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삼성전자를 흔든 노사 갈등이 극적 합의로 위기는 넘겼지만 성과급을 둘러싼 조직 내부 갈등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반도체 사업을 맡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과 비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부문 간 성과급 격차를 둘러싼 불만 때문이다. 일부 직원들의 관심은 '퇴사'와 '이직' 검색으로도 이어졌다.
3일 한경닷컴이 입수한 블라인드 자체 인공지능(AI) 분석 서비스 '블라인드 AI'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1일부터 6월29일까지 삼성전자 재직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부정적 게시글 비중은 4월 초 24.7%에서 5월 초 53.2%로 뛰었다. 한 달 만에 두 배 넘게 오른 수치다.
부정적 게시글 비중이 확대된 시점은 성과급 협상 국면 때부터. 삼성전자 노조는 지난 4월 평택캠퍼스 앞에서 영업이익 중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후 5월20일 임금 교섭이 결렬되면서 4만7000여명이 파업 대오를 갖췄다. 단 하루 뒤 잠정 합의가 이뤄지면서 파업은 현실화하지 않았다.
잠정 합의 이후에는 DS·DX 간 보상 격차가 댓글창을 들끓게 했다. 블라인드가 5월21일부터 6월29일까지 삼성전자 관련 댓글을 별도 분석한 결과 이 중 43%는 '보상과 부서 간 격차'를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DS·DX 격차'를 직접 언급한 댓글의 부정 비중은 68%로 같은 기간 전체 댓글 부정 비중(46%)보다 높았다.
DS 6억 vs DX 600만원 '역대급 박탈감'
부정 댓글이 쏟아진 이유는 부문·사업부 간 성과급이 극명한 차이를 보여서다. 지난 5월27일 찬성률 73.7%로 가결된 삼성전자 노사 잠정합의안엔 DS부문에 영업이익 중 10.5%를 재원으로 하는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을 더하면 사실상 영업이익 가운데 12% 수준이 성과급과 연결되는 구조다.잠정합의안과 업계 추산을 종합하면 올해 영업이익을 300조원으로 가정할 경우 메모리사업부 직원은 연봉 1억원 기준으로 1인당 최대 6억원 안팎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적자가 예상되는 파운드리·시스템LSI 등 DS부문 내 다른 사업부에도 공통 재원 배분에 따라 억대 보상이 거론됐다. 반면 스마트폰·가전 등을 담당하는 DX부문 직원들에게는 1인당 평균 타결 위로금 성격의 자사주 600만원어치가 지급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DX부문 소속 일부 직원들은 지난달 검은 옷을 입고 출근하면서 항의에 나서기도 했다. 강동에서 시작한 캠페인은 구미·수원·광주·우면 사업장으로 번졌다. DX 직원이 주축인 동행노조 가입자는 한 달 새 2000명대에서 2만6000명을 넘어섰다. 반면 협상을 주도한 초기업노조에서는 조합원 이탈이 이어졌다. 이들 중 DX 인력 상당수가 동행노조로 옮겨간 것으로 알려졌다.
검색창에 남은 '퇴사'와 'SK하이닉스'
블라인드 검색 데이터에서도 임금 교섭 전후로 흐름이 크게 달라졌다. 파업 가능성이 커지던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는 '노조·파업' 관련 검색이 늘었다. 5월21일 잠정 합의 이후에는 성과급 배분을 확인하려는 '급여' 검색이 급증했다. 지난달 들어서는 '퇴사·이직' 관련 검색 비중이 다시 커졌다.'퇴사'를 검색한 삼성전자 재직자는 파업 전 주당 약 310명 수준이었지만 잠정 합의 직후에는 776명으로 늘었다. 지난달의 경우 내내 600~700명대를 유지했다. 협상 타결이 불만을 가라앉힌 게 아니라 오히려 DS와 DX 간 보상 격차를 키우면서 내부 갈등의 여진만 이어지게 됐다는 관측이다.
전체 검색 표본에서도 같은 흐름이 포착됐다. 삼성전자 재직자 검색 1만1599건 가운데 급여 관련 검색은 59%로 가장 많았다. 퇴사·이직 관련 검색도 38%에 달했다. 삼성전자의 주요 경쟁사인 SK하이닉스의 경우 재직자 검색 표본 3135건 중 퇴사·이직 관련 검색 비중이 14%에 그쳐 차이를 보였다. SK하이닉스는 급여 관련 검색 비중이 78%였는데 '이미 지급된 성과급과 주식 보상 내역을 확인하거나 비교하려는 성격의 검색이 많았다'는 게 블라인드 설명이다.
성과급 논의가 경쟁사로 시선을 돌리게 한 정황도 있다. 삼성전자 직원이 'SK하이닉스'를 검색한 비중은 8.6%, SK하이닉스 직원이 '삼성전자'를 검색한 비중은 5.2%였다. 메모리 호황기 보상을 둘러싼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황에서 경쟁사와의 성과급 격차를 비교하는 데 시선이 쏠렸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초기업노조는 자체 조합원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37%가 경쟁사 신입·경력 채용에 지원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이직을 고려한 주된 이유로는 경영진에 대한 불신, 성과급 제도, 조직문화, 임금·복리후생 등이 지목됐다.
삼성전자 사내에서도 이번 합의가 메모리사업부 인력의 이탈 우려를 해소한 반면 비반도체 부문과 적자 사업부 직원들 박탈감을 키웠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내부 관계자는 "메모리사업부 직원들은 이번 합의로 이직 유인이 많이 줄었지만 비반도체 부문이나 적자 사업부 직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며 "내년 임단협에서 또 한 차례 큰 혼란이 생길 것 같다"고 귀띔했다. "난 (성과급 6억원이 아닌) 600만원짜리"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건넨 직원도 있었다.
홍민성/김대영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