각조차 안 했다는 점이다. 지속 가능하지 않아서다. 적자에서 벗어나려면 언젠가 가격을 올려야 하고, 그러면 고객과의 약속 위반이자 예측 가능성 훼손이니까. 가격과 품질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원칙이 서자 글로벌 소싱 확대, 포장 최소화, 물류 최적화 등 혁신이 뒤따랐다. 매달 600여 개 신상품을 낼 때마다 거듭된 작은 혁신들은 ‘가장 싼 제품’을 판매하는 다이소에 ‘가장 돈 잘 버는 유통기업’(작년 영업이익률 9.7%)이란 타이틀을 안겨줬다.
다이소 얘기를 꺼낸 건 국민에게 예측 가능성을 못 주는 우리 정부·정치권의 모습과 오버랩돼서다. 지속 가능한 정책을 펴려면 중장기적으로 국민 삶과 기업 경영에 보탬이 돼야 하는데, 그때그때 분위기에 따라 설익은 정책을 내지르고 문제가 되면 주워 담으니 신뢰가 싹틀 자리가 없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그랬다. 증시 급등락을 부추길 수 있는 데다 ‘음의 복리 효과’ 탓에 큰 손실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에도 정부는 환율 방어를 위해 밀어붙였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증시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투자자들의 아우성이 커지자 정부는 언제나 그랬듯이 보완책 마련에 들어갔다.
따지고 보면 백년대계라는 교육부터 부동산·노동·사법·산업 정책까지 장기적인 안목이 아니라 단기 문제 해결용으로 내놓은 정책은 여럿 더 있다. 획일적인 주 52시간제, 노란봉투법 등은 국부의 원천인 기업 경쟁력보다는 노동자의 표심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터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원전 정책도 정치 상황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기업인들의 걱정도 같은 맥락이다.
다이소가 그랬듯이 정부·정치권도 ‘국민 삶의 질 향상과 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궁극의 목표를 세우고 이에 맞는 정책만 꼼꼼히 따져본 뒤 시행해야 할 때다. 그래야 정권과 무관하게 지속 가능한 정책이 되고, 그래야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다이소 매장마다 길게 늘어선 계산 대기줄은 고객과의 약속을 지킨 보답이다. 지금 우리 정부와 정치권 앞에는 얼마나 긴 ‘신뢰의 줄’이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