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갈등이 공개 설전으로 번졌다. 한때 서방 우파 진영의 대표적 동맹으로 묶였던 두 정상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가까운 모습을 보였지만, 회의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멜로니 총리를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갈등의 표면적 계기는 사진이었다. G7 회의가 열린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두 정상이 나란히 앉아 대화하는 장면이 공개되자 양측 관계가 회복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멜로니 총리도 회의 뒤 자국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후 이탈리아 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다른 뉘앙스의 말을 했다. 그는 멜로니 총리가 자신과 사진을 찍기 위해 매달렸다는 취지로 말하며 "멜로니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내게 간청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멜로니 총리가 안쓰러워 응했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멜로니 총리는 곧바로 반박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영상을 올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완전한 날조"라고 했다. 이어 "트럼프가 반드시 알아야 할 한 가지는 이탈리아도, 나도 구걸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두 정상의 신경전은 지지율 공방으로도 번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멜로니 총리가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시 미국과 가까운 척하려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에 멜로니 총리는 "내 지지율은 당신이 상관할 것이 아니니, 당신 것에 집중하기를 권한다"고 응수했다.
설전은 멈추질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이탈리아가 이란 대응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다시 비판했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이탈리아, 또 그 나라 총리에게 수조 달러를 쏟아부었는데도 (이탈리아는) 이란과 그들의 심각한 핵 위협에 관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수십년간 우리는 (이탈리아를) 방어해 주었지만 막상 시험대에 오르자 그들은 우리와 나머지 세계를 지키는 데 참여하지 않았다"며 "이는 좋지 못한 처사다!"라고 했다.
사진 논란으로 시작된 충돌이 안보 문제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탈리아가 시칠리아 소재 미군기지를 이란 공격 작전에 활용하는 데 협조하지 않은 점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멜로니 총리는 기지 사용은 기존 협정에 따라야 한다며 이탈리아의 주권을 강조했다.
이탈리아 정치권도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반발했다. 안토니오 타야니 외무장관은 미국 방문 일정을 취소했고, 여야 정치인들은 멜로니 총리를 공개적으로 두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멜로니 개인을 넘어 이탈리아 전체를 깎아내린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번 충돌은 단순한 정상 간 감정싸움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G7 회의는 미국·이란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서방 공조를 재확인하는 무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회의 이후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오히려 동맹 내부의 균열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유럽 내에서는 멜로니 총리의 강경 대응이 정치적으로 손해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 이탈리아 유권자들에게는 독자적 지도자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테파노 스테파니니 전 나토 주재 이탈리아 대사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지금 반(反)트럼프 진영에 서는 것이 그녀에게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