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에 살아보면 안다. 볼 만한 전시는 죄다 서울·경기권에서만 열린다는 사실을. 화제의 전시 하나를 보려고 해도 지방민은 기차표를 끊고 하루를 통째로 비워야 한다. 왕복 교통비까지 생각하면 예술 감상은 그림의 떡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아쉬움을 겨냥해 공예 명작들이 직접 지역을 찾아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공진원)이 이달부터 내년 2월까지 여는 순회전 '찾아가는 공예 명작전'을 통해서다. 이 순회전은 문체부가 유명 공연과 전시의 지역 개최를 지원하는 '우리 동네 이게 오네!' 사업의 일환이다.
서울에서도 한자리에 모아 보기 어려운 작가 104명의 작품 600여 점이 강원, 영남, 충청, 호남·제주 4개 권역의 전시장 13곳을 돈다.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V&A)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 등 해외 유수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된 작가들, 공진원이 주관하는 '올해의 공예상' 수상자들이 참여 명단에 올랐다. 각 지역마다 전문 큐레이터 4인이 서로 다른 주제로 전시를 기획했고, 해당 권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도 함께 참여한다.


첫 주자는 충청권이다. 지난 1일 충남 천안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더 마스터피스 오브 코리안 크래프트: 뿌리와 열매'전이 신호탄을 쐈다. 참여 작가는 모두 16명. 이 중 '올해의 공예상' 수상자만 6명이다. 제1회(2018년) 수상자 이헌정을 비롯해 고보형(2019년) 하지훈(2020년) 김준용(2021년) 이상협(2023년) 오화진(2025년)이 이름을 올렸다. 기획은 장인기 온양민속박물관 학예실장이 맡았다.
전시 제목의 '뿌리'는 장인들이 이어온 전통을, '열매'는 이를 바탕으로 동시대 작가들이 이룬 예술적 성취를 뜻한다. '뿌리'에 나온 충남 무형유산 칠장(漆匠) 문재필은 1980년 목칠공예에 입문한 이래 40년 넘게 옻칠 한길을 걸어왔다. 이번 전시에는 삼베에 옻칠을 겹겹이 올린 '갇힌 지구' 등을 내놨다. 충북 충주의 소목장 방석호는 옛 목가구의 구조와 비례를 오늘의 감각으로 다듬은 '일월문 반닫이'를, 전통 조각보의 맥을 이어온 최덕주는 천연 염색한 명주와 모시를 한 땀씩 이어 붙인 작품을 선보인다.
'열매'에 작품을 내놓은 이상협은 은판을 수만 번 두드리는 단조 기법으로 전통 도자기의 형태를 금속으로 되살린 '아이시클'을 출품했다. 하지훈은 전통 가구를 알루미늄으로 재해석한 '나주체어&라운드반'을, 오화진은 양은 냄비에 천을 씌우고 바느질로 형상을 만든 '냄비머리가방'을 걸었다. 전선과 나일론을 엮어 가구를 만드는 이광호, 짚풀 공예의 엮기 기법을 가죽에 옮겨 로에베 재단 공예상 결선에 오른 유다현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8월 23일까지 열린다.


충청권 전시는 천안시립미술관 전시가 막을 내린 후 아산 온양민속박물관, 청주 청주시한국공예관으로 이어진다. 온양민속박물관에서 10월 20일부터 11월 22일까지 열리는 전시에서는 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생활용품 등 옛 유물과 함께 한층 선명해지는 전통과 현대의 대비를 즐길 수 있다.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열리는 '공예 도시' 청주의 청주시한국공예관은 내년 1월 13일부터 2월 14일까지 전시를 연다. 공예를 주제로 삼은 국내 유일의 공립 미술관으로, 청주공예비엔날레 주무대인 문화제조창 본관에 있다.
다른 권역에서도 줄줄이 전시 개막이 예정돼 있다. 호남·제주권 '공유자산'은 오는 21일 국립익산박물관에서, 영남권 '영남율려'는 다음 달 11일 부산 도모헌에서, 강원권 '호모 파베르/호모 센티엔스'는 9월 17일 원주 학성갤러리에서 막을 올린다. 관련 전시 관람은 전부 무료다.
문체부 관계자는 "한국공예의 우수성을 지역 곳곳에서 나누고 더욱 많은 국민이 일상에서 공예를 가까이 향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부 일정은 공진원 누리집과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