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도 지갑 여는 미국, 돈 벌어도 지갑 닫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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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인은 저축을 줄여서라도 소비하고, 한국인은 돈을 쌓으면서도 지갑을 닫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공지능(AI) 랠리에 따른 자산 효과가 소비를 떠받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부동산에 묶인 자산 구조와 노후 불안으로 소비를 줄이고 있어서다. 똑같이 고령화되고 있어도 자산 구성과 소비 문화의 차이가 경제 체력을 갈라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저축 대신 소비하는 美
    22일 미국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올해 4월 미국의 가계 저축률은 사상 최저 수준인 2.6%로 떨어졌다. 2020년 31.8%에 이르렀던 것이 12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개인저축률은 세금을 내고 소비한 뒤 남는 소득의 비율을 뜻한다. 비슷한 현상은 일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때 ‘저축 강국’으로 불렸던 일본의 가계 저축률은 1970~1980년대 15~20% 수준이었지만 2023년에는 1.5%까지 낮아지며 3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해 말에는 3.90%까지 회복했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가장 큰 원인은 고령화다. 은퇴 후 소득이 줄어든 고령층이 과거에 모아둔 자산을 생활비로 사용하면서 저축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사회보장청(SSA)에 따르면 사회보장연금을 받는 은퇴자는 1970년 1335만 명에서 올해 5월 5450만 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일본에서도 지난해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자는 지난해보다 5만 명 감소했지만,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1%포인트 상승해 29.4%를 기록했다.

    소비 확대도 저축률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에서는 빚을 내 소비하는 현상도 두드러진다. 미국 중앙은행(Fed)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미국 가계 부채는 19조9000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일본 역시 1분기 기준 2021년 29만7000엔에서 2026년 31만엔으로 소비가 늘었다. AI 열풍으로 급등한 주가가 소비자의 씀씀이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시에떼제네랄의 앨버트 에드워즈 전략가는 이를 ‘부(富)의 효과’로 설명했다. 장부 상의 자산 가치가 불어나면서 실제보다 더 부유해졌다고 느끼면서 소비를 늘리는 현상이다. 그는 “AI 강세장이 꺾이면 자산 가치는 줄어들고 빚만 남아 소비와 경제 성장 모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물가 상승도 저축 여력을 줄이고 있다.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소득 중 저축으로 돌릴 수 있는 몫이 감소하고 있다.
    ◇ ‘불황형 저축’하는 韓
    한국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양상은 다르다. 1980~1990년대 20%대를 웃돌았던 한국의 가계 저축률은 작년 8.6%을 기록했다. 감소했지만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하락 폭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모습이다.

    이는 자산 가격 상승이 소비로 이어지는 소비전환율이 낮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에서 주식 자산의 소비 전환율은 1만원의 평가이익이 발생했을 때 약 130원을 소비하는 수준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해당 지표가 3~4%인 것과 비교해 3분의 1 안팎 정도다. 가계의 주식 투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고, 가격 변동성이 큰 영향이다.

    가계 자산 구성의 차이도 크다. 한국은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4년 기준 64.5%로 30%대인 미국과 일본 대비 높다. 부동산은 금융자산에 비해 현금화가 쉽지 않다.

    미국과 일본 대비 쓸 돈이 적은 한국 고령층이 소비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른바 ‘불황형 저축’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저축률이 낮아지고 있지만 성장률과 생산성이 높고 노인 일자리도 많아 잠재 성장력이 크다”며 “반면 한국은 저축률보다 성장률 둔화와 인구구조 변화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고령화와 재정 부담이 심화하면서 앞으로는 저축 기반 자체가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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