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키옥시아와 일본의 절치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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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증시의 역사가 바뀌었다. 22년 동안 난공불락으로 보이던 도요타가 시가총액 1위 자리에서 내려왔다. 일본 제조업의 상징이 밀려난 자리를 대신한 것은 소니도, 소프트뱅크도 아닌 낸드플래시 반도체 기업 키옥시아다. 올해 초만 해도 시총 19위에 머무른 기업이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불과 3개월 만에 400% 급등해 시총 59조엔(약 560조원)을 돌파하며 일본 최고 몸값의 기업이 됐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는 일본 반도체 부활을 알리는 화려한 신호탄이자 산업 지형이 자동차에서 AI·반도체로 이동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하지만 정작 일본 내부는 착잡한 분위기다.
    시총 1위지만 삼전닉스와 격차
    이유는 명확하다. 일본 1등이 곧 세계 1등이 아니기 때문이다. 키옥시아가 주력하는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세계 1위는 점유율 29%의 삼성전자, 2위는 18%의 SK하이닉스다. 한국 기업 두 곳이 세계 시장의 절반을 호령하고 있다. 3위 키옥시아의 세계 점유율은 14% 수준에 불과하다. 시총의 체급 차이는 더 크다. 키옥시아의 시총은 한국의 삼성전자(약 2064조원)와 SK하이닉스(약 2082조원)에 비하면 여전히 서너 걸음 뒤처져 있다.


    키옥시아의 역사는 일본 반도체산업의 부침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한때 세계를 주름잡은 일본 반도체산업은 1990년대 이후 경쟁력을 잃었고, 도시바의 메모리 사업도 경영 위기를 거치며 결국 해외 자본이 참여한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현재의 키옥시아는 일본 반도체 부활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과거 패권을 잃은 산업의 상흔이기도 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키옥시아가 일본 선두에 섰지만, 한국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냉정하게 짚었다.

    차가운 자각은 체념이 아니라 오히려 무서운 집념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일본은 스스로의 위치를 인정하고 국가 총력전으로 AI 반도체산업을 육성하려 하고 있다.


    ‘강한 일본 만들기’를 내건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은 최근 반도체와 피지컬 AI 등 17개 전략 분야에 민관이 2040년까지 최소 370조엔(약 350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日 정부, 인력까지 총력 지원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국내 생산 반도체 매출을 2040년까지 40조엔 규모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반도체 공장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소를 재건축하고, 인적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젊은 연구자 3만 명을 미국과 유럽 등으로 파견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신생 파운드리 업체 라피더스는 법까지 고쳐가며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출자하거나 채무 보증까지 가능하게 하는 이른바 ‘라피더스 지원법’을 통해 약 3조엔을 투입한다.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신규 반도체 공장 건립 지역 후보지로 일본을 꼽은 것은 국가가 판을 깔아주는 투자 환경의 매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한국에선 이 같은 절박감을 느끼기 힘들다. 최근 반도체 생산시설의 비수도권 이전 논의에는 산업 조건보다 정치 논리가 우선하는 분위기다. 세계 반도체업계는 이미 과거의 실패를 교훈으로 생존 공식을 다시 쓰는 일본을 주목하고 있다. 반도체 패권 경쟁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지금의 성공에 안주하는 순간, 언제든 순위는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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